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종이달'

시기만 다른, 우리의 이야기.

by 감상자

도서 소개

고객의 돈을 조금씩 착복하다 급기야 거액의 횡령으로 이어져 해외로 도주하게 된 은행 계약직 여성의 회상. 그리고 그녀를 기억하는 주변인물의 허무한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만들어지는 불안의 정서가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주인공은 왜 범죄를 저질러야 했을까?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의 삶 역시 불만족스럽다는 사실을 환기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현실 속에 아무렇지 않게 묻어두었던 불안하고 위태로운 자아를 들춰보게 된다.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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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절대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돈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딜레마,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모습들을 돌아보게 되는 심리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소설입니다.

처음에는 모호하고 미스터리 같던 그들의 이야기와 제목은 어느 사이엔가 이해하게 됩니다.


감상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시작된 듯한 이야기는 어떠한 색도 없는 듯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딘지 칙칙하게 생기가 없는 듯 보였고, 그런 분위기를 만든 당사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번잡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색이 있는 듯했고, 무엇인가 특징이 있어 보입니다. 당사자인 그녀는 충돌이 만들어 낸 혼잡 속에, 그 무리에 완전히 속해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싶어 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녀가 어째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왜 범죄를 행하게 되었는지 본인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의 시선으로 담아냈습니다. 각각의 시선과 이야기는 저마다 달랐고, 그녀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따라가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어딘지 난잡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는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며 계속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곤 했습니다. 본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외도와 그것을 고백하며, 정당성을 찾는 도구로 그녀를 추억합니다.

이런 식으로 각기 다른 그들의 성격과 특색을 다르게 담아내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그녀와 전혀 상관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과거에 잠깐 스쳤던 인연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그녀는 나름 중요한 위치에 있는 듯 보였고, 그렇게 각각의 인물들이 각자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추억한 뒤 그녀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점은 정작 그녀가 떠올리는 대상에 그들은 전혀 포함되지 않거나 아주 잠깐 언급되는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이 과연 그녀와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 탐구하고 싶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전개된 그녀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됐습니다.

처음부터 극적인 전개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저 조금씩 물들어 가는 듯한 것 같았습니다.

조금씩 내리던 이슬비를 무시하다가 어느새 홀딱 젖어버리듯, 아주 약한 환각제에서 시작되어 나중에는 마약에 중독된 듯 그녀는 그렇게 완전히 물들어 버렸습니다.


그녀에게 마약은 돈으로 이루어진 환상과 호화로움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녀를 완전히 취하게 했고, 중독시켰습니다. 처음은 내연남을 만나며 가벼운 마음으로 접했고, 그를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고 많아질수록 그녀를 송두리째 흔들고 변화시켰습니다.


그 변화는 어느 사이엔가 태풍으로 바뀌었고, 자연스럽게 그녀는 태풍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안이 일시적인 평화로움이 있듯 그것이 영영 지속될 줄 알았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단 한발만 움직여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바람을 느끼면서,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일인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약에 완전히 중독된 상태였고, 그 달콤함이 두 눈을 가려버렸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공기의 떨림이, 말도 안 되게 고요한 듯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스스로 눈을 감아 회피하고, 그저 잠잠해지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변의 소리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더욱 공포감에 휩싸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정하지 않던 고통은, 애써 외면하던 태풍은 그와의 관계가 끝나면서 온전히 다가왔습니다.


이제껏 그에게 받던 마약성 진통제 투약은 종료됐고,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눈을 떴고 태풍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부질없는 과거의 이야기를, 만약이라는 여러 가정들을 들먹였습니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이름하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 중 그녀는 단 하나 선택했고, 그것이 현재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만약은 그저 상상 속의 시간 여행이었으며, 그러한 사실은 그녀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만이 남았습니다. 그 어떤 변명도 핑계도 통하지 않는 그것을 그저 회피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누군가 구원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최소한 고통으로 스스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구원이란 그 사실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닌, 현실로 온전히 돌아가는 용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고, 누구보다 수동적인 사람으로 변해버린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도서 내에서 '나는 그녀와 달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각자 처한 상황이 조금씩 다르고, 그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만 다를 뿐입니다.

