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대학원 에세이 – 프롤로그 마지막
프롤로그를 슬슬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본편을 시작하기에 앞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는지 그 기억의 조각을 모아두고 싶었다. 아무래도 10년이 다 되어가는 과거의 기억이기에 꽤나 희미해져 버렸다.
석사 과정에서 기억에 크게 남는 수업이나 교육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박사과정을 끝마친 이 시점에서 다시 돌아보면, 그래도 그나마 가장 설레며 수업에 들어가, 공부했던 순간은 오히려 석사과정 때가 더 짙게 남아있다.
지금은, 그때를 달콤하기만 한 추억으로 담아내는 것을 보니, 그동안 나의 마음이 얼마나 변했는지 느낄 수 있다. 좋다 별로다 라는 말로 간단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든다. 상당히 복잡하고, 복합적인 마음이다.
많은 것을 상상하고, 꿈꿨다.
석사 졸업연구를 하던 때도 같았다. 그 당시에는 지금 푹 빠져있던 정서중심치료(Emotion-Focused Therapy)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기 이전이었다. 그래서 인간중심상담 또는 정서(emotion) 관련 연구를 하면 좋겠다는 마음만 막연하게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심리학을 학부 때부터, 혹은 그보다 더 오래 공부하고 갈고닦은 사람이나, 상담 경험이 많은 사람과 동일한 출발선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더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것을 배워도, 이해하는 시간은 더뎠고, 같은 것을 읽어도 내 것으로 소화하기 까진 더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다.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는, 변함없는 사실임에도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노력은 나에게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기본이었고, 필수였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마주해야 하는 건 언제나 쉽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수치스러울 때도 있었고, 크게 좌절해서 회복이 잘 안 되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고, 부정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처음부터 능숙하게 잘 해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처음 알게 된 것을 자연스럽게 바로 적용할 수 있겠는가.
나에게 심리학과 상담 전공의 공부는 그러했다. 내가 연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꽤나 단순했다. 심리학은 철학과 과학의 융합 학문이다. 그렇다면 철학은 물론 과학적 지식도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우러러보는, Carl Rogers라는 학자이자 치료자는 인간중심접근을 만들며, 첫 시작이 바로 증거기반의 분석과 연구였다. 자신의 심리치료 과정을 기록하여 이를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만들어진 이론이다. 난 그 점이 너무도 멋졌고, 그래서 당연하다고 여길수밖에 없었다. 깊게 설득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그게 나에겐 맞는 답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분야에 나의 진심과 존중을 담고 싶었다. 그건 지금도 여전히 변치 않았다.
연구를 하려면 연구 방법론을 알아야 하고, 연구를 어떻게 설계하는지 알려면 연구를 구성하는 기초 내용부터 내가 탐구하고 싶은 주제의 선행연구를 알아야 한다. 수많은 연구 방법과 주제를 뒤지며 나의 주제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이때도 지도 교수가 주는 연구 주제로 연구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다. 나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연구라면, 응당 내가 고민하고 찾아보고 고심해야 한다고 여겼다. 의무나 책임도 아니었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이 당시에도 지도교수를 정말 많이 찾아갔는데, S 교수는 답장이 없기로 유명했고, 어떨 때는 메시지를 읽었다가 무시하기 일쑤였다. 얼마나 지독했기에, 학생들 사이에선 '교수님에게 답장받는 꿀팁'이 돌아다닐 정도로, 교수의 답 한 번을 듣기가 너무 쉽지 않았다.
연구와 관련해서 교수에게 질문도 많이 했고, 교수가 준 피드백을 하루 또는 일주일 내내 고민해서 수많은 자료와 함께 찾아가기도 했다. 교수와의 겨우 그 5분 남짓한 시간에 뭐라도 들어보겠다고, 조금이라도 진척해 보겠다고 마음을 끓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도는 좌절과 실망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가득하다.
내가 들고 간 주제에 대해 완강하게 반대하거나 거절하지 않으면서도, 교수가 생각하는 정해둔 답으로 항상 끝이 났다. 분명 지난번엔 A 방향으로 찾아보면 좋겠다고 했지만, 다음 면담에선 "제가 그렇게 말했나요?"라는 정말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는 교수였다. 이 과정이 몇 학기에 걸쳐, 몇 달 내내 반복됐다. 학생 입장에선 졸업이 점점 멀어지는 상황이고, (상담 전공생들은 잘 알겠지만) 석사과정 중에는 생계를 위한 활동이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졸업이 멀어진다는 건 먹고살아갈 길이 점점 멀어진다는 의미다.
끈질긴 협상 아닌 협상의 과정에서, 나는 겨우 내가 마음을 부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연구주제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수많은 선택지를 다 꺾어 내리고서야, "정서"라는 키워드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지덕지였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안도감이 컸다.
