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건 그런 메시지보다 일일 노브라 체험 같은 것,
언니에게
첫 번째 편지는 거창하게 쓰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오늘 하루를 되돌아봤어요. 프리랜서가 된 뒤론 그럴듯한 외출복을 입어본 지도 오래된 것 같아요. 별다른 일 없는 평화로움이 익숙한 듯싶다가도 별안간 이것이 무기력이 아닐까. 월요일과 일요일, 오후 2시와 새벽 2시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는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얼마 전 언니에게 노브라 프로젝트를 하겠노라 선언했어요. 왜 그 말을 언니한테 해야 했냐고 물어본다면, 우리가 속옷회사에서 만났고 언니가 속옷 디자이너라는 점도 한몫했을 거예요. 기획자와 디자이너로 만나 오늘 뭐 먹을까요? 대신, 브라 사이즈가 어떻게 돼요? 먼저 물어본 우리. 같이 밥을 먹으면서는 브라질리언 제모와 질염에 대해 얘기했어요. 느닷없이 화장실로 데려가더니 샘플 속옷 좀 입어보라던 언니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종종 웃음이 나요. 속옷 회사에 다니면서도 속옷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고, 도대체 속옷을 좀 편하게 입을 수는 없는 거냐고 화를 냈던 우리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1년이 넘은 지금까지 노브라 타령을 하고 있네요.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어찌 됐건 노브라를 시도할 수 있어졌으니까요. 2018년 우리가 팔던 브라엔 손바닥만 한 패드가 있었는데(실제로 손바닥 모양 패드도 있었잖아요), 가슴골이 깊어질수록 예쁜 속옷이었는데. 그나마 지금은 노후크 노 와이어를 내세우는 브라들이 많아졌어요. 3년 전만 해도 브라렛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참 많았었는데, 지금은 브라렛 아닌 속옷을 보기가 힘들어진 것 같아요. 탈코르셋, 노브라, 하는 단어들이 마치 유행처럼 속옷 시장을 휩쓸었기 때문일까요.
노브라는 왠지 쿨한 여성의 대명사가 된 것 같아요. “브래지어는 액세서리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던 여성이, 노브라로 공항 패션을 선보였던 또 다른 여성이 멋지게 끌어올린 키워드 인지도 모르겠어요. 언론은 그것을 논란이라 표현했지만,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세상만사가 논란일 뿐이죠. 캐나다에 머물렀던 4개월간 저는 길거리 어디서나 노브라 여성을 봤어요. 자연스러웠고, 아름다웠고, 그래서 저도 꼭 해보고 싶었어요. 이젠 우리나라도 노브라가 건강한 것이란 인식이 좀 생겼잖아요.
언니는 마지막으로 노브라로 길거릴 활보한 때가 기억나세요? 저는 며칠 전 일요일이었는데, 걸을 때마다 맨가슴에 차가운 폴리에스터가 닿는 느낌은 너무 생소했어요. 길가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이 다 내 가슴만 보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렇다고 집에 뛰어가자니 맨가슴이 흔들리는 느낌도 너무 별로였어요. 결국 애매하게 한쪽 팔을 다른 쪽 어깨에 걸치고서 걸었다니까요. 분명히 쿨한 느낌인 줄 알았는데, 저는 왠지 죄지은 사람처럼 어깨를 꼭 말고 집에 돌아왔어요. 결론적으론, 하루가 조금 불편해졌어요.
게다가 저는 슬림한 핏의 옷을 좋아하는데, 노브라로는 도저히 입을 수가 없더라고요. 내 가슴이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그 실루엣으론 엄마 아빠 눈도 못 마주치겠는데 누굴 만나겠어요. 쿨한 여성이 되고 싶었는데,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못한 여성임을 깨닫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뭐.. 그냥 안 입는 게 쿨인가.. 누군가에게 이건 핫이다… (흠흠)
모아주고 올려주는 것에서 건강하고 편안한 속옷으로, 속옷의 메시지는 많이 달라졌어요. 언니, 근데 뭐가 진짜 건강한 속옷일까요? 속옷회사의 마케팅은 결국 시장의 니즈를 따를 뿐일 테니 뭐가 진짜 ‘건강’하고 ‘편안’한 속옷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겉으로 보이지 않는 속옷에까지 유행이 있다는 게 조금은 우습기도 하네요. 뽕브라의 유행이 지나간 것처럼, 브라렛의 유행도 언젠가 지나갈까요? 언젠가 노브라의 대유행도 올까요?
언니도 알죠? 2018년, 페미니즘이 한국을 강타한 이후로 여성을 향한 ‘마케팅’ 메시지가 늘어났다는 거.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를 위함인 것 같은 무엇도 결국 상업적인 것이라는 생각. 거기에 속지 말자는 다짐. 그리고 내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건 그런 메시지보다 일일 노브라 체험 같은 것, 이렇게 언니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에 있다고. 자주 편지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