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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스카이 Sep 07. 2019

2. 정시 퇴근만 하겠습니다.

직장을 다녀야 할까.

모 그룹의 임직원 조회, 그 날은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이 단상에 올라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고 한다. 자기소개 이후 HR 담당 임원이 일부 사원에게 질문을 하였다.


HR 담당 임원: (한 신입사원에게) 이 직장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신입 사원: 이 회사는 워라벨을 잘 지키는 것 같아서 입사했습니다.  

HR 담당 임원: 워라벨이란 무엇인가

신입 사원: 그것은 "워크와 라이프의 밸런스"를 말합니다. 정시출근 정시퇴근 그리고 직장 내 명확한 업무 기준 준수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한 만큼 잘 쉬는 것이 기업의 활력이 되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룹 사장단이 앉아 있는데, 단상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젊은 신입사원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다만 이 워라벨에 대한 답변이 있은 직후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는 후문이다.


워라벨은 인생을 즐기자는 의미가 아니다.


과거,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빈곤 탈피와 산업 강국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온 국민이 열광 하며 매진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는 열심히 일하여 나라를 일으키자는 집단적 사고에 지배되었고, 산업 역꾼이 되자며 개인의 희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사실 그 시절이 거름이 되어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시대의 사상과 행위에 대해 지금의 잣대로 평가를 내리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한국사회의 문명과 가치 기준이 달라진 지금은 더 이상 이러한 노동 착취를 용인하기는 어려운 바이고, 일에 매몰되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이 없도록 조치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이다.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 낸 신조어가 "워라벨"이다.


워라벨 (일과 삶의 균형; Work-life balance)이라는 표현은 사실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개인의 업무와 사생활 간의 균형을 묘사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했다. 그래서, 성과를 위한 업무 효율을 전제하고, 그 업무 외 개인 시간 보장 등을 지향하던 말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워라벨은 효율과 일, 업무과 성과라는 중요한 가치 축은 사라지고, 그냥 "일 한 만큼 라이프를 즐기자"는 의미로만 인용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일한 만큼 삶을 즐기자는 표현을 바꿔 말하면, 일을 안 하면 라이프를 못 즐긴다는 말도 성립되는 것이다.  


집단적 지성과 조직적 프로세스를 통해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 회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반적으로 아무리 화려한 스펙의 신입 사원이 투입되어도, 전체의 업무적 성과에 기여도는 미비하다.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일이라는 것은 단순한 실행이 아니라, 어떤 효용 가치나 성과를 만들어 내야하는데, 이 수준에 이르는데 까지, 보통 입사 이후 적게는 1년, 개인차에 따라 많게는 3년도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워라벨 접근 논리라면 신입사원은 특히 아웃풋이 없으니 그 만큼 쉬는 것이 적어야 한다.


물론 이 표현이 극단적이긴 하다. 하지만 신입사원의 성과라는 부분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개인기의 화려함을 보고 채용을 결정 하지만, 진정 최고의 성과는 자신이 조직 경쟁력의 일부로 흡수되었을 때부터 나오는 법이다. 사원이 입사하여 스스로 조직에 기여도가 미흡함을 아는 것, 그래서 적극적으로 배우고자 하며, 자신이 가진 능력과 조직의 힘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 겸손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고, 생산성이 낮은 이 기간을 어떻게 빨리 줄일 수 있을지 같이 노력한다면, 특별히 성숙한 사고라고 본다. (그래서 보통 이런 직원이 잘 없는 법이다)  


혁신적 성과를 같이 의논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동료를 얻었다 한다.


자기 학습, 교육의 기간을 일을 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사실 이 기간 당신의 생산성은 매우 낮다. 그래서 더 일을 더 줘 보기도 하지만, 내용을 가르치는 것과 수정 교정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사원에게 일을 준다는 것은 2~3배의 업무 부하가 걸린다. 입사 이후 조직을 학습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일일이 가르쳐 주는 회사는 없다.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은 제공하겠지만, 이후에는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부딪히고 면면을 익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업무 부하가 더 걸리는 것을 알면서도, 조직은 그리고 선배들은 일을 주고 지켜보고 가르치고 인내한다. 이 과정을 반드시 잘 거쳐야, 혁신적인 성과를 논할 수 있는 한 명의 동료가 탄생함을 알기 때문이다.