석사 졸업 연구 주제가 확정된 순간부터 졸업 최종 심사까지, 나는 지도 교수의 제대로 된 피드백 하나를 받지 못했다. 항상 잠깐의 면담 시간이면, 대학원 생으로서 해야만 하는 과업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지거나, 또 다른 과제를 떠안거나(번역 등), 교수가 준비하는 무엇을 보조하는 역할에는 자주 이용되었다. 정작 내가 필요한 상급 연구자이자 치료자의 피드백은 받을 수가 없었다.
선행연구와 영어 논문을 계속 찾고, 또 찾고, 읽고 또 읽으면서 그렇게 독학을 했다. 수업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노력했고, 그 외 부족한 부분은 외부의 자료나 오래된 저서와 최신 저서를 통해 채워갔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충분할 수 없었고 퀄리티도 좋을리 없었다. 다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과 악에 받쳐 처절하게 생존하고자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은 장면 중 하나는, 최종심사를 마치고 나면 발표한 연구 내용에 대해 각 심사위원에게 심사 결과지를 받게 되는데, 이는 교학팀에 제출하는 행정서류라 모든 교수들이 꼭 필수로 작성해야 한다. 그때도 아직은 기대가 남아있었는지,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에서 지도교수의 연구 평가서를 꺼내 들었다. 약 25포인트 크기의 글자로 3 단어 정도가 휘갈겨 적혀있었다.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기억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때의 허탈감은 여전히 깊고 생생하다.
100여 장이 넘는 학위 논문에 대한 피드백이, 몇 달에 걸쳐 연구 과정을 보고하면서 받은 피드백이, 수십 통의 메일과 백여 통이 넘는 메시지를 보냈던 그 과정의 결과가, 고작 세 마디 말이라니.
그 이후로부턴, 모든 것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나의 중심을 더욱 다 잡았던 계기가 되었다.
노력이 기본이었던 마음은 독기가 생기고, 자유로운 학습을 꿈꾸던 마음엔 뾰족함이 자리 잡게 되었다. 주체성과 독립심은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교수가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졸업이 확정되던 때에 4학기 2년 과정에 정확히 2년에 맞춰 졸업한 것뿐인데도 특이 케이스가 되어 있더라. 왜냐하면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지도교수의 도움은커녕 무관심으로 점철된 환경에서, 제시간에 맞춰서 졸업한 학생이 지금까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 기준으로 나 이전에 졸업한 사람을 찾으려면 몇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라고 했으니.)
그러니 나에게 어떤 조언을 주거나, 특히 연구와 관련해서는 도움을 주고받을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심리학과 상담 및 임상 전공에서는 연구는 기피되는 분야라고 했다. 그 누구도 연구에 흥미를 갖거나, 연구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주로 자격증 취득이나 졸업에만 관심이 있지, 연구는 그저 졸업을 위한 관문 같은 것으로만 여기는 게 관행이었다.
오히려 내가 특이한 경우였다. 상담은 물론, 연구 자체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려고 애쓰고, 내가 해보고 싶은 연구 분야가 분명한, 상담과 연구를 연결 짓고자 노력하는 경우가, 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주변에 나의 동기나, 의미에 대해서 말하고 나면 되돌아오는 말은 "그래 너라도 그렇게 공부하면 좋겠다.", "좋은 선례가 되겠다.", "네가 잘 배워서 우리한테 전해주면 되겠다." 등 다들 그저 좋은 목표이자 길이라고 평가는 하면서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람은 없었다.
공부하고 배워가면서 정말 자신이 궁금하고, 이해하고, 더 알아보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는데. 항상 매 순간 무엇을 배울 때 궁금한 것이 많아지고, 묻고 싶은 것은 깊어지는데, 그에 대해서 다른 문화나 조건에선 어떤 양상일지, 그것이 다시 심리치료에 주는 영향은 무엇인지...
아무에게도 그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자격증, 수료증, 졸업, 학회 도장, 취업, 연봉 등 그게 전부였다.
지금은 이미 지나온 석사 과정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아득한 시간이었다. 졸업 후에도 학술지 투고와 게재를 하는 모든 과정을 혼자서 묻고 물어, 찾고 찾아, 시도하고 부딪쳐가면서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우고 정립해 갔다.
나는 이게 익숙해졌고, 이 고독함과 외로움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한 가지 여전히 변치 않았던 것은, 계속해서 전문성을 쌓고 성장하고자 하는 자아실현경향성이었다. 인간중심접근에서 모든 개인은 저마다 자기 자신만의 실현 경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따라가면 적응적이고 성장하는 방향으로 개인을 이끌어 준다고 설명한다.
내가 지금까지도 매 순간 확인하며, 나만의 배움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원동력은 바로, 나의 자아실현경향성이었다. 그리고 심리치료를 하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의미 있는 순간들이었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