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대학생
아니, 공황장애는 나에게 끈질기게 붙어있었다.
이쯤 되면 다시 시작되는 자책.
'나는 뭐가 문제인가.'
또 쓰러질까 봐 나에게 부담되는 일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힘드니 발표는 최대한 하지 않는 수업으로, 복수전공도 발표 많은 경영학보다는 공부만 하는 경제학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동아리도 하지 않는 것으로.
수업이 끝나면 어서 집에 가기 바빴다. 지금 돌아보면 그 공황장애라는 것을 방패 삼아 내 삶을 적극적으로 살지 못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근시안적 사고를 하고 있었다.
남들 다하는 흔한 연애도 안 했다. 친구로 지낼 때는 괜찮던 애들도 이성으로 다가오면 거부하기 바빴다. 이성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준비하는 하루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다. 너무 긴장되었고 여유롭지 못했다. 까딱하면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부담을 느끼는 관계는 나에게 해로울 거라며 최대한 나에게 불편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냥 지금 돌아보면 오랫동안 공황장애와 불안을 느끼면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던 것 같다. 남들 다 잘하는 일상생활이 어렵고, 나만 멘탈이 이렇게 약한 것 같고, 대부분 부모와 잘 떨어져 사는 것 같은데 나만 못하는 것 같고. 이런 생각들이 자신감 없고 자존감 낮은 애로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누가 나를 좋다고 해도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를 왜 좋아하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또, 오랜 시간 자주 쓰러지다 보니 '아, 이 친구를 만나다가 내가 쓰러지면 어떡하지? 당황하지는 않을까? 나를 귀찮아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게 되었다. 익숙한 사람들만 내 주변에 있도록.
스스로 별난 사람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원체 예민하게 태어나기도 했거니와 엄마의 '넌 참 별나다'라는 반복된 말을 듣고 자라면 스스로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 모든 것들이 그리고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다 내가 별나서 일어난 것 같았다. 예민하니까 기숙사도 못 견뎌, 예민하니까 큰 소리도 싫어해, 별나니까 공황장애도 겪어, 별나니까 예민함을 누르지 못하고 우울증까지 걸려. 뭐, 어찌 됐든 예민한 내 성정이 병을 부른 거 같기는 하다. 그런 성격 덕에 공부를 열심히 했던 장점 아닌 장점도 있다. 잘되고 싶어서 나를 볶지 못해 안달이었으니까.
그렇게 좋은 시간 모두 날리고, 어중간한 성적으로 취업을 준비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C+였던 과목들을 따로 돈 들여 재수강하지 않았다. 첫 번째에 받은 내 성적 부끄럽기는 해도 그때의 내가 그렇게 받은 이유가 있겠지 하며 재수강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참 대담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4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이곳저곳 자기소개서와 서류들을 넣어봤다. 몇 군데에서 서류합격을 하기도 했지만 최종합격까지는 매력적인 지원자가 아니었나 보다. 어서 빨리 취업해야 할 텐데.. 유명한 인사 유튜버가 진행하는 자소서 캠프도 수강하면서 열심히 준비했다. 치열하지 못했던 대학생활 중 나에게 유일한 치열함이었던 아르바이트들에서의 경험을 하나씩 뽑아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했다.
공고를 살펴보던 어느 날, 나는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공고를 찾았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인턴을 뽑아 훈련시킨 후 미국지사에서 일하는 형태였다. 미국은 나에게 어릴 적부터 막연한 희망을 주는 곳이었다. 누구에게나 막연히 멋져 보이는 곳 있지 않은가. 그곳이 나에게는 미국이었다. 아메리칸드림을 외치는 세대는 아니더라도 콘크리트 빌딩 숲을 이룬 미국은 나에게 꿈이었다.
'그렇게 멋지다던데, 가보고 싶다. 한 번 도전해 볼까?'
그렇게 공고를 본 후 지원서를 작성하고 며칠 뒤 서류합격 메일을 받았다. 1차 면접을 본 후 2차 면접 안내 메일을 받았고, 결국은 최종합격했다. 글로 쓰니 이렇게 간단한 것 같지만 그 결과를 기다리는 내 내 안절부절못했다. 제발 꼭 가게 해달라고 시간 날 때마다 기도하며 이메일함을 들락날락거렸다.
결국 첫 취업 미국으로 했다. 곧 미국에 간다.
공황장애 약 들고 떠나는 미국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제발 그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