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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스카이 Sep 04. 2019

1. 당신이 금수저라면 이 글을 읽지마라

 직장을 다녀야 하는가.

언제부터 인가 금수저 흑수저 같은 신분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나타났다.


헬조선은 어떤가. 이러한 언어유희와 신조어 문화의 배경에는 삼포 (직업, 결혼, 집 포기) 새대로 규정된 현 2030 세대의 시대적 아픔과 좌절이 여실히 녹아 있다고들 분석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만들어지는 평가는, 늘 그 무리에게는 거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러한 분석을 통해 세대를 공감하자는 말도 위선적으로 들리고 만다. 공감이 아닌 교감하는 수준으로 상황을 받아들여야, 세대 간 불통 없는 진심이 전달되는 것인데, 아직 이러한 것이 부족한 사회인 듯하다.


나도 어느덧 40대가 되었다. 전 세대를 아울러 40대라는 위치는 (어느 사회나 커뮤니티에서도) 사실 그 전후 세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편향되지 않은 글을 적어가기 위해서는 세대별로 이해를 더 공정히 하려 노력하여야 하는데, 나는 나의 선배 세대보다는 후배 세대에게 더 끌리니 참 어려운 역할이다.  


분명 세상은 예전보다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은데 주위에서는 과거에는 더 힘들었다느니, 지금은 편한 세상이라며 엄살 피우지 말라느니, 도통 이해되지 않는 말 뿐이다. 심지어 최근에 읽는 책에서도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고 팩트 체크(Fact Check)를 하고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 순위에 등장하는 [Factfullness]의 저자 한스 로슬링은 "세상은 과거보다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며, 이에 대한 많은 사실 기반의 Data를 언급한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현재가 과거 대비 더 나빠지고 있다는 불평은 사실이 아니고, 과거를 기억 못 하거나, 관념적이거나, 언론의 편향적 보도에 현혹되었기 때문이다고 설명되고 있다. 또는 현재의 모습을 너무 낙관적으로 논할 때 호황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우리의 자아를 지배하여 현재의 좋은 면들을 의도적으로 부정한것도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관념적으로 비관적이지 말 것이며, 사실에 근거하면 세상이 더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더 나아진 것인가. 그가 제시한 데이터들 인류의 수명이 늘어나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는 등 문명의 진보만으로 세상은 더 나아진 것인가. 보편적 인류의 생활수준이 개선된 것에는 동의하지만, 현세대의 아픔과 방황을 이러한 경제적 지표나 물질적 풍요의 통계로 설명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공감이 우선이다. 현실의 벽 앞에 짊어져야 하는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둘러대는 말들은 다 개소리다. 안 겪어 보면 진짜를 알 수 없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지금 세상에 대한 불만은, 인간성의 상실, 더 나아가 인간 본질을 탐구하는 진리와 사회 정의가 사라진 상실감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물질적 부족이 아니라, 정서적 부족이 더 정확한 진단이라 보인다. 그래서사실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는, 거창한 대책보다는, 시대의 문제를 함께 직시하고 교감하며 세대 간 어려움의 본질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이들이 그리운 것이 아닐까. 과거에 고난을 극복하여 온 성숙한 어른(멘토)의 따스한 말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이 될 것 같은데, 그런 어른도, 정서적 교감이나 경험의 공유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


"아직 우리는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모두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는 진심이 교감될 때 소통이 시작된다.


그런 말들을 해주고 싶다. 내 방식이 정답이라는 얘기보다 이런 방식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 그것이 어떤이에게는 현재를 살아가는 조언이나 팁이 될 수도, 또 어떤이에게는 가벼운 에세이 정도로 될 지도 모르겠다. 당장 나는 나 자신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 지를 안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래서 잠시나마 자신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되돌아보게 된다.


