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수 없던 곳에서, 배우는 법을 찾아서

프롤로그 둘 – 한국 석사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

by 로지

배울 수 없던 곳에서, 배우는 법을 찾아서

심리학 대학원 에세이 – 프롤로그 둘 – 한국 석사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




석사과정에 입학하기 위한, 대학원 입시 준비 기간에 기초 심리학 과목을 외부 교육을 찾아 들었다. 성격심리학, 인지심리학, 발달심리학, 이상심리학, 학습심리학 등 이렇게나 심리학이 세분화되어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고, 너무도 방대한 지식의 양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석사과정에 입학해서도, 전공필수 과목을 선택하면서도 틈틈이 도서관에 가서 두꺼운 개론서들을 하나씩 빌려 읽었다. 내가 있던 대학원은 책을 빌려 읽던 공간이 지하에 위치해 있어서 (1층이라고 명명하지만, 들어서면 지하 1층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항상 오묘했다.), 그 공간에만 가면 알 수 없는 쾌쾌함이 반겨주었다.



*소소한 기억:

대학원 면접에 팀당 총 5명이 들어갔다. 나는 아마도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에겐 마치 인기 아이돌의 팬사인회 같은 느낌도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지원했던 대학원은 one and only 지도 교수만을 보고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꿈을 그리며 다가가고 싶어 했던 학자와 첫 대면이니 얼마나 설레었겠나. 내가 책만 갖고 있었어도 당장에 친필사인을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S 교수의 첫인상은 인상 깊었다. 그의 역서에서 봤던 사진의 느낌은 수수한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되게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마 그의 옷차림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당당했고 중간중간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랄까 지루해 보였던 거 같다. 그러던 중 "000 선생님은 해외에 잠깐 있었네요?" 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순간 당황한 건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저런 질문은 입시 대비 질문에는 없었으니. "네 잠깐 있었습니다."라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S 교수는 영어로 질문을 이어갔다. 갑자기 한국어 면접이 영어 면접으로 바뀌었다. "What was your major?" "Why didn't you contact me before?"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때 당황스럽긴 했어도 정말 좋았다. 기뻤다. 그의 관심이 감사했다. 나는 영어로 답하였는데, 특히 사전에 연락을 취하지 못한 것은 '그래도 되는지 몰라서'라고 답했다. 얼마나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혹여라도 마이너스가 될까 싶은 나이 조심스러움이었다. 그녀는 흥미로운 듯 미소 지어 보이더니, 다음 지원자로 넘어갔다. 그리고 개개인 면접이 끝나갈 무렵, 지원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냐는 물음에 용기 내어 말했다. "What do you think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studying?" 내가 항상 스스로에게 되묻던, 그리고 존경하는 학자를 만나면 꼭 묻고 싶었던, 답을 갈구했던 질문을 했다. 그때 S 교수는 미소 지으며 "Workshop"이라고 담백하게 대답하고 면접은 끝이 났다.






나는 진취적인 사람이지만, 또 한편으론 수줍음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되게 모순적인 말이라고 들릴지라도, 사실이다. 실제로 가능하기도 하고.


하고 싶던 것이 분명하던 다는 입학을 하고서,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너무도 좋아하는 전공을 공부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충만해있었다.


(당시 재학 중이던 심리학 석사과정은 2년, 즉 4학기 제였다.) 하루, 한 달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입학하기 전부터 심리학과 임상 및 심리학 전공 연구실을 정말 거의 매일 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낡은 책상과 오래된 의자가 벽에 줄 지어 있는 거뿐인데도, 진짜 뭣도 없던 그 공간에 매일 같이 출근 도장을 찍었다.


상담 전공 연구실은 임상 전공 연구실과 분리되어 있었으며, 상담 전공은 (아마 거의 대부분의 한국 대학원이 그럴 것이다) 대학원 연구실에 매일 같이 와야 하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문화가 없다. 이건 정말 나에게도 다행이었다. 나는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자의로 즐겁게 연구실에 나갔으나, 이게 누군가의 강제가 되었으면, 특히 권위자(교수, 선배 등)에 의한 것이었으면 너무도 끔찍했을 것이다.


매일 연구실에 가서 했던 것들은 그러했다. 기초 심리학 과목 공부를 포함해서, 내가 연구하고자 했던, 배우고 싶었던 '인간중심접근(Person-Centered Approach, Carl Rogers)'의 저서와 관련 연구를 찾아보고 읽고 모으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제 곧 참여하게 될 상담 수업들이 너무너무 기대됐다. 직접 듣기 직전의 설렘으로 보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동기가 넘치고 희망적인 학생이었다.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웃픈 사실 중 하나는 석사 입학은 물론이고 석사 과정 내내 자신이 어떤 상담을 하고 싶고, 어떤 이론을 기반으로 내담자를 만날 지를 정하지 못한 학생과 상담자가 최소 98% 이상이다.


