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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Oct 05. 2019

한국인이 영어 제일 못한다

아마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한국인치고 영어를 잘하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동료들과 비행을 할 때 종종 듣곤 한다. 그리고, 동료들은 저마다 한국인 크루와 비행했을 때 에피소드를 말해준다. 한 번은, 어떤 동료는 슬그머니 나에게 와서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너, 미국에서 공부했니?’ 나는, 엥? 아니? 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른 동료가 우리 곁으로 오자, 그 크루는 ‘야, 아니래.’ 이러더라. 그러다, 나는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고 ‘아, 근데 나 영국에서 잠깐 공부했어.’ 이러자, 크루는 옆에 동료를 퍽 치면서 ‘야,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이러더라. 자기네들끼리 내가 외국에서 공부했는지 아닌지 내기를 한 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트레이닝 당시 수업 부적응 학생으로 찍혔었다. 우리 회사의 트레이닝은 강도가 매우 높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 매일매일 수업 전, 전날 배운 내용을 구두로 테스트하는 반짝 시험 (recap)이 있다. 한 번은, 내가 질문에 대답을 잘 못해서인지 중간 쉬는 시간에 트레이너가 나를 불렀다. 그녀는 전반적으로 지금까지 트레이닝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었다. 나는 정말로 괜찮았기에 ‘괜찮은데?’라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하는 말이 이거다. ‘아시아에서 온 친구들이 영어에 어려움을 겪는 거 아는데, 모르는 거 있으면 수업 마치고도 좋으니까 마음껏 물어봐.’ 그 후에, 우연찮게 전해 듣기론 나를 포함해서 우리 반에 있는 아시아권에서 온 친구들의 수업 평가 내용에 ‘영어 소통에 문제가 있고, 수업 학습 능력에 문제가 있음’이라 코멘트가 남겨졌다는 걸 알았다. 어이가 없었고, 자존심에 상처가 나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그 후론, 트레이닝에 대한 오만정이 다 떨어져서 그냥 얼른 이 과정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이렇게, 입사를 하고 나서 알게 된 건 넓게는 아시아인, 좁게는 한국인으로 한정해서 영어를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는 거다. 이런 편견이 어느 정도 만연해 있고, 뭔가 실수를 하게 되면 그 정해진 프레임에 가둬 이유를 덫붙이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내 주변에 한국인 동료들은 다들 영어를 잘한다. 외국 경험이 짧고 길게 있는 친구들이 많다. 지금껏 만난 수퍼바이저급 한국인 승무원들도 영어 말하기가 유창했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 사이에서 한국인이 상대적으로 영어를 못하는 게 맞다. 다들 보면, 영어 구사하는 수준이 원어민이다. 가장 큰 이유는, 우선 교육적인 이유가 있고, 부차적으론 문화적인 이유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육적인의 이유

우리 회사에서 가장 많은 구성원으로 차지하는 인도와 필리핀 친구들은, 아예 어릴 때부터 영어로 수업을 받는단다. 우리끼리는 그 친구들을 ‘준원어민’이라 칭한다. 영어권 국가에서 온 친구들을 제외하곤, 제일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한다는 의미에서다. 반면, 한국은 시험을 위한 영어 ‘공부’를 가르친다. 아직도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게 나의 수능 공부 방법이다. 당시 나의 영어 공부 방법은, 커다란, 독해 문제만 몇백 문제 실린 문제집을 시간 맞추어 ‘그냥 푸는 것’이었다. 내가 발명한 공부 방법도 아니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장려한 방법이었다. ‘그냥 주구장창 읽어라. 읽다 보면 읽는 실력이 는다’는게 이 공부법의 목표였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나는 영어를 사용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마나, 대학시절 영국에 교환학생을 갈 기회가 있어서, 나는 거기서 어떻게 영어를 말하는지 터득했다. 하지만, 몇십 년 영어를 사용한 친구들과 고작 이제 몇 년 영어로 웅얼웅얼거린 수준인 나와 비교를 하기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지 않을까. 게다가 나야 운이 좋게 입사 전 ‘외국물’을 맛본 거지, 크루들이 말하는 ‘영어 못하는 한국인’들은 한국에서만 순수하게 영어를 ‘공부'했을 거다.



