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사람들의 은밀한 습관들

방수 재킷과 커피 한 잔 사이에서 발견한 시애틀의 리듬

by 페리플럼


작가노트: 낯선 도시에 정착한다는 건 어쩌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작은 실수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도시만의 독특한 리듬과 코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 글은 지난 5년간 시애틀이라는 도시의 언어를 배우며 느낀 순간들, 그리고 '거의 현지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발견한 작은 기쁨들에 관한 이야기다.




매일 아침, 침대 옆 작은 흰색 리모컨을 더듬어 찾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한 번의 클릭으로 전동 블라인드가 올라가면 작은 침실의 삼면을 차지하는 프리몬트 3층 집의 통유리창들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관측소처럼, 이곳에서 바라보는 낮은 건물들과 그 너머 펼쳐지는 동네 풍경은 시애틀이 오늘 어떤 표정을 지을지 미리 알려주는 첫 신호다.


시애틀에서 보낸 약 5년 동안, 이 도시의 미묘한 습관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가을이 되니 일몰이 빨리 찾아온다며 한숨짓는 사람들이 정작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루프탑 바에 몰려드는 모습이라든가, 카페에서 펌킨 스파이스 라떼(초보자용)가 메이플 카다멈(진짜 시애틀 사람들의 선택)으로 바뀌는 순간으로 가을의 진행 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든가. 또는 지난주 "태국 우기 같았던 폭우"와 같은 특별한 사태가 아니고서는 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현지인들의 묵시적 약속 같은 것들.


창밖 사람들이 날씨와 씨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야생 속 시애틀인 관찰 가이드'를 머릿속에 만들게 되었다. 이건 친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또는 비 내리는 숲길을 함께 걸으며 나눌 법한 비밀스러운 정보들이다.



언제든 산으로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의 도시


내 첫 번째 시애틀 깨달음은 어느 평범한 화요일, 문득 내가 주변 산으로 즉흥 등산을 떠날 태세를 갖춘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였다. 테크 회사 직원들은 기능성 외투를, 카페 바리스타들은 방수 신발을, 대학 교수들은 땀 흡수 잘 되는 옷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주말 장터에 나온 노부부는? 역시 등산복 차림이다. 워싱턴대 로고가 새겨진 보라색 후드티를 입은 학생? 십중팔구 그 노스페이스 백팩 속에 접이식 등산 스틱이 숨겨져 있을 것이 틀림없다.



나쁜 날씨란 없어, 부적절한 옷차림만 있을 뿐


일단 오해부터 풀자. 시애틀은 미국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타이틀은 알라바마의 모빌이나 플로리다의 펜사콜라 같은 남부 도시들이 가져갔다. 우리가 가진 건 오히려 날씨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태도다. "나쁜 날씨란 없고, 부적절한 옷차림만 있을 뿐"이라는 명언은 시애틀 사람들의 주문과도 같다. 이 코드를 한번 깨달으면—또는 비에 세 번 정도 흠뻑 젖고 나면—이 도시의 진정한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시애틀 사람들은 자연을 견디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아이들처럼 즐긴다.


그러니 모두가 언제든 산행을 떠날 듯한 복장을 하고 있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을까? 아마도 그들은 점심 시간에 갑자기 트레일을 달리거나, 회의 직후 바로 산책로로 향하거나, 또는 저녁 식사 전 즉흥적으로 폭포 구경을 갈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 모두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을 마음 속 성지처럼 여기고, 이런 옷을 입으면 왠지 더 활동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도 한몫한다. 시애틀에서는 고어텍스가 넥타이보다 훨씬 중요한 사회적 지위 상징이니 말이다.



시애틀 언어의 숨겨진 암호들


시애틀에서 현지인처럼 보이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시애틀식 말하기'를 마스터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홍대가 어느 쪽이에요?"와 "홍익대학교 가는 길 좀 알려주시겠어요?"의 차이만큼이나 명확하게, 여기에도 현지인과 새내기를 가르는 언어 코드가 있다.


고속도로 이름을 부를 때가 첫 번째 함정이다. 여기서는 "I-5"라고 해야지, 절대 "The 5"라고 말하면 안 된다. 이 한 마디로 당신은 즉시 '캘리포니아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나도 처음에는 이 차이를 알아채지 못했다가 우연히 "오늘 The 5가 끔찍하게 막히더라고요"라고 말한 후, 사람들의 "너 샌프란에서 왔니?"라는 반응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한 문장으로 내 정체가 탄로난 순간이었다.


