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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Oct 17. 2019

넷째 손가락의 추억

중동 항공사는 흉터에 민감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큰 상처 없이 곱상하게(?) 자랐던 것 같다. 뼈 한번 부러진 적 없었고, 피부에 칼을 대는 수술은 받아본 적이 없다. 흉터 자국 하나 없다. 아주 어릴 때, 다른 동네 꼬마들처럼 소독차를 따라잡는다고 뛰어다니다 크게 넘어져 무릎 부분이 심하게 까진 적은 있다. 피를 철철 흘린 거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입사하기 전까진 몸에 상처 없이 자란 게 정말 감사한 일이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게 엄청나게 어렵다는 걸 몰랐다. 눈에 보이는 흉터 때문에 고민하던 준비생 친구들의 불안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인생 최대의 중요한 시점에 다치고 나서야 그 심정을 알게 됐다. 






작년 겨울, 오른손 약지에 골절을 입었다. 런던에서 생활비를 아낀다고 한국인 룸메이트와 같이 살았는데, 서로 잘 안 맞았다. 몇 번을 부딪힌 결과, 결국 일이 터졌다. 오밤중에 언성이 높아지면서 몸싸움이 있었다. 그 여자와 내 손이 손이 맞닿으면서 손깍지가 껴졌는데, 내 손가락을 비트는 거였다. 당시엔 갑작스럽게 인대가 놀라서 퉁퉁 부었겠거니 했는데, 다음날부터 시퍼렇게 변하면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손가락이 꺾인 상태에서 펴지질 않았다. 응급실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다행히 심한 건 아니지만 살짝 금이 가서 손가락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마취 가스를 마셨고, 그 와중에 의사 선생님이 구부러진 내 손가락을 펼쳐서 지지대에 고정을 시켜줬다. 그렇게 몇 시간 후, 치료를 끝내고 남자 친구 집으로 가는 와중에 전화가 왔다. 회사에서 2주 후에 입사 가능하냐고 묻는 전화였다. 거짓말 같이, 하필이면 이때 전화가 오다니. 나는 내 손가락의 상태를 보고해야만 했고, 전화를 끊고 펑펑 울었다. 내 상태를 사진과 함께 첨부해서 이메일로 보내달라는 소식과 함께, 입사는 그렇게 잠정적으로 미뤄졌다.



다행히도, 그 시점으로 나는 약 3달 후 입사를 했다. 하지만, 그동안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왜 하필 결정적인 순간에, 평생 겪어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났는지, 애통하고 허망했다. 기나긴, 칠흑 같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기분이었다.



일단 중동 회사의 일 처리가 매우 느리고 자기 멋대로(?)다. 그 세 달 동안 꾸준히 내 상태를 사진과 함께 보고해야 했고, 중간중간 필요로 하는 서류를 요청하고 승인하는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실은 그 승인이 금방 날 수 있는 건데, 그건 담당자의 재량에 따라 결정된다.) 또, 나는 런던에 거주 중이라 회사가 요구하는 의사 소견서를 받기가 까다로웠다. 회사는 내게 일반 의사가 아닌 정형외과 의사의 소견서를 요청했다. 영국은 크게 국영 의료 시스템과 사설 의료 시스템으로 구분하는데, 국영 의료 시스템은 그런 페이퍼 워크를 안 해 준다. 간단히 병명만 적혀있고 사내 시스템으로 클릭만 하면 뽑을 수 있는 서류는 금방 뽑아주는데, 따로 양식이 있고 거기에 대한 답을 달아야 하는 수고로움은 거절한다. 무료라서 치료해야 하는 환자가 줄을 섰기에 ‘그런 거 우리는 안 해준다’라는 거였다. 나는 한 2주 정도 내가 치료받았던 대학 병원이랑 씨름을 했는데, 결국엔 완치가 됐다는 소견서를 못 받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사설 의사를 찾아 같다. 사설 의사는 전문의로서 프로필을 내 걸고 영업한다. 구글링으로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아 부탁했다. 종이 한 장짜리에 500파운드를 불렀다. 한화로 약 80만 원. 면담으로 그 한 장을 작성하기까지 고작 20분 걸렸으려나. 이 종이가 없었으면 입사를 못했을 수도 있다. 



