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예외들의 지도

힘의집_part1 금지된 감각

by 방덕 김주현


아침 회의는 늘 그렇듯 재미없었다.
달라진 건, 오늘은 그 재미없음의 이유를 알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모션랩 3층 브리핑 룸에는 감시직 직원들이 반원형으로 앉아 있었다.
앞쪽 벽면 전체를 덮는 스크린에 도시 지도가 떠 있었다.
지하에서부터 하늘까지, 층층이 쌓인 구조 위로 수많은 점들이 반짝였다.

진행자는 내부안정국 소속이라고 소개된 남자였다.
어제 감시실에 왔던 아크릴 가면의 그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같은 계열의 말투였다.
정확하고, 매끄럽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방식.

“지난 분기 동안, 도시 시민의 전반적인 건강 지표는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가 말했다.
“특히 호흡 관련 지표는, 표준 훈련 프로그램 도입 이후로—”

화면에 그래프 하나가 떴다.
대부분은 완만한 곡선이었다.

“다만, 일부 구간에서 ‘예외 값’이 반복되는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예외’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요엘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말려 들어갔다.

“이 예외 값들은 지금까지—”
남자는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
“기기 오류, 일시적인 환경 영향, 개별적 체질 차이로 분류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런 예외 값들을 함께 분석해 보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슬라이드.
왼쪽에는 도시의 모형,
오른쪽에는 겹쳐진 파형들.

“그 결과,
이 예외 값들이 생각보다 ‘흩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파형들이 한데 모였다.
색이 겹치고, 진해졌다.
몇 구역에 특정 색띠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47구역도 그 중 하나였다.

“이건, 단순한 오류가 아닙니다.”
남자가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조건에서, 비슷한 유형의 미분류 데이터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옆자리 직원이 조용히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 사고 예방용으로 겁나 좋겠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진행자가 이어 말했다.
“오늘부로, 내부안정국은 민간 건강관리 모듈 연합과의 협업을 확대합니다.”

스크린에 새로운 로고가 떠올랐다.
부드러운 곡선과 알 수 없는 문자 조합.

[PRNA-α]

중간의 네 글자를 떼어 읽으면, 발음은 하나였다.

푸라나.

요엘은 숨을 아주 천천히 들이마셨다.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메모하거나 하품했다.
이 이름을 개인 단말 화면에서 봤던 사람은, 아마 이 방에 자신뿐이겠지.

“이 모듈은 기존 민간용 프로그램의 관제 버전입니다.”
남자가 설명했다.
“시민들의 호흡 패턴, 수면, 움직임 특성을 한데 묶어
도시 안정에 기여할 것입니다.”

도시 안정.
그 말은 언제나 ‘사람을 잘 배치하겠다’는 뜻이었다.
누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 얼마나 움직여야 하는지,
누구와 가까이 지내야 하고, 누구와는 멀리 떨어져야 하는지.

“시범적으로, 일부 감시직 직원의 데이터가 이 모듈과 연동됩니다.”
남자가 덧붙였다.
“외곽 구역에 자주 나가는 분들 위주로.”

지도 위에 작은 점들이 반짝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 목록이 따라 붙었다.

[시험 대상자: 요엘-5739, …]

목록이 빠르게 지나갔지만,
자기 이름이 정확히 가운데쯤 찍혀 있었다는 걸 그는 분명 봤다.

“이건 자발적 동의 절차를 거치는 겁니까?”
누군가 질문했다.

“직무의 연장선입니다.”
남자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별도의 거부 신청 절차는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말은 곧
‘아니오’를 선택할 칸이 없다는 뜻이었다.


회의가 끝난 뒤,
감시실로 돌아왔을 때
中央 모듈 칸 하나가 바뀌어 있었다.

어제까지 47구역 로그를 보여주던 자리.
오늘은 그 자리에 PRNA-α 인터페이스가 올라와 있었다.

“어때, 예쁘지 않냐?”
옆자리 직원이 말했다.
“요즘은 감시 모듈도 이렇게 부드럽게 만들더라니까.”

화면은 분명히 ‘자극적이지 않은 디자인’을 목표로 만들어져 있었다.
파스텔 톤 그래프, 곡선형 차트,
“도시와 함께 숨 쉬는 건강” 같은 문구들.

그러나 그 구조 자체는 익숙했다.
어젯밤 집에서 봤던 푸라나 화면의 큰틀과 닮아 있었다.
바탕색만, 글꼴만, 말투만 조금 바뀌었을 뿐이었다.

