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많은 고등학생 (1)
나는 태어나길 예민하게 태어났다.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을 순간에도 나는 무언가 불편했고 힘들었다.
나는 욕심이 많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도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많은 순간 갈팡질팡한다.
고민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욕심이 많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시절, 나는 서울에 대한 환상을 품었다. 지방에서 자라와서 그런지 서울에 대해 큰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울로 대학을 가야겠다는 목표를 품었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아무래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계획들이 필요했다.
성적도 나름 잘 받았고 특목고에 갈 수 있는 성적쯤 되었나보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그 학교는 내 인생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학교였고 나는 망설였다.
엄마에게 특목고 가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학비가 얼마냐는 대답 아닌 질문을 들었다.
"음.."
선생님께 가서 학비가 많이 비싸면 못갈 것 같다고 했을 때 선생님은 공립학교니 도전해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엄마의 허락을 얻고 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본 후 입학을 했을 때까지 나는 설렘만 가득했다. 그렇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건 기숙사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명한 엄마바라기로 수련회 2박 3일 다녀와서 엄마를 보면 울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분리불안이었을까 싶다.
입학 첫 주부터 기숙사에 들어가 생활하며 매주 토요일 기숙사를 나와 일요일에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는 삶을 반복했다.
'와, 이거 쉽지 않다.'
다른 친구들은 드디어 부모님에게서 벗어났다고 좋아하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집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이 더 커졌다. 내가 선택해서 온 길이기 때문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원망을 하자면 내 자신이 되었을 뿐이다.
그때부터 더욱 붙들었던 건 성경책이었다. 원래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이기도 했지만 항상 내 곁에 계신다는 말씀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낯설지만 나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성경책이었다.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릴 찰나 기숙사 사감선생님이 마이크를 켤 때 나는 소리 '탁, 탁'에 잠이 깨어 기숙사 일 층에 있는 학습실로 내려왔다. 어김없이 펼쳐든 성경책을 들고 '제발 오늘도 잘 버틸 수 있게 해주세요. 토요일이 눈깜짝할 새 와있게 해주세요.'라며 기도했다.
기도가 간절해서였는지 하루하루 가는 속도가 빠르게 느껴졌다. 나는 '금요일 조증'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금요일 저녁만 되면 기분이 정말 좋았다. 다음 날이면 집에 갈 수 있으니까.
가장 우울할 땐 일요일 저녁이었다. 기숙사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너무 힘들었고 슬퍼졌다.
유약한 내가 적응이라도 잘 할 수 있도록 따뜻한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좀 달랐을까? 나의 담임선생님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성경책을 생명의 동앗줄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는 나에게 '예수님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며 방학동안의 성경학교를 못가게 하기도 했고 열이 38도가 나는 나에게 병원을 갈 수 없도록 별로 아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병원에 갔다오겠다는 거짓말로 외출을 했다가 사실은 집에 다녀와서 진단서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나의 자백에 그냥 학교를 나가라며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 바운더리 내에 있어야 하는 학생이 자꾸 꾀를 써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걸 못하게 하기 위해 더 강하게 말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됐든 이런 선생님과 1년을 함께 하며 버티긴 버텼다. 내년엔 좀 마음 넓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그러나 2학년이 되어 개학식날에 마주한 선생님은 또 만났다며 우리에게 반가운 미소를 보였다.
'내 희망이 무너졌구나.'
나는 절망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사람과의 또 다른 일 년이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