입사하기 약 한 달 전, 반대편 약지도 다쳤다. 이로써 나는 양 손 약지(Ring Fingers)가 다 다친 셈이다. 농담 반으로, 지금 남자 친구와는 결혼을 약속하면 안 된다는 건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아무튼,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엔 뼈는 다치지 않았다. 당시 나는 런던의 한 카페에서 계산일을 하고 있었다. 금고를 열고 돈을 세는 과정에서, 동료 직원이 실수로 금고 서랍을 ‘쾅!’ 닫으면서 내 약지가 금고에 꼈다. 그때 그 아픔이란, 너무 아파서 할 말을 잃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즉각적으로 손톱 뿌리 부분부터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다행히 뼈는 문제가 없단다. 그냥 멍만 들었겠거니 했는데, 그다음 날부터 안에서 터진 피가 계속 손 끝에 모이면서 퉁퉁 붙고 그 압력 때문에 너무 아팠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응급실을 방문했다. 담당 간호사가 뾰족한 침에 불을 살짝 달궈, 내 손톱 끝 쪽에 그걸 놓곤 살살 구멍을 냈다. 그러자 진짜 샘이 터지는 것처럼 안에 고였던 피가 콸콸 쏟아졌다. 그리고 간호사는 그 주변부를 꾹꾹 누르면서 피를 뽑아냈다. 겁먹어서 오만상을 찌푸리긴 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내겐 이 왼쪽 약지가 ‘커다란 혹'이었다. 오른쪽이야, 입사 전에 진작에 뼈도 붙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근데 왼쪽 약지의 손톱은 피를 뽑아냈음에도 아래쪽에 피가 여전히 고여서 손톱 자체가 뽈록 튀어나왔었다. 피를 뽑았던 구멍도 남아있었다. 그래서 트레이닝 내내 그걸 감춘다고 진한 네일 컬러를 발랐고, 립스틱도 깔 맞춰서 시뻘건 버건디색으로 바르고 다녔다. 그리고 결국 그 손톱은 죽어서 빠졌는데, 그 과정부터 정말 스트레스였다. 손톱이 ‘옛다!’ 하고 그냥 바로 빠지는 게 아니라 너덜너덜 누더기처럼 한쪽부터 들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죽은 손톱과 손가락 끝이 분리가 되는 거다. 억지로 그걸 뜯으려고 하면 너무나도 아프다길래, 쫄보인 나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대신, 들린 부분 끝과 새로 자라는 손톱 끝을 겹쳐 놓고, 그 위에 네일 컬러를 발라 연결시켰다. 생각보다 튼튼한데, 한 며칠 지나면 또 들린다. 그럼 또 지우고, 끝을 맞춰 새로 네일을 바르는 수고로운 작업을 계속했다. 



결국 죽은 손톱은 새로운 손톱이 반 정도 자라났을 때야 떨어졌고, 나는 곧바로 네일샵에 가서 아크릴 연장을 했다. 너무나도 신세계였다. 가짜 손톱이지만 괭장히 튼튼해서, 손톱 걱정 없이 자유롭게 손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전까지는 아무래도 매니큐어로 끝부분만 살짝 이어 붙인 거니, 떨어질까 봐 일할 때 왼손을 조심해서 사용한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이제 드디어 약지 손톱이 다 자랐다. 장장 몇 개월이 걸린 건지… 조만간 네일샵을 가서 아크릴 연장을 제거할 거다.



상처 입은 손톱을 가리기 위해, 이렇게 붉은색의 매니큐어를 바르고 다녔다.


이런 상처가 뭐라고. 사람이면 누구나 다칠 수 있는 건데. 근데, 중동 항공사 중 특히 우리 회사는 유독 그런 상처에 민감하다. 일단 보이는 곳에 상처가 없어야 한다. 그래서, 뼈가 다쳤음에도 외상 사진을 보내라고 요청을 했던 거다. 혹시나 뽈록 하게 튀어나온 손톱과 구멍 자국이 문제가 될까 봐, 잘 티 안 나도록 어두운 네일 컬러를 바르고 다녔던 이유도 그렇다. 



얼굴은 물론, 팔은 손가락부터 팔꿈치까지 흉터나 상처가 없어야 한다. 유니폼 블라우스가 팔꿈치까지 떨어져서이다. 흉터가 크지 않다면 컨실러로 가려서 면접을 보고, 굳이 보고 안 해도 된다. 괜히 보고했다가, 사진을 요구받고 심사 과정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많다. (그다음 면접에는 그걸 보고 안 해서 합격하고 잘만 비행하는 사람들도 많다.) 가령, 코나 입술 밑에 피어싱 자국이라던가 오래돼서 흐릿한 상처는 컨실러로 충분히 가릴 수 있다. 만약, 흉터가 조금 크고 티가 쉽게 나는 거면 면접 전에 시술을 통해서 없애길 바란다. 



입사 후에 생기는 상처도 마찬가지다. 매일 비행 전에 ‘그루밍 체크’를 한다. 누가봐도 뻔한 상처는 비행 전에 꼭 보고를 해야한다. 만약, 그 자리에서 걸리면 비행을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내가 빠진 자리를 매꿔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전체 비행에 차질을 주게 되었다는 이유로 회사로 부터 경고를 받을 수 있다. 



비행을 시작하고 입게 되는 상처의 정도는 다양한데, 손쉽게 얻는 생활 화상 때문에 당분간 비행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상처를 밴드 등으로 가리는 거 자체가 허용이 안되기 때문이다. 내 플랫 메이트는 비행 중 이상 기류로 기체가 흔들리는 바람에 뜨거운 물을 쏟아 손에 화상을 입었다. 그래서 한 10일 정도 비행을 못했다. 엊그제 비행에서 만난 중국 친구는 비슷한 경우로 한 달 정도 비행을 쉬었다더라. 아무튼, 눈에 보이는 흉터나 상처는 민감하다. 






기내에서 일을 하면 출처가 불분명한 상처를 많이 입는다. 하물며, 책을 넘기다가도 손가락 베이는데, 바쁘고 좁은 기내에서 여기저기 치이면서 일하면 오죽할까. 여기저기 누구한테 언제 두드려 맞았는지는 몰라도 (웃음) 다리는 멍 투성이다. 자잘 자잘하게 스쳐서 베인 흔적도 많다. 종종 동료들과 함께 새로 생긴 상처를 보여주며 조언을 구한다. 상처가 눈에 띄는지, 회사에 보고를 해야 하는지 말이다.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승무원의 자질이 될 줄은, 준비생으로 있을 땐 미쳐 알지 못했다. 매 비행, 나만의 미션은 ‘상처 없이 비행을 마치는 것.’ 오늘도 무사히 비행을 마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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