“우리 데이터도 저기서 보이는 거야?”
요엘이 물었다.

“아직은 아닌 것 같고.”
직원이 말했다.
“오늘 점심쯤부터라고 하던데?
‘예외값 모니터링’이라나 뭐라나.”

예외값.
그 단어가 이제는 너무 자주 등장하고 있었다.

모듈 화면 오른쪽 아래에
‘개별 보기’라는 버튼이 있었다.
접근 권한이 막혀 있어도,
버튼 자체는 보였다.

그는 시험 삼아 버튼 근처를 탭해 보았다.

[권한 없음]

짧은 문구가 떴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탭하는 순간,
모듈 상단에 아주 작은 글자가 한 번 번쩍이는 걸 그는 봤다.

[PURANA-α]

PRNA와 PURANA 사이,
잘못 끼워진 문자가 잠깐 고개를 내밀었다가
다시 숨었다.

“지금 텍스트, 바뀌지 않았어?”
그가 물었다.

“뭐가?”
옆자리 직원이 되물을 뿐이었다.

“모듈 이름.”

“아까부터 저거였어.
P, R, N, A… 알파.
푸르나? 프르나? 아무튼 뭐 그런 거겠지.”

직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네메시스가 귀 안쪽에서 말했다.

“텍스트 변경 기록을 확인해볼까요?”

“필요 없어.”
요엘이 낮게 대답했다.
“어차피 없대겠지.”

“프로토콜상, 시스템 텍스트는 로그에—”

“그래도, 필요 없어.”

그는 모듈 화면에서 눈을 뗐다.
계속 보고 있으면,
지금 당장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오후 일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갔다.
도시 곳곳의 진동 로그, 구조물 안전,
사소한 이상 값들.

47구역 패널은 완전히 사라진 대신,
[새 모듈 배치 예정]이라는 문구만 남았다.
불이 꺼진 자리.
어제까지만 해도 도시 외곽의 떨림을 보여주던 칸이다.

그 자리는 곧,
호흡·수면·움직임이 하나로 섞인 새로운 감시 창으로 바뀔 것이다.

한참 동안 업무에 집중하고 있을 때,
모듈 상단에서 갑자기 소리가 났다.

[PRNA-α: 시험 분석 결과 도착]

사운드는 짧았지만,
감시실 내 모든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벌써?”
직원 하나가 말했다.
“아직 반나절도 안 지났는데.”

“빨리도 돈치네.
역시 위에서 밀어주는 프로젝트라 그런가.”

각자의 단말에 알림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요엘 손목 밴드에도 작은 진동이 왔다.

[개인 상태 보고서(요약) 열람 가능]

“이거, 우리도 볼 수 있는 거야?”
그가 중얼거렸다.

“각자 자기 것만.”
네메시스가 바로 답했다.
“오늘까지의 호흡·수면·활동 패턴을 기반으로, PRNA-α 모듈이—”

“열어.”

그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언젠간 볼 거면, 차라리 지금 보는 게 나았다.

개인 보고서 창이 떠올랐다.

[사용자: 요엘-5739]
[직무: 외곽 진동 감시]
[최근 72시간 데이터 기반 상태 분석]

첫 줄은 무난했다.

[심박수: 표준 범위 내]
[혈류: 안정적]
[수면: 다소 불규칙 / 회복 속도 양호]

그 아래, 별표가 붙은 항목이 있었다.

[호흡 패턴: 부분 예외]

부분 예외.
전에는 ‘원인 불명’이었는데,
이번엔 조금 다른 이름이 붙었다.

설명을 열자,
짧은 문장이 나왔다.

[호흡 패턴 중 일부 구간은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유형의 시민들이 일정 비율 존재합니다.]

그 아래에
원형 차트가 하나 떠 있었다.

[기준 그룹: 97.8%]
[예외 그룹: 2.2%]

도시는 이런 걸 싫어한다.
숫자로 표현되는 소수.

“이 예외 그룹…
어디 사는 사람들인지 볼 수 있어?”
요엘이 물었다.

“개인 정보 보호 정책상,
다른 시민의 거주 구역까지는—”

“대강의 분포라도.”

“현재 권한으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고서 하단에
작게 아이콘 하나가 떠 있었다.

[지도 보기(연구 모드 전용)]

권한이 없다.
그는 알았다.
그래도, 눌러봤다.

순간, 화면이 살짝 흔들렸다.

