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외 <문해력 격차>

왜 읽지 못하냐구요? 듣지를 못하거든요.

by 감나무감
김지원, 민정홍 <문해력 격차>

교실에 읽지 않는 아이와 읽지 못하는 아이가 늘어간다. 듣지 않는 아이와 듣지 못하는 아이도 점점 더 늘어간다. 쓰지 않는 아이와 쓰지 못하는 아이는 더 말해봐야 무엇하리.


20년 전, 태블릿 PC는 생각도 못할 시절, 교사의 수업 준비물은 교과서와 분필, 두 개였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교실 칠판에 판서하며 수업을 하기에는 전달할 내용이 많고 마음은 바빴다. 그래서 교사는 계속 말로 설명을 했고, 아이들은 계속 교과서에 선생님의 말을 받아 적었다.

그게 가능했던 시대였다.


그때 아이들은 집중해서 긴 시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들으면서 내용을 옮겨 적을 수도 있었다. 이해하고, 이해되지 않으면 그 시간에 질문도 가능했다.


중1 아이들의 수필쓰기 결과물을 채점하며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 아이들의 글쓰기 능력에 놀랐다. 문장의 호응은 기대할 수도 없다. 기본적인 단어도 맞춤법에 맞게 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그 어렵다는 띄어쓰기까지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씀을 원칙으로 한다는 띄어쓰기의 대원칙은 아이들의 문장 속에서 이리저리 발길에 채여 굴러다니고 있었다.


물론 띄어쓰기는 어렵다. 나도 헷갈릴 때가 있다. 하지만 요새 아이들은 띄어쓰기에 대한 기본 인식조차 갖고 있지 않는 것 같아 더욱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현재 중1 아이들은 2020년 초등학교 2학년 때, 코로나를 겪었다. 초2 때 등교 없이 대부분 원격수업으로 수업이 진행되었고, 초3 때까지도 아마 등교일은 며칠 안 되었을 것이다. 모국어로 듣기, 읽기, 쓰기의 기초를 공공히하며, 어휘력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와야 하는 때에 이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화면 앞에서 보냈다. 학교도, 학원도 맘 놓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학교 수업도 컴퓨터로, 수업이 끝나도 휴대폰 화면을 보며 긴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 이전에 비해 제대로 된 문장을 소리내어 읽고, 또박또박 써보는 경험이 현저하게 적어졌겠지. 물론 친구들과 함께 집중하며 교사의 말을 경청하는 기회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듣기 태도와 이해도를 줌 화면 안의 선생님은 일일이 확인할 길이 없었으므로.


아이들은 그렇게 방치되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이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어땠을까. 이미 4학년 씩이나 된 아이들을 대상으로 2,3학년 수준의 듣기, 읽기와 쓰기 교육을 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의 국어 실력에는 어마어마한 공백이 생겼다.


문해력.

글을 읽고 이해하여 자신의 생각을 자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이 책에서는 문해력의 바탕은 글자를 음운론적으로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글자를 시각 정보로 받아들인 후, 음성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미화하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영상이 넘쳐난다. 잠시도 지루함을 참을 수 없다. 교사의 설명을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듣지를 못하니 긴 글은 당연히 읽을 수가 없다. 읽어도 글자만을 읽어나갈 뿐 무슨 의미인지를 파악하지 못한다.


구글 효과(디지털 기억상실증)

언제든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기억하지 않는 현대인의 특성을 설명한 표현.


친절한 교사 효과(교실 기억상실증)이라고 바꾸어 표현하고 싶다. 요새 아이들은 교사가 전체적으로 설명할 때 집중해서 듣지 않는다. 들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니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자기가 필요할 때, 다시 교사에게 질문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이 중1 교실에 태반이다. 그래서 같은 설명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다시 해야 한다.


이를 두고 교사의 카리스마 부족이라거나, 전달력 부족이라고 치부하면 안 된다.

아이들은 교사의 설명을 알아 듣지 못한 지 이미 오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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