그녀의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그를 다르게 보는 것 같았지만, 처음의 순수했던 모습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그녀의 과거가 행했던 태도를 그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마지막에 그와 같은 말을 했던 것이 그 증거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행동과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특별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한 누군가에게만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본질적으로 그녀와 같던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범죄에 가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들 또한 향기가 나는 가짜 달로 눈을 가리며 행복함을 느끼고, 그것이 가짜임을 알지만, 순간의 행복함과 향기에 취해 영영 그것을 치우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차이점이라면 누군가는 그것을 치우고 진짜 달을 보기도 하며, 흐린 하늘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짜 달을 치운 것을 후회하거나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어쩌면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언제 치우느냐, 즉 언제 현실을 마주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늦게 현실을 마주했을 뿐이며, 마약에 조금 더 취해 있었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이들과 우리들은 그녀보다 조금 빨리 마주해 다른 결과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우리는 지금도 종이달을 눈 위에 올려놓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아쉬운 점

약간은 현대화되지 못한 배경으로 느껴져 범죄 성립 자체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묘하게 닮은 듯한 구석이 많아 현실감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여성의 범죄 원인이 남자가 빠지지 않는다는 등이 반복되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약간은 과거의 시선이며, 일본의 풍토이지만 이는 현재의 우리나라도 적용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우리 모두 그녀와 같다는 것을 지속해서 보여줍니다.

이는 강점이 될 수도 있지만, 너무나 획일적인 시선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외설스러운 상황들이 등장하고 이런 묘사가 생각보다 디테일합니다.

내용에 누가 되거나 불편함보다는 적절하게 등장하지만 이런 부분이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서 속의 내용들

나는 무언가를 얻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잃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P21

어딘가 혼란스러운 마음이 도시의 어지러운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도시와 하나 되어 완전하게 사라지고 싶은 욕망이, 자신의 모든 모습을 그 혼잡함 안으로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방이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았다. 요컨대 은둔하기에.
P46

공간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인물인 리카는 어쩌면 습관적인 표현 혹은 그녀만의 특색일 수도 있습니다.

공간에 대한 표현이 주는 매력이 있지만 그녀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곳과 초라한 자신의 심리를 동일시 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안도하는 것 같으며, 일종의 죄의식 표현 방법 같았습니다.

하지만 정신만 그러할 뿐 아직 외형은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믿음은 물론 금방 깨졌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그녀는 타인을 얕잡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니시신주쿠의 직장에 도착해서 누구랄 것도 없이 붙잡고 지껄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며 실제로 평소에는 천천히 걷던 길을 총총걸음으로 회사에 갔지만, 막상 동료나 부하들과 얼굴을 마주하니 말할 수가 없었다. 왠지는 모른다.
P49

소심한 수다쟁이와 같던 가즈키는 많은 생각을 품고 있지만 아주 일부만 표현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내를 피하고 외도를 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는 그냥 좋은 사람이 아닐 뿐입니다.


마사후미의 말에 리카는 언뜻 위화감을 느꼈지만, 무엇에 대한 위화감인지는 알 수 없었다.
P138

어딘지 모르게 자기 일을, 존재를 낮게 만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온화하게 웃는다는 표현은 질 나쁜 표정을 감추기 위함이며, 비아냥과 멸시가 숨겨져 있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것들이 그녀가 좋지 않은 일을 하게 만든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그런 말을 하다니, 좀 놀랍군. 리카는 마사후미의 목소리를 반추했다. 그런 말을 할 여자인 줄 몰랐다. 그런 천박한 말을 하는 여자인 줄 몰랐다. 마사후미의 목소리는 리카의 안에서 점점 말을 바꾸었다.
P149

누군가 툭 던진 말을 내면에서 점차 과대 해석하고 부풀리는 것 같은 모습은 흔하게 우리가 만나는 심리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하지도 않은 말인데, 내 안에서 그를 욕하고 싶었기에 만들어진 괴물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 의도가 없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에게서 그런 시선은 계속 느껴졌고, 단지 입 밖으로 직접적으로 내뱉지만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과 정반대로 비명을 지르고 싶은 듯한 초조한 감촉이 천천히 온몸에 퍼져가는 것도 역시 느꼈다. 그 익숙한 느낌을 떠올렸다. 자신이 우메자와 리카의 일부라는 느낌. 리카는 그 느낌이 온몸에 퍼져나갈 것 같은 것을 간신히 막았다.
P168

약간은 지치고, 회의적이지만 어딘가 반짝이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은 모든 감정을 꾹꾹 누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눌러서 삼키는 것이 아닌 압축을 통해 밀도를 높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터져버릴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그것은 위태위태한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리카는 아키에게 전화를 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을 신경 써서가 아니란 걸 인정했다. 아키처럼 하나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P178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인지했다는 것조차 안타까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분명 수동적인 삶만을 살아오진 않았을 텐데, 누구보다 수동적으로 변해버린 자신이 몹시 불편해진 그녀였기에, 그녀의 선택이, 그녀의 변화가 더더욱 안쓰러웠습니다.