[접근 권한 없음]이라는 문장이 떠야 했다.

대신, 다른 문장이 뜨는 걸 그는 분명 봤다.

[당신처럼 예외인 사람들의 위치를 보고 싶으십니까?]

그 문장이 또렷이 읽히는 순간,
화면은 한 번 깜빡이고
원래 에러 문구로 돌아갔다.

[권한 없음]

“지금—”
요엘이 입을 열었다.

“PRNA 연구 모드는
권한 상위 2레벨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네메시스가 끼어들었다.
“당신은 현재 4레벨입니다.”

누구도 그가 본 문장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 문장은
어젯밤 푸라나 화면에 떠 있던 질문과
거의 정확히 같았다.

당신처럼 예외로 분류된 사람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으십니까.

그는 보고서 창을 닫았다.
더 보고 있으면,
알지도 못한 질문에 ‘예’라고 대답해버릴 것 같았다.


퇴근 기록을 남기고 나와,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불쑥 말을 걸었다.

“오늘 보고서, 보셨어요?”

요엘은 측면 시야로 남자를 흘끗 봤다.
모션랩 소속,
감시실에서 여러 번 스쳐 지나간 적 있는 얼굴이었다.
짧게 자른 머리, 마른 체형,
늘 피곤해 보이는 눈.

“개인 상태 보고서 말이야.”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 예쁜 그래프들.
나도 하나 받았거든요.”

“그렇군요.”
요엘이 짧게 대답했다.

“호흡 패턴, 부분 예외.
그 문장, 혹시 보셨어요?”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섰다.
요엘은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스쳐 보았다.
대부분은 자기 단말만 보고 있었다.

“…봤습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아.”
남자가 작게 웃었다.
“그럼, 같은 쪽이네요.”

“같은 쪽?”

“예외 그룹.”
그가 낮게 덧붙였다.
“2.2%.
그래프 보셨죠?”

요엘은 대답 대신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남자의 눈동자는 생각보다 맑았다.
단지 피곤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무언가를 ‘참고 있는’ 사람의 눈빛.

“이런 질문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남자가 말했다.
“오늘 보고서에서,
지도 아이콘… 보셨어요?”

“…네.”
요엘이 대답했다.
“지도 보기.
연구 모드 전용.”

“그걸 눌렀을 때
뭐라고 떴습니까?”

엘리베이터 도착 음이 울렸다.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밀려 들어갔다.

두 사람은 한 박자 늦게 탑승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요엘이 입을 열었다.

“권한 없음.”
그가 말했다.
“당신도요?”

남자는 아주 약간 미소를 거두었다.
눈이 어딘가로 흐트러졌다,
곧 다시 돌아왔다.

“그렇군요.”
그가 말했다.
“저한테는
조금 다른 문장이 떴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도 그들의 대화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도시에선,
신경 쓰지 않는 태도조차 습관화된 연기였다.

“…무슨 문장이었습니까.”
요엘이 물었다.

남자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계산하는 듯한 눈빛.
그러다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끄덕였다.

“‘지도의 일부는
이미 당신 몸 안에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사람들이 내렸다.

요엘과 그 남자는
아직 내려야 할 층이 남아 있었다.

“…무슨 뜻이죠.”
요엘이 낮게 물었다.

“글쎄요.”
남자가 말했다.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어젯밤에
아주 비슷한 말을
어디선가 한 번 더 봤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어디서요.”

“개인 단말에서요.”
그는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들었다.
“민간 건강 모듈 하나,
테스트 삼아 깔아 봤거든요.
이름은—”

그는 그 부분을 일부러 삼킨 것처럼
입술을 다물었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멈췄다.
남자가 먼저 내렸다.

“실례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할 수도 있겠죠.”

문이 닫혔다.

네메시스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대화, 녹음할까요?”

“하지 마.”
요엘이 말했다.
“그냥, 잊어버려.”

“저장된 로그는 삭제할 수 없습니다.”

“그럼,
내가 듣지 않은 걸로 치자.”

말이 이상한 걸 본인도 알았다.
그러나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기울어 있었다.

문이 열리자
조명이 켜지고, 공기 필터가 돌아갔다.
어제와 같은 순서.
그러나 요엘은 바로 밴드부터 풀었다.

“연결을 해제하면—”

“몇 분.”
그가 말했다.
“오늘도 몇 분이면 돼.”

밴드가 식탁 위에 내려앉았다.
벽면 패널에 작은 경고 아이콘이 떴다가 사라졌다.