문화적인 이유

문화적인 이유는 영어를 사용하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문화적인 이유 때문에, 영어를 상대적으로 못하는 건 맞지만 ‘더 못해 보이는’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서열 문화’여서, 연장자나 높은 서열의 사람에게 나의 말을 하는 것보다 경청을 하는 것이 예의다. 또한, 토다는 걸 금기시한다. ‘Excuse’를 말하는걸 무례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진지한 사람들이라 농담을 주고받는 게 어색하다. 즉, 어떤 상황이 일어났을 때 한국인은 입을 다물고 경청을 하는 편이지, 내 주장을 말하고 변호하지 않는다. 이게 외국인에겐 오히려 ‘영어를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게끔 만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트레이닝 때 봐온 유럽 친구들은 정 반대다. 곧 죽어도 자기변호를 해야 한다. 자신이 틀린 이유에 대해 굳이 이유를 붙여가며 설명을 한다. 그리고, 자기보다 나이 많고 직위도 높은 사람과 대화하는 게 익숙하다. 그래서 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한다. ‘아니, 왜 이야기를 안 해?’ 나는 대답한다. ‘그건 변명(excuse)잖아.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나는 묻는다. ‘아니, 왜 그런 변명을 굳이 하는 거야?’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연히 말해야 하는 거 아냐?’



한국어와 영어가 구조적으로 완전 '반대'인걸 잘 설명해준다. 이미지 출처: http://nojeokhill.koreanconsulting.com/


사실, 언어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한국어랑 영어는 N극과 S극처럼 아예 반대다. 언어를 사용할 때 구조적으로 생각의 방향이 다르다. 하지만, 영어와 다른 유럽권 언어는 어떻게 보면 비슷하다. 그래서 그들이 더 쉽게 배우고, 빨리 배운다. 그래서, 나는 요즘엔 ‘한국인들 영어 못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뻔뻔하게 말한다. ‘야, 우리가 영어 배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이 정도 하는 게 대단한 거야!’



외국항공사에서 일을 하려면 영어는 필수지만 엄청 높은 수준의 영어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영어 못해도 합격한 사례도 있고, 합격한 사람들이 원어민처럼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도 아니다. 단, 영어를 잘하면 일을 할 때 편하다. 동료들 사이에서 친목을 다질 수도 있고, 기싸움에서 안 밀릴 수 있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내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서비스할 때도 편하다. 외국인들은 농담 따먹기를 좋아해서, 서비스 도중에 재치 있게 몇 마디 던지면 좋아한다. 승객의 컴플레인을 다룰 때도,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설명하고, 승객의 입장에서 공감을 하고 있으며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영어 공부를 한다. 바빠서 주기적으로 하진 않지만, 나름 그래도 짬짬이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영어를 잘해야 피해를 안 보고, 억울한 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돌아오는 비행에서 내가 실수를 했다. 승객이 가득 찬 풀 플라잇(Full-load flight)이어서, 메뉴 하나하나 재고가 부족했다. 그러는 도중, 한 승객이 나를 통해 나중에 음식을 먹겠다고 리저브(reserve)한 걸 실수로 다른 손님에게 줘버렸다. 상황이 너무 바빠서 이게 리저브 된 음식인데도, 내 앞에 그 메뉴를 원하는 다른 손님이 있다는 사실에 꽂혀 기계적으로 그냥 줘버린 거다. 그리고 그 손님은 랜딩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그 음식을 찾아서 문제가 발생했다. 손님은 언짢아했는데, 여차저차 사과하고 열심히 그 비슷한 음식이라도 남아 있는지 뒤져가며 제공하자 큰 문제없이 마무리됐다. 



그 와중에 갤리 담당이랑 마찰이 있었다. 갤리 담당은 나보고 ‘우리 리저브 된 음식 없었어.’ 이러면서 선을 긋는 거다. 그 리저브 한걸 본인이 받아서 챙기는걸 내가 봤는데 말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담당은 마치 나에게 통보하듯 말을 하길래, 나는 딱 확실하게 말했다. ‘우리 리저브 한 거 맞아. 당시 내가 손님 메뉴를 다른 한국인 동료한테 넘겨주면서 이거 리저브 하는 거라고 말했고, 포장박스 위에다 표시해서 너한테 넘겼잖아. 기억 안 나니?’ 그러니까 그녀는 입을 다물고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바빠서 기억을 못 한 건지, 아니면 뭐가 찔리는 게 있어서 발을 빼려는 건지. 왜냐면, 당시 내가 그 리저브 한 음식을 ‘누군가에게’ 받아서 다른 손님에게 줬기 때문이다. 그게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외국 항공사에 합격하려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하나? 승무원 준비생들 사이에서 가장 큰 물음표 중에 하나다. 답은, 100문 100답처럼 예상 문제에 대한 답변을 만들어 줄줄줄 외우고 그 상황에 맞닥 드렸을 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으면 된다. 이건, 영어 말하기에 자신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근데, 그래도 외국인 사이에서 어느 정도 대우받으면서 효율적으로 일하려면, 잘하면 잘할수록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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