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여전했던, 그 시절의 '나'

프롤로그 하나 – 5년 하고도, 5년이 지난 이야기

by 로지

참으로 여전했던, 그 시절의 '나'

심리학 대학원 에세이 – 프롤로그 하나 – 5년 하고도, 5년이 지난 이야기




이 이야기를 언젠가 진득하게 하나씩 꺼내서 나눌 날을 그렸다. 원래 그리 글을 쓰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경험을 나누는 건 언제나 즐겁고 유쾌했다. 때론 글에 담긴 그 묵직한 무게감이 마음에 든다.


이 이야기는 한국 대학원에서 경험한 나의 시간 조각 모음이다. 나는 심리학과, 상담심리학 전공자이다. 최근 한국에서 일반대학원 심리학과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그리고 이미 제목을 보고 예상했겠지만, 대학원에서 보냈던 그때와 지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 역시 대학원 경험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어딘가에 차곡하게 한 번은 정리하고 싶다고 여겼고, 이번 브런치가 그 시작이 되어주었다. 원래도 하나, 둘씩 기록을 남겨두곤 했으나 이렇게 처음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넘겨볼 글을 작성하는 건 처음이다. 나의 이 글은 대학원 입시 정보에 대한 것도 아니고, 대학원 생활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중점적으로 풀어가는 글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나의 경험을 통해 누군가가 자기 자신만의 고유함과 특별함에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일반대학원(주간 전일제)에서 진정으로 '나답게' 성장하고자 하고, 상담자(치료자)이자 연구자(학자)로서 그 과정 중에 겪은 이야기를 풀어가 보려 한다. 그리고 특히 한국의 심리학과 대학원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때론 단호하고 분명하게 나눠보고 싶다.







지금으로부터 5년 하고도, 5년 전은 바로 내가 일반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하던 때였다. 지금 이렇게 글을 적으면서 떠올려보니 정말 딱 10년 전이구나 하는 깨달음에 순간 흠칫했다. '벌써 이렇게나 시간이 됐나?'라는 느낌과 '그럴 만도'라는 지긋한 평온함을 느낀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당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있다면, (심리학의 응용심리학 중 하나인) 상담심리학은, 한국에서 특히, 그리 선호되는 전공이 아니다. 그건 입학했을 때 신입생을 보는 재학생들의 반응을 보면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고, 비전공 사람들의 반응을 봐도, '그거 전망이 있는 건가?'라는 느낌이 읽히기도 했으니까. 가장 가까운 유관 전공인 '임상심리학'에 항상 비교당하곤 한다. 임상심리학보다 '전망이 좋지 않다. 돈을 잘 벌지 못한다. 사회적으로도 알아주지 않는다.' 등 씁쓸한 평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상담심리학이다.



*소소한 기억:

한 번은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한 교육에 참여했다. 서울에 한 기관이었는데 상담전공 대학원만을 위한 입시 수업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전공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곳이다. 그곳에 들어섰을 때 적어도 30명 이상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대부분 나이대가 40대 후반으로 보였다. 그때 내 옆에 나에게 말을 걸어온 40대 후반에서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상담 전공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고, 나는 나만의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내가 당신 나이었다면 임상 전공을 선택했을 텐데, 나이 때문에 그리고 임상은 어려워서 상담을 선택했다'는 말이었다. 아직도 그 기억이 남아있는 걸 보면 적잖이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뒤에는 기분이 나쁘기도 했던 거 같다.

또 한 번은, 집단 상담이었다. 여러 명의 참여자가 함께 상담에 참여하는 심리치료인데, 이때 나는 그저 집단상담이라는 것을 상담 자체로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참여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5~6명 모두가 현재 심리상담을 업으로 가진 전공자이자 실무자라고 했다. 그들은 나의 존재를 희한하게 여겼으며, 왜인지 모른 씁쓸함과 가여움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여기에 참여한 게 '학회 수련 확인'을 위해 겸사겸사 왔다고 하면서, 아직 상담 분야에 발을 들이지 않은 나에게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 한다'며 '늦지 않았다'며 내가 말한 나만의 이유는 이해조차 하지 않은 채 그들의 힘듦을 토로했다. 그들의 말은 가볍다 못해 나에게 전혀 닿지도 못하고 흩어졌다. 그들의 말엔 힘이 없었다. 그저 묘한 불쾌감만 안겨주었다. 마지막에 기억나는 그들의 모습 중 하나는, 집단 리더(수퍼바이저)에게 집단상담이 끝나고 줄을 서서 알 수 없게 생긴 수첩에 확인을 받기 위해 상당히 몸을 낮춰서 대하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은 그 모습이 그때는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시절, 나는 상당히 당돌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표현이 딱이다. 지금도 그리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전공과 분야에 있은지 11년 차가 되어가면서 이제는 자기 객관화가 조금은 된 덕분일 것이다.