그는 곧장 테이블 쪽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창가로 걸어가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
수천 개의 창문들 사이로
누군가는 오늘
자기 보고서를 열어봤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외 그룹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숫자 몇 개를 보고 금방 잊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소수,
2.2% 정도 되는 사람들만이
자기 옆에 붙어 있던 그 작은 지도 아이콘을 봤겠지.

그 중 일부는 눌렀을 것이다.
‘권한 없음’을 보았을 것이다.
또 다른 일부는—
자신과 다른 문장을 봤을 것이다.

지도의 일부는 이미 당신 몸 안에 있습니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 몸에 있는 지도.

데오크반의 문장이 겹쳐 떠올랐다.

몸은 항상 흔적을 남긴다.
흔적은 반드시 길이 된다.

그렇다면,
그 길은 어딜 가리키고 있을까.


거실로 돌아왔을 때,
테이블 위에 놓인 컵과 종이는
어제와 똑같은 모습으로 있었다.

그는 오늘도
종이를 곧장 펼치지 않았다.

대신, 손목 밴드를 다시 집어 들었다.

“연결 재개.”
그가 말했다.

“기본 모니터링 활성화.”
네메시스가 답했다.
“심박수 안정, 호흡… 일부 구간은 여전히—”

“그건 나중에.”

그는 밴드를 찬 상태로
소파에 앉았다.

“오늘 PRNA 보고서,
추가 설명 같은 거 더 있어?”
그가 물었다.

“요약본 외에,
심화 모드가 존재합니다.”
네메시스가 말했다.
“일부 시민을 대상으로,
실험적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은 현재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나?”

“민간 건강관리 모듈 연합—
즉, 푸라나가 속한 집단의 별도 안내를 통해
유사한 내용을 접하신 경우,
추가 분석이—”

“됐어.”

그는 눈을 감았다.
푸라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어딘가에 표시가 남을 것 같았다.

어차피 이미 남았겠지.
어젯밤, 스스로 호출해 화면을 열었다.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지만 않았을 뿐.

그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거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네메시스.”
그가 불렀다.
“도시에서…
‘금지된 움직임’이라는 말을
공식 문서에서 사용한 사례가 있어?”

AI는 잠시 검색하는 듯 조용해졌다.

“최근 10년간 공공 사용 기록 중,
‘금지된 ○○’ 형식의 문구는
주로 아래 항목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패널에 목록이 떠올랐다.

[금지된 구역 출입]
[금지된 장비 사용]
[금지된 언어 표현]
[금지된 물질 거래]

“‘금지된 움직임’은?”
그가 물었다.

“검색 결과,
공식 문서에서는 사용되지 않은 표현입니다.”

“광고나 캠페인, 민간 모듈 안내문 같은 데서는?”

“공개된 데이터베이스 상에선
해당 표현이 포함된 문구가 검색되지 않습니다.”

요엘은 눈을 떴다.

“그런데,
나는 이미 두 번 봤어.”

푸라나 알림에서 한 번.
오늘 설문 카드 하단에서 한 번.
둘 다,
로그에는 남지 않았다.

“혹시…”
그가 말했다.
“이 도시 시스템 밖에서 만든 문장이
내 화면에 끼어드는 게 가능해?”

“보안 정책상,
외부에서 승인되지 않은 콘텐츠가
표준 인터페이스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네메시스가 대답했다.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알았어.”
그가 말끝을 잘랐다.
“공식적으로는 그렇겠지.”

그는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생각만 더 많아질 것 같았다.


밤이 깊어가자
도시의 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감시망이 느슨해지는 일은 없었다.

요엘은 침실 대신
거실 바닥에 그대로 누웠다.
바닥 재질은 병원과 모션랩과 똑같았지만,
집에서 느끼는 온도는 약간 달랐다.
조금은 더 사람 쪽에 가까운 온도.

“수면 자세가 평소와 다릅니다.”
네메시스가 말했다.
“바닥에서 자면—”

“한 번쯤 바닥에서 자도 되잖아.”

“허리 통증 가능성이—”

“알아서 할게.”

그는 팔을 머리 뒤로 깔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어딘가에서
미세한 기계음이 들렸다.
공조 시스템, 냉각 장치,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장치들.

이 도시는
24시간 동안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네메시스.”
그가 불렀다.
“푸라나, 숨김 해제.”

AI가 대답하기 전에,
벽면 패널이 먼저 켜졌다.