왁자지껄한 회식 속에서 문득 학생 시절을 떠올렸지만, 사실은 다르다. 나는 학생 시절에도 그런 식으로 떠들었던 기억이 없다. 기분 좋게 취해서 웃기만 했던 기억밖에 없다. 나는 학생 시절을 떠올린 게 아니라, 학생 시절 상상했던 풍경을 떠올렸을 뿐이다.
P217

풍부한 표현으로 다가왔지만, 그녀 내면의 어둠이 깊게 느껴졌습니다.

차라리 그녀가 속 시원하게 해방되기를 바라게 됐고, 어둠을 모두 걷어버리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상상조차 온전한 것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의도된 것 같았습니다.

마치 그녀가 과거의 풍경을 떠올렸듯 말입니다.


이 아이는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방향으로 원하는 방법으로 곧장 갈 수 있을 거라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는 걸까.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을 텐데.
P247

연하의 누군가를 만난다면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며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습니다.

그렇게 '꼰대'라고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이가 어려도 나보다 어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물론 그녀는 그를 어른처럼, 어른이 되기를 바란 것이 아닌 동경 같았습니다.

젊은 친구들을 얕잡아 보면서도 동경하는 이중적인 모습이 여실히 느껴졌습니다.


그들이 자아내는 혼잡하고 왁자지껄하고 젊은 에너지로 넘치는 공간은 리카에게 거역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전문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리카가 공상했던, '나 이외의 학생들'의 일상이었다. 공상하고, 동경하면서도 경멸하며, 자신이 멀리했던 것이었다.
P261

세상을 색상이 없는, 흑백사진처럼 보는 것 같은 시니컬함이 느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동경이 느껴졌고, 경멸하는 것 같았습니다.

확실히 그녀는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리카는 무수한 '만약'의 끝에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거야'라는 생각을 계속했지만, 그러나 그 몇 개의 '만약'을 자신은 선택하지 않았고, 그리고 1997년, 거의 동시에 두 가지 일은 일어났다.
P331

수없이 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우리는 선택합니다. 이때 선택받지 못한 그 많은 것들은 '만약'이라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단지 하나만 골랐을 뿐이지만, 그 수많은 모든 것들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지나간 것에 대한 판단을 후회나, 핑계, 이해 등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결국은 큰 가치 없는 말이지만 모든 것에 대해 당당하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거기까지 생각한 유코는 리카와 자신, 그때 자작나무 가로수 길을 함께 걷던 두 사람이 지난 20여 년 사이에 얼마나 서로 먼 곳으로 와버렸는가를 새삼 깨달았다.
P371

지나간 시간에 대한 표현은 각기 다른 길로 걸었을 두 사람의 간극을 적절하게 담아냅니다.

걸어온 길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뒤를 돌아볼 때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앞을 봐야 합니다.

어쩌면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앞도 뒤도 아닌 그 어는 곳도 보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째서 사람은 현실보다 좋은 것을 꿈이라고 단정 지을까. 어째서 이쪽이 현실이고, 내일 돌아갈 곳이 현실보다 비참한 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까.
P456

어딘지 몽환적이고, 영화 달콤한 인생의 대사가 생각나기도 하는 이 표현은 영영 꾸지 못할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듯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그것을 즐기지만, 결국 내 몸을 조금씩 좀먹고 있는 꿈을 꾼다는 것이 엄청난 비극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세계가 정말로 있군요" 하고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휘둥그레졌던 고타는 놀라울 만큼 빨리 '이런 세계'에 익숙해진 듯이 보였다.
P459

인간은 적응의 동물입니다. 그렇게 그는 물든 것이며, 아마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그에게 따져 묻거나,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그는 자신이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냥 모르는 이야기였다며 회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도 공범입니다.


흐뭇하다기보다, 복수를 한 것 같은 기분과 비슷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복수인지, 이것도 역시 따져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리카는 그저 그 유쾌한 기분만을 맛보았다.
P510

그녀는 이제 본인의 감정, 심리상태 등 그 무엇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남의 돈으로 살아가기에 현실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환상을 현실이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너무 당연해서 당연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리카는 한 번도 그런 걸 부탁한 적이 없다.
P531

어쩌면 그에게 보았던 모습은 어린 시절의 그녀였고, 지금의 그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그녀는 부모의 돈이었으며, 지금은 완전한 타인의 돈일 뿐입니다.

