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었는데, 결국 눈에 띄게 이뻤던 그분은 면접에 합격했다.
한 저비용 항공사의 부산 베이스직에 지원한 적 있다. 서류부터 어마 무시한 경쟁률로 유명한 항공사인데, 게다가 부산 베이스면 뽑는 인원도 몇 안되기에 서류라도 뽑히면 진짜 ‘신의 딸, 아들’로 불릴 정도였다. 당시 서류 통과자가 100명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6명 정도 조를 이루어 면접을 봤다. 그중 유독 이쁘장한 외모를 가진 분이 계셨다. 면접관의 맨 처음 질문은 이거였다. ‘화장 본인이 직접 했어요? 잘했네요.’ 그리고 이어진 질문은 회사에 대한 기본 정보. 그분은 단 하나도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면접자로서 준비가 전혀 안돼 있었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같이 면접 본 사람들 모두 '그 사람은 좀 힘들 것 같다'라 생각했다. 그러고 몇 주 뒤, 그분은 1차 면접에 통과하고 결국 최종까지 합격해 승무원이 되었다.
면접관은 ‘10분’ 동안 무얼 볼까?
한국에서 승무원 면접은 외적인 이미지가 합격의 절대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보통 6-7명씩 짝을 지어 한 조로 2-3명의 면접관과 대면한다. 일렬로 서서 ‘차렷, 인사,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면접관의 질문을 기다린다. 한 명당 보통 한 두 질문씩 준다. 질문의 내용도 다양하다. 심지어 ‘오늘 아침 뭐 먹었어요?’도 질문이 된다. ‘사드 보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민감한 시사적인 질문도 물어본다. 면접자의 답변은 1분 내외로 끝난다. 그리고 또다시 ‘차렷, 인사, 감사합니다~’ 그리고 퇴장한다. 이렇게 한 조당 10분 내외로 면접은 끝이 난다. 듣기론 어떠한 황당한 질문에라도 응대하는 ‘태도’를 본다고 한다. 그리고 말을 할 때 ‘모습’을 본다고 한다. 어쨌든 답변의 퀄리티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거다. 10분 동안 면접자의 내면을 파악하기엔 충분하지 않을지라도 지원자의 외적인 모습을 스캔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지 않을까.
무시무시한 ‘원 아웃’
심지어 어떤 항공사는 한번 떨어지면 재지원이 어렵다. 내 면접에 대한 ‘코멘트’가 기록에 남아 다음 지원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짧은 10분 동안 대체 어떤 코멘트가 남겨졌길래, 수많은 지원자들이 소위 ‘원 아웃’을 당하고 다시는 그 회사에 면접 볼 기회 조차 없는 걸까? 준비생들 사이에선 이게 일종의 페널티 개념으로, 한 2-3년 정도 지나면 코멘트가 사라져 그때야 다시 지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회사는 26살 이상은 잘 안 뽑는다는 유명한 회사다. 보통 요즘은 4년제 대학을 지원한 지원자들이 많으니, 칼 졸업한다고 해도 23살부터 지원을 시작할 텐데, 한번 떨어지면 ‘마지노선’인 26살에 다시 지원이 가능하거나, 아니면 나이가 그 이상이라 승무원의 꿈을 접거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외모도 서비스의 일부분으로 생각한다. 아니, ‘우리나라 사람’이 그렇다. ‘승무원=예쁨’이 소비자가 만들어 낸 것인지, 항공사가 만들어 낸 것인지는 계륵의 문제인 것 같다. 나는 승무원 준비를 하면서 면접 전형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승무원에게 가지는 환상이 무엇이고 기대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왕이면 예쁜 사람에게 서비스를 받고 싶다는 것.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우리 회사에는 ‘젠틀’하기로 유명한 과장님이 계셨다. 단순히 겉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 기품이 있고 특히 작은 것 하나에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 빛이 나는 분이었다. 하지만 그분의 그런 기품이 어느 순간 내게 ‘거짓과 위선’으로 인식이 되었다. 한 선배가 그분과 나눈 대화를 전해준 적이 있다. 그분은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유명 항공사 승무원들이 이쁘지 않아’ 실망했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냈는데…’ 그분의 마지막 말이 더 가관이었다.
이미지가 중요하다
사실 한국만 외적인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건 아니다. 아시아계 항공사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공통적으로, 아시아에선 그 나라 승무원이라 하면 ‘외적으로 뛰어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면접 또한 외적인걸 보기 위한 절차로 구성돼있다. 과거 어떤 중국 항공사는 일명 ‘노 메이크업’ 면접을 실시한가 하면, 현재도 어떤 동남아 항공사는 ‘워킹’ 테스트를 진행한다. 승무원의 끼를 보고 싶은지, 춤추고 노래하는 장기자랑도 면접의 일부분인 곳도 있다. 실제 승무원 유니폼을 입혀보고 어울리는지 보는 단계도 있다.
‘미소’가 서비스인 중동 항공사
중동 항공사들도 면접자의 이미지를 중요시한다. 근데 그게 아시아의 기준과 확실히 다르다. 면접 장에서 보이는 매너 라던가, 면접관과 대화를 오고 갈 때 그 사람에게 느껴지는 이미지를 본 달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뽑히는 면접자들의 외형은 매우 다양하다는 거다. 키 큰 사람, 작은 사람, 통통한 사람, 깡마른 사람… 스펙트럼처럼, 넓은 범위로 다양하게 생긴 사람들이 내 동료다. 저번 글에도 언급했듯, 입사하면 ‘어? 어떻게 저 사람이…’하는 사람도 있다. 이로서 ‘아, 이 회사는 외모가 절대적이진 않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느끼는 건 웃을 때 참 보기 좋다는 거다. 그리고 잘 웃는다. 비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너무 힘들어서 웃음을 잃고 일하다 매니저한테 지적을 받곤 했다. ‘웃으면서 일해. 그러라고 회사가 너한테 돈 주면서 일 시키는 거야.’ 이쁘지 않아서 지적받은 적은 없다.
슬프게도 나는 국내 항공사 면접관들이 선호하는 이미지가 아니었던 거 같다. 오랜 준비 기간 동안 단 한 번의 면접도 1차를 통과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면접에서 떨어지는 사실 보다도, 나 자신의 ‘가치’가 부정당하는 경험을 겪으며 자존감이 한없이 떨어지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그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나 스스로 만족하는 외적인 이미지를 지녔지만 ‘그들’에게는 거절당했으니 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라고,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 그런데, 나는 ‘절’이 결코 싫지 않았다. 절에 머무를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고, 중생은 그렇게 떠돌다 머나먼 중동 땅에 정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