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_석사 앞에선 군림, 교수 앞에선 굽실대는 한국 박사 과정생들
지금도 그때를 떠올려보면 그랬다. 한국 대학원은 입학이 확정되면,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연구실마다 관행적으로 반복되는 모임이나 자리가 마련된다. 특히 이는 석사 과정이 가장 심하다. 대학원마다 고수하는 전통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들어갔던 대학원은 내가 석사과정에서 겪었던 것보다 지켜야 할 것, 수행해야 할 것 등 정말 많았다.
예를 들면, 그중 하나가 심리학과 전공 전체가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통계 스터디가 그랬다. 매 학기 시작 전, 통계 스터디는 4개 과정이 열린다. 난이도와 깊이에 따라 번호가 붙고 입학 전 약 한 달간 모든 석사 과정생들이 의무로 참여해야 한다. 석사 중간학기 학생들이 통계 교육을 진행하고, 이전에 이를 맡았던 고 학기는 그들을 노하우를 전수하고 코치해 준다. 그리고 박사과정생이 각 과정에 한 명씩 배정이 되어 그들을 서포트한다. 이렇게만 들으면, 정말 학구적이고 의미 있는 자리로 여겨진다. (실은 그나마 통계 시간은 유익한 활동이다.)
처음 이 관행에 대해 들었을 때, 난이도나 들어가는 품이 상당해서 놀람과 경외로움을 같이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왜냐하면 해당 스터디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상당히 깊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 과정은 무려 구조방정식까지 다뤘기 때문이다.
학구열이 높은 나의 입장에서는 '참 좋은 제도'라고 여겼으나, 지금 다시 돌아보면 막 입학한 석사과정생들에게는 부담스럽고, 학기 간 위계, 특히 박사와 석사 간 위계를 공고하게 만드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무늬만 박사를 거기에 앉혀놓은 것이 그랬다.
*소소한 기억:
내가 있던 석사 대학원은, 석사와 박사의 접점이 거의 없었다. 그때는 내가 경험한 처음이었기에 다른 대학원도 그렇겠거니 했다. 전체 박사 졸업생이 딱 2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석사들과 나이도 크게 차이 나고 가정과 자녀도 갖고 있었기에, 20대 석사생이었던 나에겐 공통점은 물론 접점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영향력은 미미했고, 딱히 정서적 유대도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다른 대학원으로 박사과정에 들어온 나에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석사생들은 박사생들에게 매우 깍듯하게 태도를 다듬었고, 과하다고 여겨질 만큼의 어려워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 이유에 대해선 이후 다른 박사생들의 행동을 보고 깊이 깨달았다. 내가 입학했을 당시 이미 입학해 있었던, 그리고 수료한 지 오래된 박사들이 너무도 많았다. 내가 첫 학기를 시작할 때 수료하지 않은 재학 중 박사는 최소 7명 이상이었고, 이미 수료했으나 졸업하지 못한 학생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들의 나이는 저마다 달랐는데, 최소 30대 후반에서 40대 이상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들 중 소수를 제외하곤 석사들에게 반말로 "00아, 누구누구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본인들이 해야 하는 것임에도 귀찮거나 자잘하다고 여겨지는 일에 대해 "00이가 정리하면 좋겠는데? 그게 낫지 않을까?"식으로 시키고 본인은 빠져나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리고 본인들은 편하고 있어 보이는 일만 차지했다. 그때 박사생들의 말투와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숨이 막히고 역한 느낌이 가득했다.
실은 알고 싶지 않다. 끔찍한 경험은 안 할수록 좋으니.
공대 대학원 생활을 담은 웹툰을 본 적이 있는데, "와.. 이렇게나 열악하고 위계적, 비인간적이라고?!" 놀랐었다. 그런 대학원 생활은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끔찍하다고 느꼈다. 대학원생의 삶이 열악하다는 것은 대한민국 누구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심리학 특히 상담 전공은 없을 거라고 여겼다. 적어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그런 열악함은 닮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 교수와의 불합리한 착취 경험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최소한 학생들 간 위계는 매우 덜할 거라고 느꼈다. 그건 나의 석사 과정에서 어느 정도 증명되기도 했어서 그랬다.
석사과정에서 겪은 교수와의 끔찍한 경험을 뒤로하면서도, 학생들 간 권위와 위계는 거의 없었다. 당연히 학기 간 알려주고 이끌어주는 과정에서 생기는 경험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내가 있었던 석사과정 대학원에서는 학생들 간 위계, 의무 등은 거의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앞서 언급한 대로 박사생이 없다 싶었던 대학원이라 그랬을까 싶다. 위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대상이 없으면 위계는 존재하지 않는 게 당연하니까.
