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125, 창문이 있는 세계

오늘의 묵상

by 강다현
출처: 픽사베이 사이트


세속화는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에는 세속화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통의 실재를 현대 세계의 공식적인 실재일 뿐 아니라 유일한 실재로 생각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인간은 다른 세계를 향한 창문이 있는 집에서 삶을 영위해 왔다. 그것이 아무리 더럽고 깨졌고 판자로 가려져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피터 버거(Peter Berger)가 묘사한 ‘창문 없는 세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세속화가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에게 영향을 준 만큼이나 종교적인 신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요컨대, 현대 세계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 없이도 ‘잘 굴러간다.’ 우리는 우리끼리 충분히 잘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 없다. 심지어는 그분의 교회에서도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 현대인은 명백히 종교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속 깊은 차원에서는 세속적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부지중에 사실은 무신론자인 이유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실재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실상은 무신론자다. 그들이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실제로는 초자연적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젠가 호주의 어느 사업가가 일본인 사장을 전도하려고 시도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일본인의 반응이 무척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불교 지도자를 만날 때면 나는 언제나 다른 세계와 접하고 있는 거룩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기독교 지도자를 만날 때면 언제나 나와 만찬가지로 이 세계를 유일한 집으로 삼고 그 속에서 편안히 거하는 경영자의 모습을 봅니다.”

-오스 기니스 ‘소명’ 296, 297p


이른 아침에 거룩한 사람의 종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 보니, 말과 전차가 성읍을 포위하고 있었다!
종이 소리를 질렀다. “주인님!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엘리사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 편이 그들보다 많다.” 그는 기도했다. “하나님,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주십시오.”
청년의 눈이 열리자 그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놀랍게도, 온 산기슭에 불전차와 불말이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었다!

-열왕기하 6장 15-17절


나는 창문 없는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창문 밖으로 보았던 것들을 은밀히 추억했다. 내 방 한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 큰 창에는 언제부턴가 가림막이 붙기 시작했다. 행여 빛이라도 새어 들까 봐, 그래서 누군가에게 창의 존재를 들키고 말까 봐, 나무판자를 덧대고 페인트까지 발라 놓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창문 밖에 다른 세상이 있음을. 현대는 비이성, 비과학을 경멸하기에, 그 세계에 대해 언급하는 자 역시 같은 취급을 받는다. 내면의 창은 영적인 통로가 아니라 정신적 결함처럼 여겨진다. 애써 가려야 할 이유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고, 초현실적 사건투성이인 성경 속 이야기들을 진실로 믿으면서도(어쩌면 믿는 척 했는지도), 내 삶의 현실 속에는 이성과 과학적 채에 걸러진 것들만을 남기려 했다(그렇게 세련되고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길 바랐다).


그러나 오늘 묵상 중에 깨달았다. 내가 내 아들만 했을 때 보았던 창밖 풍경은 내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감춰서도 안 될 실재적 사건이었음을.


서쪽 하늘 아래, 길쭉한 밭이 언덕을 등지고 있었다. 밭에서는 콩 수확이 한창이었다. 커다란 포대 위에 콩대가 가득 늘어서 있었고, 할머니는 능숙한 솜씨로 도리깨질을 했다. 나는 두 살 터울 오빠와 포대 주변을 서성이며 콩을 주웠다.


밭 위로 노을이 쏟아졌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잠시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홍빛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대신 이상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 위에 땅이 있고, 왼편에 둥그런 돌로 만든 무덤이 있었다. 무덤 양옆에는 길쭉한 돌의자 같은 게 놓여 있었고, 날개 달린 사람 둘이 마주 앉아 있었다. 그 위 하늘에서 예수님인지 하나님인지 모를 어떤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 오른 쪽으로는 구름이 있었는데, 구름 위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올라서 있었다. 평범한 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고, 갑옷을 입은 채, 창을 든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얼른 오빠를 불렀다.


“오빠, 저기 좀 봐!”


오빠는 노을 진 하늘 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콩이 가득 든 양동이를 챙겨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용대 고개를 넘어 서쪽 하늘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사진처럼 선명했지만, 오빠와 할머니에게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그토록 선명하게 창문 밖 세계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잊고 살았다. 이상하고 신기한 경험이었을 뿐이라 여기면서.


열왕기하 속 엘리사와 그의 종이 보았던 창문 밖 세계는 힘이 있었다.


아람 사람이 공격하자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했다. “저들의 눈을 멀게 해주십시오!”
엘리사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셨다.

-열왕기하 6장 18절


현실 세계가 그 앞에서 어찌하지 못할 만큼.


그러자 엘리사가 그들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그 길이 아니다! 이 성읍이 아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내가 너희를 인도하겠다.”
그러고 나서 엘리사는 그들을 사마리아로 인도했다.
그들이 성읍에 들어갈 때 엘리사가 기도했다. “하나님, 저들의 눈을 열어 여기가 어딘지 보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셨다. 그들이 둘러보니, 비로소 자기들이 사마리아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열왕기하 6장 19-20절


판자를 뜯고, 가림막을 걷어낸다. 다시금 창을 활짝 열고, 힘 있는, 참 실재인 그 세계를 이제 나의 현실로 받아들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