행복하여라,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09-01 로마의 일곱 순례 성당

by Peregrinante in Spem

신을 향한 경배의 마음으로 성지를 찾아가는 순례의 문화는 여러 종교에서 발견된다. 무슬림들은 일생에 한 번은 메카를 순례해야 할 의무가 있다. 힌두 신앙을 가진 인도인들은 한 번은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고 영혼을 정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티베트의 성지 라싸를 향해 수천 킬로미터를 오체투지로 순례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저 간절함의 근원은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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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최대 성지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현장인 예루살렘이다. 이슬람이 이곳을 점령한 뒤로는 로마를 최고의 순례지로 여겼다. 로마는 예수의 으뜸 제자인 베드로와 열정의 사도 바오로가 순교한 곳이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의 도시였고, 교황이 직접 다스리는 교황령이었다.


영국의 열성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영국에서 로마까지 이어지는 순례길을 만들었다. 이 길은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출발해 프랑스를 지나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로마에서 끝난다. 장장 2,000km를 걷는 길이다. 로마에서 볼 때 프랑스 쪽에서 온 길이라는 뜻에서 ‘프랑스 길(Via Francigena)’이라 불렀다. 이 순례는 로마에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무덤을 참배하는 것으로 끝난다. 오늘날에도 유럽의 젊은이들이 연례행사로 이 길을 걷는다.


16세기 중반부터는 로마에 도착한 뒤 일곱 성당을 순례하는 전통이 생겼다. 그 무렵 이탈리아의 한 사제가 일곱 성당을 돌며 기도하는 운동을 이끌었다. 나중에 교황청은 이 일곱 성당을 희년(Jubilaeum)의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성당으로 공표하면서 공식 인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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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순례 성당은 4대 바실리카를 포함한 7개의 바실리카이다. ‘바실리카(Basilica)’는 대성전으로 번역한다. 역사적, 예술적, 신앙적으로 중요성이 인정되는 성당으로, 교황이 그 특전을 부여한다. 바실리카는 대(大)와 소(小), 두 종류로 구분한다. 대 바실리카(Basilica Maggiore)는 4개뿐이며, 바티칸에 1개, 로마에 3개가 있다.


성 베드로 대성전 (Basilica di San Pietro)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 (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

성 바오로 대성전 (Basilica di San Paolo fuori le mura)

성모 마리아 대성전 (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


대 바실리카는 교황 바실리카(Basilica Papale)라고도 한다. 교황 바실리카에는 교황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제대가 있다. 희년에만 열리는 성문(聖門)도 둔다. 교황 바실리카는 대 바실리카 네 곳과, 아시시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성녀 클라라 대성전 등 모두 6개이다. 바실리카로 명명된 나머지 성당은 모두 소 바실리카(Basilica minore)이다. 일곱 순례 성당에 포함되는 다른 세 바실리카는 다음과 같다.


성 로렌초 대성전 (Basilica di San Lorenzo fuori le mura)

성 십자가 대성전 (Basilica di Santa Croce in Gerusalemme)

성 세바스티아노 대성전 (Basilica di San Sebastiano fuori le m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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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성당 순례는 지금도 살아있는 전통이다. 로마를 방문한 가톨릭 신자들은 보통 성주간 수요일에 이 일곱 성당을 순례하며 참회와 은총을 구하는 기도를 바친다. 특별히 올해는 더 많은 순례객이 몰리는 해이다. 25년 주기로 돌아오는 정기 희년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대 바실리카들이 성문을 활짝 열고 순례객을 맞고 있다.


일곱 순례 성당을 구글 지도로 연결해 보니 20km쯤 나왔다. 걷는 데만 네댓 시간은 잡아야 하는 거리이다. 기도와 미사 시간까지 고려해 이틀에 나눠 걷기로 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은 입장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로마에는 일곱 순례 성당 말고도 가보고 싶은 성당과 수도원이 몇 군데 더 있었다. 성당 안에서 감상해야 할 예술 작품은 좀 많은가. 성당에서는 우선 맨 앞줄에 앉아서 몇 분 동안 기도한 뒤 성물과 예술 작품을 둘러보고 다시 자리에 앉아 한참 생각을 정리했다. 결과적으로 이틀도 턱없이 부족했다. 예비로 남겨둔 하루에서 반나절을 더 쓰고서야 겨우 일곱 성당 순례를 마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로마를 끝으로 유럽 수도원 순례의 이탈리아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행복합니다, 마음속으로 순례의 길을 생각할 때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시편 84,6)




(1) 성 세바스티아노 대성전


고대의 시인들은 로마를 ‘영원의 도시(Urbs Aeterna)’로 노래했다. 제국의 흥망성쇠와 무관하게 이 도시의 찬란한 광휘가 역사 속에 길이 빛나리라 믿었다. 과연 그 불멸의 빛은 아직도 꺼지지 않았는가. 동방의 나그네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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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성당부터 찾아갔다. 성 세바스티아노 대성전이다. 로마를 둘러싸고 있는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밖에 있다. 성 세바스티아노는 3세기의 순교자이다. 박해 시대에 신앙을 드러내고 온몸에 화살을 맞고 순교했다. 이 성당은 그가 묻힌 공동묘지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4세기 초반에 처음 성당을 지었지만,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17세기의 건축이다.


