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일까? 아님 학생일까?

03_어디서부터 얽히고 문드러져서, 여기까지 이르렀을까

by 로지

교수일까? 아님 학생일까?

03_어디서부터 얽히고 문드러져서, 여기까지 이르렀을까




모든 순간이 싫거나 괴로웠던 건 아니다.

대학원 수업답다고 느낀, 수업도 있었다.



박사과정에 입학한 첫 순간부터 모든 것이 끔찍했던 것은 아니다. 첫 학기에 우연히 듣게 된 수업 하나가 문뜩 떠오른다. 그 수업은 내가 가졌던, 한국 심리학 대학원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게 해 줬던, 유일한 두 개의 수업 중 하나였다.


이 수업에 대한 설명을 하기에 앞서, 내가 다녔던 대학원의 체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일반 대학원(주간에 수업이 열리며, 전일제 학생들로 구성된, 연구에 초점이 맞춰진 대학원), 심리학과 전공 중 상담심리학에 있었다.


일반 대학원의 심리학과에는 여러 전공이 있다. 상담심리학, 임상심리학, 산업 및 조직 심리학,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건강심리학. (현재는 건간심리학이 폐지되고, 측정심리학이 신설되었다.)


이 중에 건강심리학은 내가 들어갔던 학기에 해당 전공을 가르칠 교수가 없어서 폐지되었다. 그래서 그 과정에 들어가 있던 박사과정 학생들은 대거 IT심리학이라는 듣지도 못한 신생 전공으로 옮겨갔다(옮겨가야만 했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 외에도 위 전공생 중에 IT심리학을 옮겨가길 희망하면 전과를 할 수 있는 추새였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갑자기 만들어져서 뭐에 전문성이 있는지도 모르는(확신하건대, 해당 전공생은 IT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을 것이다.), 이상한 변종 전공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며 의아했다. 그리고 그 양상이 나에겐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소소한 기억:

첫 학기 시작을 앞두고 교수 H는 나를 불러서 질문을 하나 했다. "IT심리학이라는 전공이 있는데, 그냥 배우는 내용은 다 같은데 전공 명칭만 다른 그런 전공이 있거든요. 혹시 선생님이 원하면 그 전공으로 옮겨갈 수 있어요. 그 전공으로 가면 학비 전액 면제 포함 여러 혜택이 있어요. 옮겨갈 생각 있어요?"

그 당시 나는 교수 H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좋게만 해석했다. 학생의 주머니 사정도 고려해 주는 마음씨 따뜻한 교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심리학을 제대로 배우고 싶은 나에겐 그 제안은 이상하게만 들렸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당연히 싫지!"라는 의아함은 깊게 남았었다.



지금은 그 제안이 대학원 운영에 정치적인 측면임을 안다. 페이퍼 컴퍼니처럼, 페이퍼 전공을 신설하고 운영하면 이는 대학원과 교수에게 여러모로 사업 및 지원금을 위해서 이득이 된다. 그리고 뿌리가 없는 전공일수록 학생 유치에 애를 먹기 때문에 기존의 학생들에게 세일즈를 하는데, 가장 매력적인 제안은 바로 학비다. 대학원 학비는 한 학기에 약 500만 원에 육박하는데, 전일제로 학교에 묶여 있어야만 하는 학생들에겐 학비면제 (지원)는 너무도 매력적이다. 특히, 딱히 학구적 성장에 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라면 더욱이.


실제로 IT심리학 전공으로 졸업한 박사 전공생들의 학위 연구 논문 중에 IT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주제뿐이었고, 그들이 수업을 듣거나 배운 내용은 융합 전공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 전공의 학구적인 측면은 무엇일까? 그들이 추구하는 교육은 무엇인가? 그 학생들은 이후 그 전공으로 졸업을 했을 때, 어디로 진출하게 될지 너무 궁금했다. 분명한 건 IT 쪽은 아닐 거라는 현실적인 확신이었다. 말만 융합전공이지, 전혀 융합되지 않은 비틀어진 변종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러 심리학 전공이 있기에, 관심이 있다면 타 심리학 전공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은 참 좋게 여겨졌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내가 다른 심리학 전공을 들어볼 수 있겠어?"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컸다. 왜냐하면 나는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분이라는 말이 맞다. 첫 학기에 듣게 된 수업이 바로 사회심리학 수업 중 하나였던, '사회심리학 세미나'였다. 해당 수업은 해외에서 학위를 마치고 들어온 젊은 교수가 맡았다. 가장 끌렸던 이유 중 하나는 커리큘럼이었는데, 수강신청 기간에 읽고 선택할 수 있는 수업계획서였다. 그 내용은 그랬다.


