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당분간은 누릴 수 없겠지만
우리가 걷고 있는 길 옆으로는 주황색 노을이 일렁이는 도루강이 있었다. 포르투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불리는 곳이었다. 강에는 낮에 관광객을 태우고 다녔을 유람선과 요트가 정박되어 있었고, 길에는 빨간색 지붕을 가진 건물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건물 앞에 소박하게 서서 색소폰을 부는 할아버지와 그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드는 사람들도 보였다. 펍에서는 레알과 맨유의 축구 경기를 틀어주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자주 함성을 지르고 때로는 욕을 했다. 와이너리의 도시답게 펍이 아주 많았고, 사람들은 더욱 많아 열기가 2002년 월드컵 때의 한국처럼 뜨거웠다. 우리는 슬쩍 그들 사이에 끼어 들었고, 그들은 낯선 동양인의 등장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레 우리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잔뜩 흥분한 얼굴로 방금 그 장면 봤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최대한 아쉬운 표정을 하고서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응원하는 건 포르투갈 출신의 호날두였고, 호날두가 공을 몰 때마다 환호를 했다. 나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포르투갈에 있구나,를 물씬 느끼고 다시 나와 도루강가를 걸었다.
한참을 걸었을 무렵, 나는 한 때 나의 직장 선배였던 조에게 고백했다.
언니, 언니가 남자였으면 지금 언니랑 사랑에 빠졌을 것 같아요.
조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해할게. 아무나 데려와서 여기 같이 걸으면 전부 사랑에 빠질 것 같지 않아?
여기는 사랑하는 사람이랑 꼭 다시 와야겠다, 그쵸.
나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여기로 오려고.
우리의 남자친구는 둘 다 한국에 있었다. 포르투는 런던, 파리, 니스, 바르셀로나를 지나 5번째 여행지였는데 이토록 연인이 그리워지는 도시는 처음이었다. 당장 이 감정을 나누고 싶어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4시인 시간이었다. 8시간의 시차가 얄미웠다. 나는 두 통이나 더 전화를 걸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결례였다. 포르투는 도무지 사랑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도시였다.
도루강의 낭만을 뒤로 하고 집에 가기 아쉬워 술이나 마시자며 넓은 광장까지 걸었다. 광장에는 포르투 특유의 파란색 타일이 덮인 레스토랑이 많았는데 파란 하늘과 잘 어울렸다.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와인과 하몽을 주문했다. 버스킹 소리와 강에서 흐르는 물소리, 새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데 섞여 장면이 더욱 생생해졌다. 거기에 꿈꿈한 하몽 냄새까지 더해지자 조와 나는 지금 너무 과하게 행복한 것 같은데 혹시 미래의 행복을 끌어다 쓰고 있는 건 아니냐며 웃었다. 나는 그 때 이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면 미래의 조와 내가 조금 불행해져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조가 내 얼굴 이렇게 빨갰었냐며 놀랄 때쯤, 우리는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걸었다. 행복하게 취한 술은 오히려 세상을 또렷이 보이게 만들었다. 분홍 노을을 만들어주던 해는 사라졌고,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길을 밝히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 집 앞에 다다랐다. 그 앞에는 보라색 꽃이 핀 나무들이 아주 많았다. 그 보라색 꽃이 생소한 우리는 한참을 서서 나무를 바라봤다. 그러다 조는 나무 아래에 털썩 앉더니 말했다.
너도 와서 앉아봐.
어릴 적 동화에서처럼 우리는 큰 나무 아래에 앉아있었다. 술 취한 어른 둘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나무를 올려다보는 모습이라니, 조금 우스웠고 그래서 더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아, 진짜 집에 가기 싫다.
나는 조만큼이나 붉어졌을 얼굴로 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우리의 여행은 아직 열 흘이 넘게 남아있었는데도, 오늘 하루의 바짓가랑이를 꼭 붙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포르투는 연인이 그리워 집에 가고 싶게 만들었다가, 오래도록 나무 아래 앉아 꽃을 보고 싶게 만드는 이상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