가끔 기존의 일들에 대해 소홀히 하는 사원을 보게 된다. 새로운 방식으로 하겠다는데, 기존 방식을 개선하고 싶다면 일단 현상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꼰대라는 말을 듣게 된다. 기존 방식에 집착한다는 핀잔과 혁신적이지 않다는 후배들의 평가도 듣게 된다.


Innovation.. "혁신"이라는 이 말은 신입사원들이 면접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들 중 하나이다. 입사하면 조직의 혁신을 위해 일하겠다고 한다. 기존 후배 사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나 같이, 혁신적 사고, 혁신적 변화, 혁신적 성과 등 이 "혁신"이라는 말을 남용하는 듯하다. 대부분 기존의 것을 거부하고, 완전히 다른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하지만, Innovation의 어원을 본다면, 완전한 새로움에 대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Innovation은 in(안/inside) + nov(새로움/new) + at(만들다/make) + ion(쌓다/suffix)의 합성어이다. 안에서 새로운 것을 계속 쌓아서 보다 나은 것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즉, 혁신은 어딘가에서 갑자기 훅 날아들어 온 완전히 새로운 것을 뜻 하는 이 아니고,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과 새로움이 결합하여 더 나은 것을 이룬다는 뜻이다. 그래서 혁신적인 사고와 혁신적 성과를 위해, 기존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 내 혁신을 추구한다면 먼저 조직의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업무를 통찰해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렇게 현재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일에 가까워지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직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도 전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이 과정을 감안하면, 입사 초부터 워라벨을 강조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앞의 사례 속 신입사원처럼 입사하자마자, 워라벨부터 말하고 나오면, 조직에서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입사 전에 회사 생활에 대해 가졌던 이상과 입사 후 현실이 괴리가 생길 것이고, 결국 조직 내 불평꾼으로 전락하거나 이직을 할 개연성이 높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학원도 아니고, 어떤 선배도 할당된 직무를 포기하면서 빨간펜 선생님처럼 첨삭 지도해주지 못한다. 후배의 워라벨 따져가며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 직장 현실이다는 말이다. 그러니 배운다는 것에만도 상당 노력이 들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경쟁력이 발휘되기까지 당연히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직장은 놀이터가 아니다. 버티지 마라.


일을 배운다는 것은 본래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기업들도 생산성 개선을 위한 인프라 투자에 소극적이거나 더딘 부분이 있을 때는 여지없이 구성원들의 비난을 받게 된다. 같은 잣대로 동시에 개인의 생산성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도 자문해 볼 문제다. 배운다는 것까지 포함하여, 나의 실질적 생산성은 얼마나 발현되고 있는지 평가해 봐야 한다.


"개인의 경쟁력과 생산성에 대해 냉철한 평가도 한 번 없이, 그저 업무 환경만 탓한다면 공정하지 못하다."


회사에 개선을 요구하듯이 또한 자신에게도 엄격한가. 자신의 가치가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로서 충분한지 스스로 물음을 던져봐야 한다. 결국은 "일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인가" 하고 생각한다면 매우 유감이다. 회사의 핵심자원으로서 성장하여, 충분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저기까지 갈려고 엄청 일을 해야해. 왜 그렇게 일을 해.. 억울하게"라며 주변에서 말한다. 어디로 마음이 움직이는가. 주변의 말에 우선 마음이  끌린다면, 당신은 회사라는 조직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주체성을 가지고 직장을 다니는 다른 동료와 진정성을 가지고 일을 하는 다른 구성원들을 위해, 과감히 직장을 떠나는 편이 낫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다들 남아서 버틴다)


워라벨, 소확행, 지친 세대에게 이 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해하고 있다. 절대 쉬지 말라는 말도 아니고, 삶을 즐기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단, 회사라는 조직의 탄생 배경과 존재의 목적을 명확히 알고, 함께 공생하는 법을 이해하며, 조직의 일부로 속하지만 자립적 주체성을 잃지 말자는 취지다.


그곳은 놀이터가 아니고 전쟁터이다. 회사의 거룩한 발전이니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식의 친회사적인 주장을 열변하며 잘 보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자신을 포함한 구성원들의 가족 생계와 직결되는 곳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곳에서 지내는 시간만큼은 더 프로페셔널한 사명감이 요구된다. 주체성 없이 "그냥 일단 입사부터 하고 보자. 그러면 회사가 챙겨주겠지" 하는 식은 곤란하다. 조직과 구성원들이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다. 공생하는 방식이 다면 애초에 취업을 해서는 안 되고,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개척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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