*소소한 기억:
박사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박사생들이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석사생은 괄시하고 교수 앞에선 딸랑이는데 혈안인 박사생들. 그들 중에 특히 같이 붙어 다니며 쌍으로 위계를 부리는 삼인방(E, Y, H)이 있었다. 항상 그들이 보이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 셋의 기본적인 태도는 거만했다. 뭔가 석사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그 분위기가 있었는데, 딱히 그리 알고 있는 것에서나 경험에서 그 정도 수준은 아님에도 그들은 마치 그들이 뭔가를 더 많이 알고, 역량이 뛰어난 것처럼 말하곤 했다. 그 말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가진 특성을 발휘해서 본인들의 밑 전을 드러내곤 했다. 특히 가장 우습다고 느낀 건, 약강 강약의 태도를 볼 때였다.
지금도 너무 많은 장면과 경험이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박사생들의 있지도 않은 위계를 부리고, 실제론 별 볼 일 없는 모습에 관해서는 하나씩 풀어갈 예정이다. 그들이 보여준 위선과 같잖은 역량은 한국 심리학 대학원에서 사라져야 하는 관례라고 더욱 느끼게 만들었다.
이전에 프롤로그에서 같은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현상에 대해서 말했었다. 처음에는 그 현상이 의미가 있다고 여겼으나, 내가 직접 경험하면서 학사-석사-박사로 이어지는 관례를 가진 대학원일수록 위계적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그들을 보면서 더욱 하게 되었다.
내가 있었던 대학원도 그랬다. 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석사에 진학하고, 석사 때 지도교수에게 박사로 들어갔다.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지금도 여전하다.
상담 전공 교수는 두 명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나의 지도교수 H이고, 다른 한 명은 그보다 오래 대학에서 자리를 잡아온 원로 교수 C이다. 그래서 예전에 석사과정에 진학해서 졸업한 학생들(지금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은 C 교수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석사를 졸업한 뒤, 다시 박사에 들어왔을 땐 신입 교수 H가 합류하면서 현재의 2인 체제가 되었다. 여기에도 정말 웃긴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직접 들은 C교수 아래로 들어간 박사생 중 하나의 진심은 그랬다. 실제론 교수 H의 연구실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후 혹시라도 불 이익을 받게 되는 건 아닐지, 석사 지도교수 아래로 박사를 가는 게 관례니까 등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교수가 아닌 다른 교수에게 지원한 경우였다.
또 다른 박사생은, 석사 교수가 이미 안면이 있으니까 박사 지원 합격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다. 다른 대학원을 지원하는 건 탈락의 위험(?)이 있기에 안전이 보장된(?) 동 대학원으로 진학한다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도 나는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그들의 선택이 정말 안타까웠다. 자신의 학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도, 하등 쓸모없는 이유로 들렸다. 겨우 그런 이유로 자신이 정말 배우고 싶은 교육자를 포기하고, 자신이 성장할 수 기회를 포기하는 그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석사를 졸업한 그들이 다시 한번 같은 대학원, 같은 교수 아래로 들어오는 그 이유 들 중에는 단 하나도, 학구적이고 자신의 성장을 위한 내용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들었던 수많은 이유들 안에는 없었다.
그리고 더욱 최악은, 앞서 언급한 같은 대학원에 몸담으면서 위계를 부리는, 있지도 않은 권위를 부리는 박사생들이 만드는 대학원 문화였다. 교수 아래, 박사생들이 만드는 위계는 더욱 비틀어져 있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석사생들에게 미루기.
'내가 너보다 더 잘 알고 잘났어'하는 체면 세우기.
'너네가 뭘 몰라서 그런 거야. 내 말이 맞아'하는 찍어 누르기.
'나 때는 안 그랬어. 진짜 세상 좋아졌네?' 하는 시대착오적 히스테리 부리기.
...
너무도 많이 보고 들은 박사생들의 모습은 내가 대학원에서 기대했던, 서로를 존중하고 성장을 향해 가는 학구적인 분위기와 너무도 달랐다. 너무도 뒤틀렸고, 악취가 진동했다.
한 번은 그들이 저렇게까지 하는 건, 정말 능력이 출중하고 정말 잘난 사람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여보려고 했다. 저들이 저 정도로 행동하는 데는 정말 믿을만한 구석이 있어서겠지 라는 정신승리는 얼마 가지 않았다.