빠듯한 경제 형편의 흑수저 집안에서 태어났고, IMF라는 역대급 국가 위기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으며 살았고, 살다 보니 좌절하고 또 일어서길 반복했었고, 여러 기억이 흑백 사진처럼 생생하게 스쳐지난다. 난관에 힘들어 했던 기억과 극복했던 기억 모두가 고스란히 특별한 자아를 만들어 내는 거름이 되었고, 새삼 큰 의미로 다가온다. 위기를 넘어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모티브가 될 수 있을지. 글을 구성하는 지금, 작은 정서적 공감대라도 만들고 싶은 마음에, 나의 성장 이야기를 되짚어 본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을 테지만, 나 역시 학창 시절 삐뚤어질 테다 하며 그저 그런 짓궂은 짓으로 부모님 속을 많이 애태우곤 하였다. 비 오는 날만 제하고 1년 365일을 새벽마다 현장으로 출근하는 목수 부친과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며 식모 일도 마다하지 않는 모친을 보며 자랐다.  부끄럽기보다는 넘어야 할 도전 같이 언젠가는 부자가 되어 가족들에게 더 큰 행복을 주리라 가슴에 새겨졌다. 성공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부모님의 엄한 가르침에  노력도 해 보았지만 목표한 대학은 결국 불합격하고, 2 지망으로 원서를 제출했던 지방 사립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어렵게 학비를 벌어 대학을 다니던 나와 달리 넉넉한 집안의 과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였다. 나도 부자가 한번 되어 볼 수는 있을까 하며 심을 가진 것도, 어쩌면 대학시절 부자 친구를 알게 되고, 부자가 사는 방식을 보게 되면서부터였지 않을까 생각한다. "돈 버는 법"에 관한 책도 사서 보았지만, 사업을 하라느니, 부동산에 투자를 하라느니 당시에는 그런 말들이 전부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는 우선 직장을 구해야 먹고살 수 있었고, 그렇게라도 노쇠하신 부모님에게 빨리 보탬이 되어야만 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준생 시절 이력서를 100군데 이상은 넣어야 했고, 어렵게 서울에서 얻은 일자리는 일본 수출 부서였다. 2000년대 초의 취업시장. 이전 IMF로 직장을 잃은 사람과 4년제 학사 및 대학원 졸업 구직자와 구직 재수생까지, 인력 공급량이 넘쳐나자 취업경쟁률은 수십대~수백 대 일이 기본이었다. 그 경쟁 속에서 얻어낸 첫 직장이 나에게는 너무 큰 기쁨이었고, 너무 소중하게 여겨졌다.


흑수저에게 월급쟁이가 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이다.


아마 이러한 관점은 살아온 환경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더욱이 대한민국 평균인 대부분의 흑수저들에게, 가장 적은 실패 리스크로 돈을 벌 수 있는 곳. 이 직장이라는 곳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일지 모른다. 나 역시 그저 평범한 집안 배경에서 태어나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가다 보니,(부자는 생각하는 방식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사실 현재의 성공도 실패도 월급쟁이 생활이 그 출발점이었다.


근면함 하나로 우직하게 살아온 부모님은 20년 만기 적금과 은행 대출로 20평 자그만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 수 있었다. 평생 재산이라고는 그 작은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던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할 곳 따윈 애초에 없었다. 나는 30대 초반의 직장인이었지만, 서울살이 생활에 새는 돈이 많았다. 여전히 홀로서기를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고, 정작 결혼을 생각하면서부터는 경제력이 부족한 자신의 능력 탓하고 한탄하기도 한다. "삶은 삼류이고, 결혼은 사치다"는 좌절감에 결혼을 미룰까도 했지만, 마음으로 만난 현재의 아내와 나는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기로 하였다. 결혼 예비 자금은 커녕 신혼 아파트 20평의 전세보증금 3000만 원마저도 은행 대출로 시작하였다. 신혼 초부터 빚으로 시작하니, 이를 청산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유일한 소득원인 직장에 최선을 다한다.


직장의 필요성과 월급쟁이의 혜택을 우선 논하려 한다.


어떤 책에서는 급여 생활자의 삶이 상당히 비관적으로 묘사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벗어나야 할 방식이 바로 월급쟁이라고 직술 하는 책도 있다. 땅 투자, 주식투자, 그리고 장사를 하라, 스타트업을 하라는 조언들이 넘친다. 그리고 사실 그런 조언이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나 역시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 그런 방식을 적절히 활용하며 부를 늘여왔다. 즉, 급여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경제적 부족함이 엄연히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월급쟁이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되겠다.


직장이 아니라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하지만, 나처럼 가진 돈도 집안 배경도 없는 일반인에게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 리스크 관리이다. 다시 말해


"실패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흑수저가 잘못된 투자로 쫄딱 망하는 사례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매월 급여를 보장하는 직장은 부의 창출원 중에서 가장 실패 리스크가 적은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머뭇거림 없이 월급쟁이의 삶을 택하였고, 빚을 갚고, 저축을 하고, 조직 속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한 법을 배우려 노력했다. 당시 나의 환경에서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이 있었을까. 가족의 유일한 소득 창구인 직장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가계 운영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였다. 그래서 가급적 더 오래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잘 터득해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신은 흑수저 인가 금수저 인가. 당신이 금수저라면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하므로, 이 글을 읽지 않기를 권한다. 요즘 시중에 대세로 자리잡은 [소확행], [수고했어], [아무것도 안해도 돼], [쉬어가자] 같은 말도 그다지 나오지 않으니, 그런 직장인의 애환을 힐링하여 주는 글을 기대를 하는 분도 이 글이 맞지 않을 것 같다. 당신이 흑수저라면 그리고  부자가 되고 싶다면 이 글이 비록 쓴 소리로 들리지 언정 읽어보길 바란다. 직장은 흑수저가 부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그래서 직장의 냉엄한 현실과 직장인으로서 과연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옳을지에 대해 적어 보려 한다. 그리고 흙수저로서 직장과 월급쟁이의 혜택을 재평가하고,  안에서 발전적 삶의 동력을 찾고, 그리고 부자로 가는 방법을 정리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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