날씨에 대한 태도도 현지인과 관광객을 구분 짓는다. 관광객들이 "비가 많이 오네요"라고 말할 때, 시애틀 사람들은 "이건 그냥 이슬이에요"라고 대답한다. 시애틀에서는 우산을 펼치는 순간 당신이 관광객임이 드러난다. 현지인들은 대부분 후드가 달린 재킷이나 방수 모자로 간단히 비를 피한다. 서울 지하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산 보관함이나 비닐 우산 포장기도 없어, 우산을 든 모습은 "저 여행 중이에요"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커피 주문도 현지인과 관광객을 가르는 시험대다. 스타벅스 본고장인 시애틀에서는 커피 주문이 하나의 언어와도 같다.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말하면 바리스타는 "어떤 방식으로 내려드릴까요? 푸어 오버, 드립, 프렌치 프레스, 에어로프레스?"라고 되묻는다.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다면 "커피 주세요" 대신 "싱글 오리진 에티오피아 드립으로 주세요"라고 말해보자.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디카페인으로 해드릴까요?"라는 질문에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시애틀에 적응했다는 신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대한 자주 들리는 답변들이 있다. "우산 대신 후드달린 방수재킷을 입기 시작했을 때", "비가 와도 야외 활동을 취소하지 않게 되었을 때",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닌 드립 커피 장비를 사기 시작했을 때" 같은 순간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작은 습관들의 변화가 시애틀 현지인이 되어가는 과정의 흔적이 아닐까?



다리의 철학: 시애틀 교통의 숨은 주인공


시애틀에서 거리는 마일도, 킬로미터도 아닌 '시간'으로 측정된다. "여기서 얼마나 걸려요?"라는 질문에 "약 5마일 거리예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 "교통 상황 좋으면 15분, 그렇지 않으면... 글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말에는 시애틀의 모든 교통 불확실성이 담겨있다.


그 불확실성의 중심에는 '다리'가 있다. 시애틀 사람들의 집단 트라우마를 측정한다면, 그 단위는 '주요 다리 사건의 횟수'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어떤 약속이든 다리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갑자기 열리는 도개교(배가 지나가기 위해 들어올려지는 다리), 예상치 못한 폐쇄, 그리고 톨게이트 전략까지.


도개교는 시애틀 생활의 독특한 변수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서는 배 한 척이 지나가기 위해 수십 대의 차가 기다리는 게 일상이다. 연어가 많이 돌아오는 가을철에 우리 집 앞 프리몬트 다리를 건너려 한다면? 일정에 15분을 추가하는 게 좋다. 한 번은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조바심 내며 높이 열려진 다리 앞에서 기다리는데, 현지인들은 이미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바람을 쐬며 지나가는 배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일상의 리듬이고, 나는 아직 그 리듬을 배우는 중이었던 것이다.


다리 폐쇄에 관한 이야기는 시애틀 사람들의 단골 대화 주제다. "웨스트 시애틀 다리 대란" 같은 사건은 마치 역사적 사건처럼 언급된다. 2020년에 균열이 발견돼 2년 넘게 폐쇄되었던 이 다리는, 6만 명이 넘는 주민들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2년 동안 어떻게 출퇴근했어?"라는 질문이 마치 한국의 "IMF 시절 어떻게 버텼어?"처럼 공감대를 형성한다.


2023년에 발생한 경전철 확장 공사의 '콘크리트 사태'는 또 다른 전설이 되었다. 오랜 공사 끝에 드디어 개통 당일, 부실한 콘크리트 배합이 발견되어 공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 이 사건은 시애틀 사람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또 다른 챕터가 되었다. 시민들은 기대하던 새 교통망이 또다시 미뤄지는 것에 집단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교통 인프라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완료되는 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시애틀의 또 다른 생활 규칙이니까.


그리고 여기 현지인들만 아는 작은 비밀이 있다. 모두가 520 다리 통행료에 대해 불평하지만, 오래된 시애틀 주민들은 속으로 통행료 제도에 감사하고 있다. 왜냐고? 통행료 징수 전의 지옥 같은 교통 체증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제 돈을 아끼려는 사람들은 모두 무료 다리인 I-90으로 우회하고, 520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려는 우리를 위해 한산해졌다. 마치 조용한 회원제 도로를 얻은 기분이랄까.