심리치료(심리상담)는 과학적으로 학술적으로 오랫동안 갈고닦아진 이론과 실증 결과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전문적인 개입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기반으로 하는 이론을 수년간 걸쳐 실천하고 공부하고 경험하면서 빚어진다. 그러니 이론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느낌대로 하는 것은 심리치료, 심리상담이라고 할 수 없다.



석사 과정(Master's program)은 엄밀히 말하면 심화 학업 과정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수많은 석사과정과 여기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기초에 머물러 있다. 최소한 한국의 심리학과 상담 및 임상 전공은 그렇다. 난 이를 석사과정 시작의 순간에 깨닫기 시작했다.


대학원 수업은 무난하고 무난했다. 내가 학부에서 심리학과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때론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어떤 의미냐면, 내가 기대하거나 예상했던 심화 수준의 교육은 아니었다. 몇 개의 수업만 제외하고는 비전공자도 충분히 소화가능한 수준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한국 석사과정에서 배우는 수업의 수준은 학부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많다. 박사과정 또한 석사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업이 대다수다. 무엇이 차별화된 부분인지를 찾는 것이 더 어렵다. 많은 국내의 대학원에서 박사 학생들은 석사 학생들이 듣는 수업을 똑같이 듣고 같은 과제 수준도 같거나 별 차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업 제목이 조금 달라지거나 심화 수준 같아 보이는 작명인 것뿐이지, 그 내용은 학부에서 진행되는 내용 80%에 약간의 20% 정도 첨가된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박사 과정은 석사 과정의 약 5% 정도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이후 박사과정 내용에서 더 자세하게 나눠보려 한다.



간혹, 교수의 개인적 역량과 의지에 따라(대학원의 명성과는 상관없다), 해당 대학원에서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이 열리는, 특수한 경우가 생기지만 이는 매우 희박하다. 열악하고 위계에 범벅이 된 한국 대학 문화에서 이를 역행하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해서 교육열을 불태우는 진정한 교육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학생의 배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동기가 충분히 높지 않다면, 내가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지, 어떤 전문성을 쌓고자 하는지 고심하고 선택하지 않는다면, 이 열악하고도 열악한 한국 대학원에서는 절대 충분히 배울 수가 없다. 전문가로 성장하기엔 너무도 각박하고 치열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한다.

하지만,

우물조차 팔 수 없는 상태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여기까지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내가 어떤 기대와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어렵게 찾은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이런 나의 마음을 존중하는 태도를 다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해당 분야에 최소한의 존중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 내용이 어렵고 지난하더라도 둘러가거나 기만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어차피 나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안다. 숙련된 역량은 고스란히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니 최대한 정직하고 성실하게 공부하고, 주도적으로 배우고, 진정성을 가지고 성장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나는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다른 대학원에서 끝 마쳤다. 그 덕분에 얻은 경험은 바로 다양성이다. 커리큘럼, 즉 교과과정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


그래서 더욱 궁금증이 커지기도 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같은 학교에서 석사 또는 박사 과정을 진학하는 모습이 의아했다. 한국 심리학 대학원의 커리큘럼 체계에 대해서 아직 몰랐던 때는 너무도 순수하게 그저 해당 대학(원)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질과 체계가 양질이라서인 줄 알았다. 이것이 큰 착각이었음을 이후에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후 한 번 더 언급할 예정이지만, 한국에선 같은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일이 흔하다. 즉, 같은 학교에서 학부, 석사, 박사를 진학해서 배우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가 상당히 빈번한데, 심지어 석사와 박사를 다른 대학(원)에서 졸업한 지도교수 H도 나에게 "왜 동대학원으로 박사를 가지 않고 여기로 왔나요?"라고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하기도 했다. 그도 서로 다른 대학원에서 배운 사람인데 그 질문을 나에게 했던 건, 정도로 동 대학원 진학이 한국에선 의례적이고 흔해서였을까?



