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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머넌트바이올렛 Sep 11. 2022

팜므파탈이 될 줄 알았던 나의 소녀시대


김종욱 찾기


나의 비공식적 첫사랑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해 운동회에서 함께 춤을 춘 남자아이였다. 당시 1학년들만이 누릴 수 있는 꼭두각시 춤을 연습하며 처음 본 그 남자아이가 어느 날 자려고 누우니 문득 떠올랐다. 몇 반인지도 모르고 말 한마디 안 해봤는데 그 남자아이는 왜 떠올랐을까? 아마 얼굴이 완전 취향저격이었나 보다. 세월이 흐른 지금,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체육복에 적혀있던 이름 석자는 잊지 않고 기억한다. 그 이름 ‘김종욱’. 하필이면 이름이 김종욱이라 잊히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평생 궁금할 녀석.


초딩연애

초등학교 4학년, 전학을 했다. 서울에 살았던 나에겐 그저 시골이었던 이 학교는 반이 달랑 두 개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시골 체질이었던 걸까? 연필을 내려놓고 해가 질 때까지 친구들이랑 고무줄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중독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5학년 때 한 남자애가 고백을 했다. 4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유심히 지켜봤다며 쪽지를 썼는데 멀끔하게 잘 생겨서 좋다고 덜컥 말해버렸다. 초딩의 연애란, 체육시간이 끝나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주고 핫브레이크를 서랍에 서프라이즈 하게 넣어주는 것. 그거였다.


우정이 뭐길래

중학교 1학년 종무식, 같은 반 남학생이 내 책상 위에 키티 목도리를 올려놓았다. 진짜 키티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래서 옆에 있던 다른 친구에게 줬다. 그 친구는 겨울방학 내내 이 목도리를 하고 다니다 2학년 새 학기가 시작할 때도 하고 왔고 그렇게 나를 향한 그의 짝사랑도 끝이 났다. 중학교 2학년 영화 관람 특별활동을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힙합을 했었나 싶은 선배에게 꽂혀 매일 같이 신발주머니에 편지를 넣어놨고 결국 썸 타기에 성공. 꽃길을 걷나 했는데, 같은 반 친구도 이 오빠를 좋아하며 삼각관계에 돌입. 그렇지만 썸보단 친구가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입시생

고등학생이란 신분은 정말이지 가혹했다. 1학년 때는 2학년 때 문과 이과 진로를 정해야 하니 공부해라, 2학년 때는 곧 3학년이니 공부해라, 3학년 때는 정말 그야말로 입시생이다.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지만 책임감이 강했던 나는 고등학생의 신분에 책임을 지느라 연애세포가 말라죽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재수를 하면서 죽은 세포의 행방도 묘연해졌다.


주사파

대학교 신입생, 나는 주사파였다. 주 4회 미팅파. 연애세포 무덤에 찾아가 당장 부활을 외칠 시기가 찾아오긴 했는데 여대에 입학했다. 죽은 연애세포를 살리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수많은 미팅은 나에게 '연애'가 아닌 '게임 능력치'를 찾아주었다. 마지막 미팅 땐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상대방분들을 택시 태워 집에 보내드렸다. 미팅 한 번에 대략 4시간, 주 16시간, 한 학기 200시간을 쓰고 알았다. 미팅은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오래된 이야긴데 어릴 때 우리 언니는 내가 팜므파탈이 될까 봐 걱정했다. 그 바탕엔 글로는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팜므파탈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는 솔로다. 예전에는 쉽게 마음이 가던 것들이 더 이상 쉽지 않아 진 30대. 나에게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면 초등학생이 되어 저 김종욱부터 찾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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