다들 효과가 없다고 불평하는 시스템이 실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는 아이러니.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시애틀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은유가 아닐까? 비가 내리는 도시에서, 우리는 모두 제 각각의 방식으로 흐름에 적응해간다.



시애틀의 계절 수수께끼: 봄은 달력과 다른 리듬으로 온다


한국에서는 입춘이나 춘분으로 봄의 시작을 알리지만, 시애틀에는 더 미묘한 계절 감각이 있다. 3월 달력은 봄을 약속하지만, 시애틀의 봄은 마치 수줍은 연인처럼 가끔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하루는 갑자기 20도까지 오르며 봄이 왔음을 선언하다가도, 다음 날에는 다시 차가운 비로 겨울을 연장한다.


동부에서 자랐거나 한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 '봄의 밀당'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서울의 벚꽃이 4월 초에 만개하는 것과 달리, 시애틀의 벚꽃은 2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지역과 품종에 따라 제각각 피어난다. 첫해에는 이 긴 꽃 시즌이 혼란스러웠지만, 이제는 오히려 봄의 축제가 더 오래 이어진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시애틀 계절 특징은 여름의 지각이다. 다른 도시들이 5월부터 여름을 시작할 때, 시애틀은 7월 4일 독립기념일까지 봄비를 고집한다. 마치 하늘과 약속이라도 한 듯, 그때까지 흐리던 날씨가 갑자기 맑아지는 현상은 너무나 정확해서 농담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시애틀 사람들은 이를 문화적 특권처럼 여긴다. "우리만의 비밀인데, 여름이 늦게 오는 대신 9월말까지 화창하게 머물러요"라고 속삭이듯 말하는 그들의 표정에서 묘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시애틀 생활 3년 차에 발견한 또 다른 특징은 날씨 예보에 대한 반응이다. 서울에서는 황사나 미세먼지 수치를 체크하는 것처럼, 시애틀 사람들은 "내일 해가 나온대요!"라는 문장에 집단적 설렘을 느낀다. 날씨 앱을 들여다보며 "목요일에는 해가 10시간 이상 뜬대!"라고 외치는 동료의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릴 정도다.


봄철에 시애틀을 방문한 친구들은 또 다른 혼란을 겪는다. 4월 하루 동안 아침에는 두꺼운 재킷이 필요하다가, 오후에는 반팔을 입어야 하고, 저녁에는 다시 스웨터를 걸쳐야 하는 일교차에 당황한다. 시애틀 사람들이 항상 겹겹이 레이어드 패션을 고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준비가 전부인 도시에서, 복장은 기상 예보보다 더 믿을 만한 생존 전략이다.


이런 독특한 계절 감각을 방문객들에게 설명하는 방식도 현지인과 새내기를 구분하는 시험대다. "네, 여기는 4월에 여름옷과 겨울옷을 동시에 꺼내놓아야 해요. 한 번도 날씨를 믿은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는 그 표정을 완성하는 데 나는 몇 년이 걸렸다.


물론 나는 아직 '완전한' 현지인은 아니다. 진짜 시애틀 사람들은 90년대 그런지 음악의 전성기를 직접 경험했고 (너바나의 리드싱어 커트 코베인과 홈파티를 했다는 라떼 이야기를 몇 명에게서나 들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관광지가 된 장소들이 한때 현지인들만의 아지트였던 때를 기억한다. 아직 시애틀 맥주로 유명한 '레이니어'는 단순한 맥주 브랜드가 아닌 젊은 시절의 추억이며, 이제 사라진 '슈퍼소닉스' 농구팀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도시의 상징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시애틀에 '사는 것'과 시애틀 '출신'인 것의 차이를 만든다. 비록 나도 이제 나만의 시애틀 이야기를 하나둘 모으고 있지만.


아침 산책을 위해 방수 재킷을 입고 한때는 "절대 필요 없어"라고 생각했던 비싼 방수등산화를 신으며, 어느새 시애틀의 스타일에 완전히 항복한 내 모습에 미소 짓는다. 이제 거리에서 우리 강아지와 나는 아웃도어 브랜드로 무장한 '거의-현지인'이 되어 봄비와 햇살이 번갈아 내리는 도시를 함께 걷는다. 시애틀은 더 이상 그저 지도 위의 한 도시가 아닌, 나의 집이 되었다. 적어도 내 유목민 본능이 다시 깨어날 때까지는.



시애틀의 봄비와 햇살 사이에서 집을 찾는 중,
페리플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