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다시 길을 나서며

by Peregrinante in Spem

스물 몇 날 동안 홀로 떠돌았다. 그 길 끝에 수도원이 있었다. 세상과 떨어진 곳에서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그 기도에 기대어 쉬고 싶었다.


IMG_1414_w.JPG


천 년을 이어온 수도 문화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물질과 재화가 넘쳐나는 이 풍요의 시대에 그들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은 무엇을 말하는가. 과학과 이성이 찬란한 빛을 발하는 시대에 그들이 매달리는 신앙의 신비는 대체 무엇인가.


수도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텅 빈 성당에서 나는 대답을 듣는 대신 기도를 바치고 왔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상에서 수도원은 절대와 영원을 추구한다. 재물과 영화를 뒤쫓는 세태를 뒤로 하고 금욕과 절제를 실천한다. 가난하고 겸손한 삶으로 불변의 가치를 증언한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인가. 권력도 명예도 욕망도 무너지고 흩어지고 사라져 간다. 수도원이 깊은 영성의 우물로서 늘 우리 곁에 존속해 주기를 기도했다.


IMG_1529_w.JPG


순례기를 쓰는 동안 행복했다. 낯선 수도원의 성당과 오솔길들이 어느덧 마음 깊숙이 들어와 아늑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수도원이 필요하다. 고요와 평화가 있고, 기쁨과 은총이 샘솟는 곳. 삶이 버거울 때 찾아가 기도하고 휴식할 수 있는 곳. 진솔한 고해와 따뜻한 위로가 있는 곳. 내 마음의 수도원을 향해 다시 길을 나선다.


순례는 끝나지 않는다. 인생이 순례이기에 삶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순례자다. 인간은 영원에서 왔다가 영원으로 회귀한다. 허락된 시간만큼 걸어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오늘도 영원 속의 하루를 묵묵히 걷는다. 낮고 가난한 마음으로 내일도 그렇게 걸어야겠다.




(연재를 마치며)

이쯤에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스페인과 오스트리아의 수도원 몇 곳을 더 보탤까 망설이다가 다음 기회로 미뤄둡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댓글 기능은 닫아 두겠습니다.)

월요일 연재
이전 13화수도승의 사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