*소소한 기억:
1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박사 과정 역시 뭔가 참여해야 하는 모임이 몇 개 있었는데, 석사 과정만큼 '의무'는 아니었으나, 참여하지 않으면 배제되는 분위기의 모임이 여럿 있었다. 그날은 박사 재학생들 모두가 모이는 식사 자리였다.
나를 포함해서, 그 당시에 타 대학원에서 석사 출신 박사생은 단 2명이었다. 그 외 7명은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에 들어온, 소위 '같은 라인'의 학생들이었다. 그 당시 나는, 여전히 마음에 없는 듣기 좋은 말을 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해야 할 때는 하겠지만, 겨우 같은 박사생들과 만나는데 번지르르한 말을 할 필요는 없는 자리였다. 하지만 나와 같은, 타 대학원 출신 D는 달랐다. 그는 남다른 '사회생활 스킬'을 시전 하며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어휴, 00 선생님 덕분이죠.", "맞아요 그 교수님 수업은 정말 힘들었는데, 00 선생님과 같이 들어서 수월하게 들었어요." 등 진심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칭찬을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전하며, 자신이 시킨 밥은 거의 먹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후 알게 되었지만, D는 지도교수 H와 석사 과정에서 지도를 받은 학생이었다. 즉, 박사과정 대학원 내에서는 기반이 없었으나, 지도교수와의 연줄을 통해 연결된 인물이었다.)
D는 심지어, 기존 박사생들에게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하고, 어떤 교수가 점수를 잘 주고, 어떤 교수의 수업은 어려운지 몸을 낮춰 물으며, 그들의 기분을 처절할 정도로 맞춰가며, 전문성 향상에는 전혀 쓸모없는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게 그의 선택이었다. 그가 저렇게 처절하게 굴어서 얻는 정보는 정말 보잘것없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왜냐하면 어떤 수업이 듣기 좋냐의 기준은 적은 노력으로 좋은 점수를 딸 수 있냐는 거였고, 좋은 교수의 조건은 까다롭게 굴지 않는 과제를 덜 내주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가장 끔찍했던 그 자리의 기억은, 그 8~9명의 박사 과정생들이 '연구'에 대해서 나누는 대화였다. 그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졸업을 위한 연구' 얘기를 하면서 각자의 고충을 토로했다. 본인들이 고민한 건 하나 없는, "그래서 지도교수님이 언제 주제를 주신대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주제를 줘야 졸업하는 건데" 말들이었다. 그들에게 자신의 졸업 연구란 지도교수가 내어주는, 하사하는 무엇이었다. 본인의 고민, 가치, 의미는 전혀 담기지 않은 무엇 말이다.
나는 그 자리 이후로, 졸업하기까지 박사들이 모이는 전체 자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있던 학습 동기도 앗아가는 건 물론이고, 저렇게 보잘것없는 것으로 고민하는 것은 물론, 연구에 있어서는 진정성 담긴 경험도 생각도 없는 그들의 태도와 역량에 없던 정도 떨어졌다.
나보다 한 학기 위였던 박사생 D는, 그 이후로도 기존 박사생들에게 처절한 사회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 들었는데, 처음에는 그에게 들던 의아함과 측은함이 이후에는, 그도 그들과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끼리끼리였구나 싶었다.
즉, 학문적 성장이나 고민은 중요하지 않은, 그저 교수나 기존 학생들에게 팁을 듣고는 과제 같지도 않은 과제를 내주거나, 질이 떨어지는 학점 따기 쉬운 수업만 수강한다던가, 누군가랑 같이 수강해야지만 참여하는, 교수에게 붙어서 교수가 던져주는 주제로 연구 실적을 올리고, 그런 연구를 위한 연구만 반복하고, 자신이 쌓고자 하는 전문성은 저버린 그런 박사 과정 학생.
내가 값비싼 학비를 내고, 수많은 고민을 거쳐서 진중하게 선택한 교육기관에서 마주한 박사 과정 학생들의 모습은 그랬다. 정작 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석사 과정 학생들에게 있는 위계는 다 부리고, 체면을 세우는데 혈안이 된 그들의 모습은 박사과정에 들어선 첫 학기가 시작된 1달 안에 이미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때 깊게 깨달으며, 스스로 다짐을 했다.
이 박사과정은, 고독하고도 치열하겠구나.
그들에게 오염되지 않겠다. 조금이라도.
담대하게 나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가야겠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