성당은 방문객이 적어서 한적했다. 왼쪽 첫 번째 경당에 화살을 맞고 쓰러져있는 성 세바스티아노의 조각상이 있다. 주세페 조르제티의 1672년 작품이다. 또 하나의 예술품으로 베르니니의 마지막 걸작인 예수 그리스도의 흉상 「구세주(Salvator Mundi)」도 이 성당에 있다.




(2) 성 바오로 대성전


성 바오로 대성전도 성벽 밖에 있다.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한 바오로가 묻혔다고 전해지는 장소 위에 세워졌다.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4세기에 처음 건립한 이래 여러 차례 보수와 확장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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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타 산타(Porta Santa)라고 쓰인 성문이 활짝 열려 있다. 성전 정면의 제대 안 감실은 13세기에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제작했다. 방문객들은 제대 아래 있는 사도의 무덤 앞까지 다가가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작은 유리창으로 석관의 일부를 볼 수 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1코린 13,1)


성 바오로는 열두 제자가 아니면서도 지중해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열정의 사도였다. 한 번도 예수를 만나지 못했지만,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부활한 예수의 목소리를 듣고는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충격에 빠진다. 이 강렬한 체험으로 그는 박해에 앞장섰던 사울에서 스스로 ‘사도’를 자처한 바오로로 변신한다. 그는 가슴이 뜨거운 선교사였고, 가장 탁월한 신학자였으며, 빼어난 문장가였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14권이 그의 작품이다. 때로는 불을 토하는 듯한 웅변으로, 때로는 가슴을 파고드는 호소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설파한다. 로마에 불을 지른 네로 황제는 여론이 나빠지자,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박해했다. 이때 베드로는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형으로 순교했고, 로마 시민 신분이었던 바오로는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3)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은 성 요한에게 헌정된 성당이다. 라테라노는 땅을 소유했던 가문의 이름이라고 한다. 성경에는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요한 인물이 둘 있다.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 복음서와 요한 1·2·3서를 쓴 복음사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성당의 성 요한은 누구를 가리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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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의 공식 명칭을 찾아보니 라틴어로 매우 긴 이름이 나온다. ‘라테라노의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와 성 요한 세례자와 성 요한 복음사가 대성전(Archibasilica Sanctissimi Salvatoris et Sancti Iohannes Baptista et Evangelista in Laterano)’이다. 그러니까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을 모두 모셨다는 뜻이다. 거기에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까지 내세웠다. 성당 명칭에 주보성인을 세 분이나 나열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등장시켰으니 매우 특별하다.


이 성당은 로마 대교구의 주교좌 대성당으로, 로마에 있는 가톨릭 성당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으뜸의 지위를 갖는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조차 예외가 아니다. 구세주를 내세운 성당과, 그 제자를 내세운 성당이니, 이미 격이 다르다. 아비뇽 유수 이전까지는 교황이 이 성당 옆의 라테라노 궁에 머물렀다.


이 대성전이 공식적으로 봉헌된 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당을 세워 기증한 324년이다. 그때 교황 실베스테르 1세가 ‘하느님의 집(Domus Dei)’으로 선포했다. 그 후 10세기에 세례자 요한에게, 12세기에 다시 사도 요한에게 봉헌하였다. 주보성인이 세 분이지만, 최고의 보호자는 당연히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당 정면 상단에 ‘구세주 그리스도(Christo Salvatori)’라는 글씨가 크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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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의 성문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부조 작품이 새겨져 있다. "CHRISTUS HERI HODIE SEMPER"라는 라틴어 문구를 함께 새겼다. “그리스도, 어제, 오늘, 영원히”라는 뜻이다. 2,000년 대희년 때 설치한 작품이다. 순례객들은 아기 예수의 발을 만지며 성문을 통과한다. 그 부분만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다.




(4) 예루살렘 성 십자가 대성전


예루살렘 성 십자가 대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매달았던 십자가를 보존하고 있는 성당이다. 전승에 따르면, 이 십자가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 성지에서 발굴해 로마로 가져왔다. 성녀는 이 유물을 셋으로 나누어 콘스탄티노플의 황제와 예루살렘 주교에게 보내고, 하나를 로마로 가져왔다. 325년에 로마에 대성당을 짓고 이 유물을 모셨다. 대성당의 바닥을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흙으로 덮었기 때문에 이 성당은 로마가 아닌 예루살렘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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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성당은 성 십자가의 작은 조각 세 개를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성당 안의 경당(Cappella delle Reliquie)에서 직접 볼 수 있다. 더 큰 조각은 1629년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지시로,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져 성녀 헬레나 조각상 옆에 보관되었다. 이런 유물에는 늘 진위 논란이 따른다. 대부분의 순례객은 그런 논란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진짜이든 가짜이든 순례의 마음은 그 너머에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갈라 6,14)





(5) 성 로렌초 대성전


성 로렌초 대성전도 성벽 밖에 있다. 박해 시대에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의 무덤이 있는 성지이다. 성 로렌초를 한국에서는 라틴어 발음에 따라 성 라우렌시오로 표기한다. 이 성당에는 또 그리스도교 최초의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의 유해도 함께 안장되어 있다. 제대 아래 철창 사이로 두 성인의 무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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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 역시 방문객이 적어 매우 한적했다. 그 쓸쓸함이 마음을 당겼다. 다리도 아팠으므로 한참을 머물렀다. 앞으로 남아있는 두 성당에서는 결코 이토록 고요한 시간을 갖지 못할 것이다.




