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많은 인턴 (1)
'우와, 미국이다.'
공항에 내려 처음 밟아본 미국 땅.
이게 첫 감상이었을까? 아니.
'이게, 미국이야?'
콘크리트 빌딩은커녕 눈앞에 보이는 건 사슴들이었다.
이렇게 도로에 사슴이 많아도 되나. 정확히는 사슴 사체.
큰 충격을 받았지만 시차적응이 안 되어 너무나도 피곤했다. 숙소로 가는 동안 멀미가 나서 죽겠네 싶었다. 아, 그래도 가는 길 내내 미국이긴 미국이다 싶었던 건 건물 간의 거리가 정말 멀다는 것이었다. 큰 땅을 이렇게 활용하네.
1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한 숙소는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곳이었다. 한적하니 평온한 게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경험 후 깨달은 거지만 미국은 대부분 이렇게 시골처럼 생겼고, 매체에서 보던 빌딩들은 보통 큰 도시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먼저 도착해 살고 있던 룸메 언니와 앞으로의 날들을 함께 살게 되었고, 가까운 곳에 다른 동기들도 살고 있어 적응을 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회사에 가는 첫날, 정말 긴장되고 설레기도 하면서 출근을 했다. 아, 나의 팀원들은 대부분 미국인들이었다. 이 기회에 영어로 말하는 능력을 키워보자 하며 기쁜 마음으로 임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일을 주지 않으신다. 다들 바빠 보이는데, 하물며 내 동기들도 엄청 바쁜데 나만 한가했다. 옆에 있는 내 사수 A 씨에게 일 좀 주시면 안 되겠냐며 물었다.
"끈기씨는 Patience가 없네요?"
음.. 일 달라고 재촉했다가 무안해졌다. 사수는 뭐라도 줘야 할 것 같았는지 회사 내 조직도를 외우라고 했다. 처음에는 회사 사람들 어차피 알게 될 거 왜 구구단 암기하듯 외워야 하나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몸 담은 팀의 특성상 회사 사람들을 모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외우고 실제로 그 사람을 마주하여 이름을 불렀을 때의 쾌감은 나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하루는 한국인 책임님이 불러 회의실로 갔다. 책임님은 과제를 주시면서 내가 한 번 해결해 보라고 하셨다. 처음 받은 업무이니 만큼 열심히 해보고자 했다.
나름 대학 때 배운 지식을 활용해 보겠다고 문제 상황, 발생 원인, 해결책을 중심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을 모조리 정리해서 집어넣었다. 그래서 보고 드렸더니 이제는 그래프를 만들어보라고 하신다. 아, 난관에 부딪혔다. 아직 엑셀 기능을 모두 파악하지 못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급 스킬은 Vlookup이었다.
이것저것 클릭해 보며 그래프를 열심히 만들었다. 다시 보고 드리러 갔을 땐 내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냐며 다시 해오라고 하셨다. 어떡하지? 계속 작업하다 12시가 넘어버렸다. 엑셀 때문에 야근할 거라던 한국에 있는 나의 상사가 하던 말이 맴돌았다. 진짜 엑셀 때문에 야근하는구나 싶어서.
일단 늦었으니 집에 가고 내일 다시 해결해 보자 하며 다음 날 출근 후 옆 팀 엑셀 전문가에게 물었다.
"이거 여기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건가. 엑셀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그날부터 인터넷 검색, 유튜브 강의 열심히 찾아보면서 엑셀의 기본 스킬을 배웠다. 제일 도움이 되었던 건 한국에 있는 상사로부터 Webex 강의를 들었던 것이다. 본인 시간 할애하여 내가 업무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지금까지도 그분은 내 첫 회사생활을 버티게 해 주신 멋진 선배님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책임님께 그래프 생성되지 않는 문제 해결해서 가져왔다고 말씀드리고 맡겨 주신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하면 될지 여쭈었다. 오, 그런데 이 프로젝트 나와 처음 논의하신 내용이 아니었다보다. 우리 팀 파트장과 내 옆 자리 사수 A 씨가 와서 이 프로젝트 끈기씨가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전부터 본인들이 하고 있던 내용인데 해결점을 찾지 못해 잠시 멈춘 프로젝트라고.
아무튼 그 일에 손을 떼게 했다. 야근을 불사하며 처음 받은 업무라고 신나게 했는데 종잇조각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지 뭐. 하지 말라고 하니 안 하겠다. 그렇지만 일도 주지 않으면서 오히려 일을 빼앗아 가는 그 사람들이 얄미웠다. 이게 미국인가. 근거 없는 편견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회사에 적응하고 있을 때쯤 모든 인턴들의 회식이 잡혔다. 내 동기들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 온 인턴들도 모두 모이는 자리라고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고 회사 출근하고 휴게실에서 인사했던 인턴도 있었다.
하나둘씩 모두 인사하는데 웬일이야, 내가 앉은 테이블에 내 이상형이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