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SNS상에서 장문의 메세지를 받았다.
결핵.
잊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건강을 그리고 그 이상의 삶을 살면서 그 감사함을 당연히 여기고 지내고 있었다.
그렇다.
난 결핵이었다.
이미 건강해진 이후에 나를 알게된 분들은 믿기지는 않으시겠지만.
누구나 그렇듯 나도 나만의 시련과 고통의 스토리가 있었다.
당시를 회고하며 글을 써볼까 한다.
메세지를 보내주신 분께는 장문의 메세지로 답을 드렸지만 또 다른 결핵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힘든 분들이 많을거라 생각한다.
단 한명에게라도 나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길 바라며.
그리고 나도 항상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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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09년 이전의 나는 소위 말하는 체력왕이었다.
고등학교때 교내 마라톤 대회를 하면 2등을 했다. 당시 1등은 쇼트트랙 국가대표 이호석 선수였다.(호석이는 공교롭게도 대학교도 경희대 동문이다.)
경희대 체대 입학은 생략.
군대에서부터 맛들인 웨이트트레이닝은 복학해서도 꾸준히 했다.
월,화,수,목,금 6시간씩 태권도와 보디빌딩식 웨이트트레이닝식 웨이트트레이닝 훈련을 했고 주말에는 조기 축구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축구를 정말 많이 좋아했다. 몸이 부숴질 것처럼 힘들거나 밤을 새는 일이 있더라도 눈이 오나 비가오나 주말 새벽에는 칼 같이 일어나서 꼭 축구를 하러 갔다. 1년을 이렇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운동 이후 평소보다 극도로 피로해지고 식은땀이 나기시작했고 하루를 쉬어도 뭔가 회복이 더딘 그 느낌.
한 여름에도 감기에 걸렸고 특히 약을 먹어도 기침이 낫질 않았다.
병원에서 폐결핵 판정을 받았다.
정말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었다. 짧지않은 내 지난 인생 모두가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부정하고 싶었다. 예전만큼 너무 무리하지만 않으면 그래도 일상생활을 소화해내는 사람들도 충분히 많다고 했다. 나도 내 소중한 일상생활을, 악착같이 붙잡고 있던 크고 작은 기회들을 놓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편히 그까이꺼 놓았으면 될 것을 당시엔 왜 그리 바보 같이 오바를 했을까.
결핵 병세는 오히려 겉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간신히 입원은 면하고 대신 집 밖에 한발자국도 못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유일하게 밖에 나간건 일요일마다 어머니가 교회에 갈 수있게 차를 태워다 줬을때 뿐이었다. 유일하게 나의 아픔에 같이 눈물 흘려준 따듯한 사람들이 있던 그 곳에 잠시라도 있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잠깐의 외출이었지만 그 잠깐이 체력적으로는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난다.
결핵은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결핵은 소모성 질환이다. 많이 먹어도 체중은 급격히 줄어 60kg 대 초반이 되었고 집에서 쉬기만해도 항상 식은땀이 나고 숨이 차고 힘들었다. 폐에서 혈액을 통해 온몸으로 산소를 원할하게 공급해줘야 하는데 폐의 일부가 기능을몰 안하니 그만큼 산소공급 효율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결핵 약이 정말 독하다. 약 특유의 성분 때무에 매일 오렌지색 소변이 나왔는데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핵은 정신적 고통이 동반되는 것 같다. 무기력증 그리고 건강염려증.
하루하루 우울감과 실패감에 사로잡혔고 이를 잊고자 게임하다 잠들고 다시 일어나면 플레이 스테이션으로 게임하기를 매일 반복했다. (이때 만약 고대 운동과 그 가치를 알았다면 집에서 진자 운동의 반복에 몰입하면서 톡톡히 효과를 봤을텐데.)
아무튼 위닝일레븐 마스터리그 시즌 65년차, 호날두가 세번째 환생을 할때 즈음, 운좋게도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후유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약을 더 이상 안먹었을 뿐 막상 완치판정을 받고 나서 약해진 나의 몸은 팔굽혀펴기 단 1개도 힘들 정도였다. 아주 약한 세라밴드로 조금만 근력운동을 시도 해도 다시 식은땀이 나고 결핵약을 먹을 당시와 똑같이 괴롭고 힘들었다. 재발의 트라우마로 인해 섣불리 뭔가 하기도 무서웠다.
말이 완치이지 결핵의 완치 사실 완치가 아니다.
결핵은 두가지로 나뉜다. 활동성 결핵과 비활동성 결핵.
열심히 독한 약을 먹어서 겨우 결핵균이 활동을 멈추게만 하는 것이다.
활동을 멈추었을뿐 완전 소멸해버린게 아니어서 폐에는 흉터가 남는단다.
엑스레이를 찍으면 그때 그대로 활동을 멈춘 그 흉터가 보인다.
그래서 이후로 다른 이유로 엑스레이를 찍을때마다 항상 의사, 간호사 분에게 예전에 결핵을 앓았었다고 사전에 말씀을 드려야만 한다.
아무튼 그래도 나는 아직 젊고
결국 삶을 다시 살아내야하니까.
정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천천히 걷기 였다.
아직 한 겨울이었다.
영화<콜래트럴>에서 들은 G선상의 아리아 편곡 음원을 무한 반복 재생하면서.
목표지점은 집근처 30분 거리의 헬스장 이었다.
결핵 이후 체질이 바뀌어서 땀이 많아지고 열이 많아졌다.
대신 다시 감기가 들면 골치가 아파지니까 아주 따듯하게 중무장을하고 걸었다.
걷기 시작한지 20분 째부터 마스크에 열기와 습기로인해 눈섭에 송글 솔글 수증기가 맺혀서 뺨에는 마치 눈물 처럼 흘렀다. 헬스장에 도착해서 내가 한일은 스트레칭을 잠깐 하면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딱 한달 뒤부터 조금씩 조금씩 근력운동도 할 수 있을정도로 컨디션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섯불리 복학을 결정했다.
역사는 왜 반복되는 가에 대한 명제가 풀린 순간이다.
사람은 절대로 과거로부터 학습하지 않는다.
그저 되풀이 할 뿐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