(6) 성 베드로 대성전


마침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 섰다. 이미 몇 차례 와봤지만, 늘 가슴이 뛴다. 올 때마다 충분히 감상하지 못한 채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이번에는 희년에만 열리는 성문을 통과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광장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파로 미어터질 듯했다. 오전에 광장에서 열린 행사로 대성전 입장이 제한되면서 그 인원이 모두 오후로 몰렸다. 인파에 떠밀리면서도 쉴 새 없이 묵주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많았다. 덩달아 슬그머니 묵주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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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에 따르면,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는 로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67년에 순교했다. 그는 로마의 초대 주교, 즉 초대 교황이 된다. 그때는 박해 시대였으므로 오늘날과 같은 교황제도는 확립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초대 교황이라는 사실을 들으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4세기 무렵부터 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대성전은 1506년 4월 18일에 공사를 시작해 1626년에 완공했다. 꼬박 120년이 걸렸다. 교황 바오로 5세가 마지막 완공을 지휘했다. 1605년 교황으로 즉위하자 곧바로 엄청난 지원과 결단으로 공사를 독려했다. 1612년 외관이 거의 완성되자 대성전 상단 정면에 가로로 길게 기념 문구를 새겨 넣었다.


IN HONOREM PRINCIPIS APOST. PAULUS V BURGHESIUS ROMANUS PONT. MAX. AN. MDCXII PONT VII (영예로운 사도들의 으뜸, 바오로 5세, 로마의 보르게시우스, 교황, 1612년, 재위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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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로 웅장하게 솟아오른 돔은 교황 식스토 5세의 열정으로 1590년에 완공되었다. 돔 내부 둘레에는 베드로를 세우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새겼다. 글자 하나의 크기가 높이 2m에 이른다고 한다.


TV ES PETRVS ET SVPER HANC PETRAM AEDIFICABO ECCLESIAM MEAM. TIBI DABO CLAVES REGNI CAELORVM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마태오 16,18-19.)


성 베드로 대성전은 그 종교적 상징성과 역사성, 예술성 때문에 일반 여행객들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관람 장소가 되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à)를 비롯해, 르네상스부터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건축, 조각, 회화 작품을 남겼다. 바티칸 박물관까지 찬찬히 둘러보는 일은 또다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2033년 그리스도 부활 2000년을 기념하는 대희년에 다시 올 수 있을까.




(7) 성모 마리아 대성전


주일 미사는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서 드리기로 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이 워낙 혼잡하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곳에 잠드신 프란치스코 교황을 뵙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올해(2025년) 4월 21일 우리 곁을 떠나셨다. 죽음을 앞두고 미리 작성한 유언에서 이 성당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저는 제 마지막 지상 여정이 이 유서 깊은 성모 성지에서 끝나기를 바랍니다. 저는 모든 사도 여정의 시작과 끝마다 이곳에 들러 기도하며,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저의 지향을 온전히 맡기고, 그분의 자애로운 모성적 보살핌에 감사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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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언에 따라 이 성당 안 왼쪽의 두 경당 사이 벽면을 파낸 작은 공간에 그분의 무덤을 마련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별히 소박하고 단순한 무덤에 묻히고 싶다고 당부했다.


무덤은 지면 아래 있어야 하며,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하게, ‘Franciscus’라는 이름만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미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그분의 무덤을 참배하려는 방문객은 쉼 없이 밀어닥쳤다. 다들 침묵 중에 조심스럽게 행동했으므로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웅장하게 울렸으므로 웬만한 소음은 들리지도 않았다. 방문객들은 뒷사람을 배려해 무덤 앞에서 성호를 한번 긋고 고개를 숙인 뒤 바로 물러났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이 성당의 미사는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우선 성가대의 합창이 마치 천상의 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렸다. 성가대의 실력도 뛰어났지만, 성당의 울림도 한몫 보탰을 것이다. 성가대의 위치는 2층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듣는 듯했다. 제1독서와 제2독서 사이의 화답송 봉사자는 소프라노 성악가처럼 황홀한 음색으로 선창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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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사랑을 자주 드러내신 분이다. 2014년 8월 한국을 직접 방문해 123위 시복식을 주관하고,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는 따스함을 보였다. 그분에게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무엇이 있다. 그분의 메시지에는 사랑과 평화, 희망과 화해, 지혜와 용기 같은 요소가 담겨 있다. 따뜻하면서도 파격적이다. 때로는 놀랍고, 때로는 아프게 가슴을 적신다. 감동은 울림을 낳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파파 프란치스코! 같은 시대에 태어나 당신의 말씀을 직접 듣고, 당신을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천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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