그에게 그녀의 돈이 아마도 그런 것일 것입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 누려보지 못했던 경험을 지금에서 그녀를 통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이란 것은 마르지 않는 용수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마르는 일 없이 계속 샘솟아, 주위 사람들의 목을 적시는 생활을 돕는 것.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퍼다 쓰면 되는 것.
P539

돈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이렇게까지 변화된 것이 몹시도 소름이 끼쳤습니다.

결국 남의 돈임에도 합리화와 정당성 부여가 죄악이 되었으며, 계속 그런 생각을 가졌던 그녀는 유토피아라는 꿈속에서 아직도 헤엄치고 있는 것입니다.


리카는 안도하고 동시에 절망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처럼 강한 끈으로 맺어져 있지 않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안도와 자신은 이 두 사람 같은 깨끗하고 건강한 관계를 절대 만들 수 없다는 절망이었다.
P551

그녀는 그렇게 조금씩 현실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아니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곧 들이닥칠 폭풍우처럼 한차례의 시끌벅적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폭풍전야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폭풍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녀가 그 한가운데 있어 인지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시야를 돌려보고, 한 걸음만 벗어났다면 알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미 두 눈이 멀어버렸고, 몰랐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피부로 느꼈을 것이며, 처절하게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넌 무얼 샀니? 무얼 손에 넣으려고 한 거니? 그 물음은 어느새 유코 자신에게 향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절약을 한 거지. 무엇 대문에 저축하려고 한 거지. 그래서 무엇을 얻을 생각이었던 거지.
P577

리카의 행동은 어쩌면 그녀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절약이라는 이름 아래에 행한 행동이, 자신을 향한 칼날이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리카가 정당한 혹은 연인이라는 말로 행했던 행동이 비수가 되어 자신에게 꽂힌 것처럼 말입니다.


마키코와 무스미는 정반대의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어떤 한 점에서 그녀들은 완전히 똑같지 않을까 싶었다. 즉, 돈으로 무엇이든 생각대로 할 수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믿는 부분이.
P582~583


그녀들의 모습은 분명 리카와 닮았습니다. 아니 같았습니다.

단지 각자의 명분, 이유가 조금씩 다를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같을지도 모릅니다.

각자 핑계만 다를 뿐, 돈이 아닌 다른 것을 말할 뿐 본질은 모두 같은 것 같습니다.


우메자와 리카를 아는가.
대체 누가 우메자와 리카를 알고 있다고 할까. 나조차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데.
P602

사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을 정확히 모릅니다. 그저 안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인간은 항상 자기 내면을 탐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알기 위해 분투합니다.

그녀는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깨달았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정은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무수히 흩어져갔지만, 하지만 어떤 가정을 해도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P611

만약을 이용해 시간 여행하던 그녀는 이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그런 만약은 결국 부질없는 것이며,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무리 만약을 말한다 해도 그 어느 행동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그냥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눈을 가렸을 뿐입니다.


가, 움직여, 하는 마음의 소리와는 반대로 리카의 발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P613

그녀가 그 자리에 머물렀던 것은 어쩌면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태풍의 눈 밖으로의 한 발자국이 그만큼 두려운 것입니다.

누군가 그녀를 그 밖으로 끄집어내 주길 원하는 수동적인 모습이 보이지만, 실상은 그저 두려움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녀의 태도를 탓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겁쟁이인 그녀는 그처럼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완벽한 화장에 완벽한 코디네이트를 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이 지금 유리창 속에서 몹시 초라해 보였다. 엄마도 아내도 되지 못하고, 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한심한 여자로 보였다.
P627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녀는 그렇게 리카처럼 자신을 좀먹습니다.

만약 한 발만 더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면 그녀 역시 리카처럼 될 것입니다.

우리라고 다를지 모르겠습니다. 겨우 한 발짝 뿐입니다.

우리도 눈앞에 종이달을 올려놓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저 환상일 뿐인 종이달이 가짜임을 알지만, 마치 진짜라고 착각하면서 환상을 품은 채 말입니다.


총 평

눈을 가리는 것으로 선택한 종이로 만든 달은 단순히 모양만 갖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중독성 강한 향기를 품고 있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실제가 아닌 환상만을 좇게 될 위험까지 느껴집니다.

그러나 강한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마는 종이는, 결국 눈앞까지 다가와 있는 태풍을 직접 바라보게 합니다.

하지만 공포감에 질린 탓인지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일정 부분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 있어 소름 돋게 됩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6 구성 7 재미 7 재독성 6 표현력 6 가독성 7 평균 6.5)


바람과 함께 날아간 종이달이 보여주는 눈앞의 태풍과 공포, 그로 인해 얼어붙는 신체까지.


감상자(鑑賞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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