여전히 나는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실현해가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하는 경험 그 자체에 가장 큰 권위를 부여한다. 그래서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경험을 통해 느끼는 것을 좋아하고 한번 경험하고 나면, 그다음을 기대하고 달려가는 사람이다.


내가 상담심리학을 선택한 것도 그랬다. 나는 심리상담(심리치료)에서 경험하는 자유로움과 자기실현 경향성에 푹 빠졌다. 이는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운데, 심리상담만큼, 정말 한 존재, 혹은 두 명 이상의 존재가 진정으로 진솔하게 가장 그 사람답게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 싶다. 누군가에겐 과장되게 들릴지라도 적어도 나에겐 여전히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에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심리학과를 안 갈 이유가 없었고, 가야만 하는 곳이 되었다. 상담심리학이 응용심리학이라면, 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심리학과를 가는 것이 그저 당연했다. 지금을 돌아보면 정말 그 선택이 현명했다고 느낀다. 한 톨의 후회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는 치유적인 부분 때문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에, 자신이 치유되기에, 누군가를 가르치기에 등 여러 이유로 심리상담 분야에 들어온다. 그들 모두가 저마다의 가치를 따라 들어왔다. 나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나는 나를 위해, 이 길에 들어섰다.



나에겐 학교 이름이, 교수의 명성이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가 배우고 싶은 이론(인간중심접근 Person-Centered Approach)을, 그리고 그 실천을 할 수 있는 곳인 것이 중요했다. 처우, 라인(연줄), 명예 등은 순위에도 들지 않았다. 그것들은 부수적인 것들이기에 중심이 될 수 없었다.


석사과정에 들어섰을 때도, 내가 배우고자 하는 이론을 가르치는 사람을 간절히 찾았고, 수많은 전공서를 찾아보았고, (그때는 익숙하지도 않고 어렵기만 했던) 논문을 숱하게 뒤졌다. 매일 내가 앞으로 도달할 그곳을 그리고 또 그리며 기대감으로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소소한 기억:

한 번은 포커싱(Focusing) 번역서를 읽게 되었다. 모든 책은 서문이 있는데, 그 서문 끝 문장에 "이 글을 보고 있을 누군가가, 관련해서 궁금하고 고민이 되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연락해 주길 바란다"는 말에 곧장 책 뒷장을 펼쳐서 적혀있던 저자의 이메일로 메일을 보냈다. 그때 얼마나 떨리고 기대되었는지. 며칠 뒤에 답장을 받게 되었는데, 한국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냉소적인 반응의 답변을 하면서, 전화통화를 제안했는데 마음이 석연치 않았다. 결국 통화를 했으나 뭔가 S 교수에 대한 수동 공격적 발언과 그보다 자신에게 배워보지 않겠냐며 유료 교육을 홍보하는 대화로 끝이 났다. 통화가 끝나고 큰 실망과 상실감으로 책을 다시 펼쳐보았다. 그때 깨달았다. 그 서문은 해외 원저자의 말이었고, 실제 내가 연락했던 사람은 해당 원서를 번역한 한국의 역자였다.



내가 배우고 싶은 이론을 충분히 맘껏 즐기며 배우고 익힐 거란 기대만으로 한국 대학원 두 곳을 지원했고, 그중 하나에 합격하면서 석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반대학원과 심리학과를 고집한 나만의 이유가 있었다. 약간은 고전적이고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몰라도, 지금 생각하면 참 단순했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내가 소중하게 찾게 된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왕 배울 거면, 배고픈 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공부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주간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반대학원 외 교육대학원, 특수대학원 등 여러 종류의 대학원이 있었지만, 나는 심리학이란 학문을 정직하게 공부하고 싶었다. 개론부터 응용 분야까지 차근차근 하나씩 공부하고 싶었다. 실은 그럴 필요가 있었다. 나의 학부 전공이 심리학과가 아니었기에도 있었고,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너무도 부족하기만 한 나의 기반 지식이 한탄스러웠다. 그래서 스스로 떳떳하게, 내가 이리 좋아하는 일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심리학과를 가야 한다고 여겼다. 기초부터 하나씩 제대로. 그러니 교육학도 아닌, 상담학도 아닌, 심리학이어야 했다. 이게 이유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