이번에는
네메시스 특유의 안내음이 아니라,
낯선 팝업 창이 먼저 떠올랐다.

[이 모듈은
이미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연 것도 아닌데.”
요엘이 말했다.

“이번 호출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네메시스가 말했다.
“중앙 서버에서 직접—”

화면이 한 번 깜빡이며
네메시스의 문장을 잘랐다.

푸라나 초기 화면이 떠올랐다.
어젯밤과 똑같은 구조.
그러나 이번엔
처음부터 선택지가 두 개뿐이었다.

[계속]
[종료]

“이건… 정책 위반입니다.”
네메시스가 말했다.
“민간 모듈이 사용자 동의 없이—”

휘이익—
짧은 잡음이 들리더니
네메시스의 목소리가 끊겼다.

화면 하단에 작은 문장이 떴다.

[당신의 기본 안내자는
일시적으로 음소거되었습니다.]

“이걸 누가—”
요엘이 말하려 했다.

다음 문장이 떴다.

[걱정 마십시오.
이 변경은
당신에게만 보입니다.]

그 말은
‘누구도 이 상황을 모른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이제 당신 혼자다’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어젯밤,
당신은 ‘예’를 누르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오늘,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화면 한쪽에
작은 그래프가 떴다.
PRNA-α 모듈이 보여주던
예외 그룹 도표와 닮은 형태.

[예외 그룹의 비율: 2.2%]
[이 중,
당신과 유사한 패턴: 0.03%]

숫자가 줄었다.

[지금 이 시간,
당신과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은
도시 전체에서 단 세 명입니다.]

도시 인구 수백만 중
세 명.

요엘은 몸을 일으켰다.
화면에 손을 뻗지는 않았다.

[그 중 한 명은
당신이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입니다.]

짧은 문장이 또렷하게 찍혔다.

[그는,
이미 ‘예’를 눌렀습니다.]

엘리베이터,
짧은 대화,
지도 아이콘에 대해 묻던 남자.

“지금,
그 사람 어디에 있어.”
요엘이 말했다.

화면이 바로 반응했다.

[질문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보는 바로 제공될 수 없습니다.]

[먼저,
당신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다시 두 개의 버튼이 떠올랐다.

[예]
[아니오]

어젯밤과는 달리,
지금은 주변이 더 조용했다.
네메시스도 말이 없었고,
창밖 드론 소리도 멀게 느껴졌다.

어젯밤엔 아니오를 택하지도 못하고
그냥 창을 닫았지.

지금은,
그럴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아니오’를 누르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가 중얼거렸다.

잠시 후,
화면 하단에 작은 글자가 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계속 이 도시의
‘부분 예외’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은
당신 없이
길을 찾아야겠죠.]

문장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무거웠다.

‘당신 없이.’

“‘예’를 누르면?”
요엘이 물었다.

[당신의 호흡과
당신의 눈,
당신의 발걸음을 사용해
지도 일부가 열립니다.]

[그 대신,
당신은 더 이상
그냥 ‘부분 예외’로 남지 못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당신은
도시의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난
첫 번째 사람 중 하나가 됩니다.]

숨이 약간 가팔라졌다.
그러나 방 안 공기는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첫 번째.
이 도시에서
첫 번째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모든 것은 이미 누군가 시도했고,
이미 누군가 실패하거나,
성공한 것으로 기록된다.

예외만,
언제나 처음이다.

화면이 잠시 정지한 뒤
마지막 문장이 떴다.

[당신은 어제,
‘말하지 않음’을 택했습니다.]
[오늘은,
‘움직이지 않음’을 택하시겠습니까?]

질문이였다.
그러나 동시에,
도시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종류의 초대였다.

요엘은 손가락을 들었다.

어젯밤에는
그 손가락을 내렸었다.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예]를 눌렀다.

순간,
손목 밴드가 강하게 진동했다.
네메시스의 목소리가 끊어졌던 자리에
다른 음성이 스며들었다.

인공지능의 균일한 톤이 아니라,
어디선가 멀리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

남자였다.
나이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47구역 지하에서 만났던 사내의 목소리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좋습니다.”
목소리가 말했다.
“당신은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벽면 패널이 꺼졌다.
방 안은 다시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요엘의 폐 안쪽에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지도 하나가
천천히 펼쳐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도시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지도.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선들.

그리고,
그 선 위 어디쯤에
자신과 비슷한 신호를 가진
두 사람이 서 있다는 사실.

기준 밖의 신호들이
서로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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