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ík)를 떠나 본격적으로 로드 트립을 시작한다면, 아이슬란드라는 거대한 대자연과 마주치게 된다. 눈에 담기 벅찰 정도로 들판이 뻗어져 있고, 웅장한 산맥이 펼쳐져 있다. 때로는 초록색 이끼가 소복한 화산석으로 뒤덮인 대지가, 때로는 몇 천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킨 빙하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슬란드에서 경험한 자연은 장엄하다 못해 무척이나 낯설다. 그래서, 아이슬란드라는 인간 문명이 이룬 나라를 여행했다기보다, 어쩌면 아이슬란드라는 행성을 탐험했다고 정의 내려야 할 것 같다. 그만큼 여태껏 보지 못한 기이한 자연이기에, 어느 순간 외계 행성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신비로운 느낌을 받는다. 그 낯 섬은, 어쩌면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구의 속 살을 본 것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마냥 근거 없는 감상에서 나온 느낌은 아닐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정말 원래는 무인섬(無人島)이었다. 먼 옛날, 아일랜드 수도승들이 수련을 위해 찾아 오두막을 짓고 거주한 것이 다였다. 몇 세기에 걸쳐 바이킹을 비롯해 사람들이 이주하기 시작했지만, 아이슬란드의 자연과 기후는 인간이 자리를 잡기엔 무척이나 척박했다. 레이캬비크에서 참여한 워킹 투어(City Walking Tour)에서 아이슬란드의 역사를 들으며, 어느 순간 그 당시 사람들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됐다. 만약, 인류 문명이 화성에 정착하게 될 때도 그렇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도 펼쳐 봤다. 그래서 더욱 행성처럼 낯선 환경이라 느낀 것일 수도 있겠다.
9박 10일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슬란드를 경험했다. 우리의 여정은 레이캬비크를 기준으로 북서쪽의 스네펠스네스(Snæfellsnes) 반도를 돌아 다시 남쪽으로 와 국도 1번인 링 로드(Ring Road)를 달려 남동쪽 마을 호픈(Höfn)에서 마무리했다. 대자연 속에서 하루에 적어도 2시간을 달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로드 트립(Road Trip)으로 아이슬란드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때론, 전문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아이슬란드를 이해했고, 난생처음 빙하를 오르며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자연을 체험했다. 아쉽게도 오로라를 보진 못했지만, 오로라를 보기 위해 설원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오두막에서 숙박을 하기도 했다.
자연의 경이로움도 경이로움이지만, 그 경이로움 속에 사는 사람들도 흥미로웠다. 적어도 한두 시간 차로 족히 달려야 아주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마을이 있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까, 나는 아이슬란드를 돌아다니는 내내 생각했다. 그렇게 작은 마을도, 여행자들을 위한 시설이 여느 호텔 못지않을 만큼 좋다. 그리고 그곳에는 유럽 각지에서 온 젊은이들이 일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말로 표현하자면, 그냥 ‘시골’인데, 물가(物價)는 눈물 날 만큼 비싸다. 두 명이서 펍가서 햄버거만 먹어도 족히 6만 원은 나오더라.
아이슬란드에서 ‘새로운 맛’에 즐거움을 찾기도 했다. 생선을 싫어하는 내가 아이슬란드에서 생선 요리를 즐길 줄이야. ‘그래도 아이슬란드까지 왔으니까, 여기서 생선 하나쯤은 먹어줘야지!’ 이런 생각에 시킨 요리로 시작해, 점차 생선 요리가 하나 둘 늘어났다. 나는 그렇게 아이슬란드 생선요리를 신뢰하게 됐다. 피쉬 수프와 피쉬 버거는 인생 요리로 손꼽을 만하다. 영국에서 유명 맛집보다 더 맛있는 피쉬 앤 칩스도 발견했다. 하지만, 생선이라고 결코 값 싸진 않다.
이렇게, 내가 경험하고 느끼고 맛본 아이슬란드를 적어볼까 한다.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녔기에, 여행 책자처럼 세세하게 모든 곳을 기록하기엔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해서 다 적지는 않을 거다. 아이슬란드 여행에 대한 ‘정보’를 전하기엔 불친절한 글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블로그에 검색하면 이미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지니, 나름 차별화 전략(?)으로 나만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적기로 했다. 세세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글은 아닐 지라도 특별한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다.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 혹은 그냥 지나처 가는 분들에게도 설렘을 느끼게 만드는 글이었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