내가 석사를 들어갔을 때도 그랬다. 같은 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한 사람들이 엄청 수준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많은 수가 존재했다. 이 역시도 지도교수의 재량이지만, 여전히 고리타분하고 학연을 중시하는 교수일수록 동 대학에서 진학하는 학생을 위주로 뽑아간다. 실제로 보고 들을 얘기지만, 같은 실력이면 (개인적으로 해당 학생을 모르더라도) 동 대학(원) 학생을 뽑는 경우가 정말 흔하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겨야 한다. 학부-석사-박사 커리큘럼이 크게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한국의 심리학 대학원 수준에서, 같은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들이 배우게 될 교육의 질, 수준, 상태 등이 예상되지 않는가? 이러한 구조적인 측면만 해도 교육 자체에 상당한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내가 석사과정으로 들어간 대학원은 지도교수 재량으로 그가 전문성을 두고 있던 상담 이론 수업이 정기적으로 열렸다. 실은 이는 이후 나의 상담 커리어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다행히도 긍정적으로 말이다. 해당 이론은 인간중심접근을 추구했던 나에게 현대의 근거기반 및 체험중심 이론을 접할 수 있는 포문을 열어주었다. 꼭 그것만의 영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수업과 이를 지도했던 교수의 영향은 유의했다.


아무도 알려주거나 이끌어주지 않았으나, 그 이후 나는 해당 이론에 관한 영어 원서, 영어 논문 등을 찾아 읽고 공부하며 해당 이론에 대한 재미와 흥미를 키워갔다. 논문도 그저 읽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리스트업을 하거나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 국외에서 진행된 연구를 비교해서 정리해두곤 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재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원문복사 등)와 원어민 writing tutoring, IRB 교육 등도 찾아들었다.


놀랍게도 나 외에 다른 대학원 재학생들은 이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체험을 중심으로 하는 이론, 그리고 내가 가장 흥미를 두고 있는 정서(emotion)에 대해서도 함께 연결해 가며 공부했다. 그 당시에 적어둔 노트를 보면, 정말 많은 고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보면 '이런 걸로 엄청 고민했구나' 싶은 것들이 대다수지만, 그때는 그게 가장 치열했던 고민이고, 궁금증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 중 하나지만, 실제로 교수가 상담 기법이나, 장면을 재연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는 흔히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대학원 수업에선 구두로 개념을 설명해 주거나 해외 사례를 가지고 고찰하거나 발제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석사 과정 때는 발제와 함께 해당 이론의 개념이나 개입을 직접 자기 자신은 물론 수업을 함께 듣는 학생들과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은 지금도 돌아보면 가장 깊은 배움과 성장이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때마다 나의 선택을 진심을 다해 지지하며 기뻐했다.




나중에 석사 입학 후 중반이 지나갈 쯤에나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처럼 그나마 지도교수가 지향하는 이론과 일치한다면 대학원 과정이 최악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앞서 말한 대로 순수하게 교수라면 응당 학생의 자율성, 학습의 자유, 다양성을 충분히 인정해 주고 그 안에서 학생이 성장할 수 있게 조력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응당 교수라는 교육자의 책임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실제로 석사과정에 재학해서 들었던, 그간 있었던 연구실 행태와 교수의 지도방식은 정신이 아찔하고 믿기지 않는 내용 투성이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믿기지 않는 일도 수도 없이 많았다. 예를 들면, 졸업이 계속해서 밀리고 또 밀려서 석사 졸업까지 최소 4년 이상 걸린다던가, 입학할 때까진 없었던 졸업을 위한 지도교수만의 조건 등, 그 외에도 공개할 수 없는 수준의 내용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교수는 언제나 위계의 정점에 있는 존재이고 대학원 학생은 위계의 가장 하층에 있는 존재라고 하지 않는가. 아쉬운 쪽이, 손해가 큰 쪽이, 힘이 없는 쪽이, 더 간절한 쪽이 언제나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반복되는 슬프고 마음 아픈 대학원의 현실이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하면서도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화하고 이를 끊임없이 추구해 가는 의지와 결단이었다. 석사 과정 동안에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후 그 과정을 돌아보면 그 덕분에 학교도, 교수도, 교재도, 동료도 가르쳐주지 못한 무엇을, 어떻게 학습하고 연습해야 나만의 전문성을 빚어갈 수 있는지를 스스로 깨우쳐갈 수 있었다.


내가 만약 그저 입시만을 위해, 상담 분야를 그저 직업의 하나로만,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들어와서 주어진 수업만을 들으며, 졸업만을 위한 학점을 채워갔다면, 학회에서 인정해 주는 교육만 들었다면, 자격증만을 위한 교육을 들었다면, 원하지도 않는 교수가 던져 준 주제로 연구를 했다면, 다들 하는 대로만 따라갔다면, 나는 절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이 주체적인 학습인지, 그리고 무엇이 나한테 알맞은 길인지, 나는 어떤 상담자로 성장하고 싶은지, 어떤 부분에 전문성을 더 채워가고 싶은지, 어떤 경험을 추구해가고 싶은지 말이다.



무엇이 나 답다는 의미인지를.

학습에서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성장에서 주체적인 것이 얼마나 가치로운지를.


배울 수 없는 이곳에서, 길을 잃지 않고 스스로 찾아갈 수 있었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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