"한 학기 내내 '창의력'이라는 주제로 진행이 될 것이며, 매주 관련 영어논문 3~5편을 읽고 발표함으로써, 해당 키워드에 대한 연구를 깊이 있게 학습한다. 이후 최종 과제로 각자가 창의력과 관련한 연구를 설계하고 이를 연구계획으로 발표한다"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창의력에 크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연구적 역량을 배우고 습득하는 방식이 너무 좋았다. 실제로 해당 수업에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각 논문을 읽고, 의미 있는 학술적 포인트를 짚어주곤 했는데 그 부분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 보고, 질문해 보며, "아 이런 부분이 이러이러한 연구를 진행할 때는 중요한 거구나"를 습득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일방향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고 느꼈던 건, 교수가 질문을 많이 던진 것도 그랬고 그에 대해 교수의 경험과 지식을 나눠주는 것도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수업이 아니면, 많은 경험을 가진 학자에게서 깊은 통찰을 받을 수 있겠는가? 전반적인 수업이 토의하기에 수월한 분위기로 진행되어서 더욱 좋았다.



"와 정말 내가 원하던 방식인데! 너무 좋다!"라는 생각을 한 학기 내내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함축하면 단순해 보이지만, 다뤄지는 내용과 준비시간은 상당했다. 일단 매주 3~5편의 영어논문을 정독하고 그 내용을 소화해야 하는 것은 물론, 교수가 던지는 질문에 대비할 수 있을 정도로 숙지가 되어 있어야 도움이 됐다. 그러니 논문도 미리 안 읽고 그냥 아무 말 없이 질문도 없이 수업에 앉아 있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수업을 듣는 학생의 수는 상당히 소수였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 화에서 언급한, 한 학기 위 박사 과정생 D는 누군가와 같이 들을 수 있는 수업, 과제가 많이 없고 시험이 전형적이고 쉬운, 즉 노력 없이도 점수받기 쉬운 수업만을 듣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수업은 그의 수강신청에서 당연히 제외되었다.


그 당시에 이 수업을 듣는 사람은 임상심리학 박사과정 1명, 사회심리학 석사과정 2명, 인지심리학 석사과정 2명, 상담심리학 석사과정 3명, 그리고 나 이렇게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일한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한 박사과정생은 석사 때 들었던 수업은 들을 수 없기에 이를 제외하면 박사과정 때 들을 수 있는 수업이 매우, 정말 매우 희박하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그때도 지금도 대학원에서 열리는 수업은 같은 명칭으로 몇 년 채 우려먹듯 전공당 1개 또는 2개 정도만 열리기 때문에 한 학기에 필수로 3개씩 들어야 하는 학생들에겐 '어쩌라는 거야?! 들을 수 있는 게 없는데?'라는 마음을 들게 한다.


동 대학원 박사 학생은 이미 석사 때 매 학기 똑같이 열리는 한두 개의 수업을 들었기에 한 학기에 심하면 3개 모두 또는 최소 2개 이상은 상담 전공 수업이 아닌 수업을 들어야 하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난다. 모든 동 대학원 학생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건 내가 있었던 대학원은 연구와 관련된 수업은 단 하나도 없었다.


대학원의 입시 요강을 보면 화려한 라인업의 심리학 수업이 줄지어서 나열되어 있기에, 입학하면 저 과목들 중에 선택해야 하는 행복함을 떠올릴 수 있지만, 현실은 똑같은 고리타분한 수업 1~2개만 계속 찍어내는 열악한 교육이었다.


나는 타 대학원 출신 박사생이었기에 그나마 덜 고역이었으나, 대부분의 동 대학원 출신 박사과정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듣고 싶지 않은 수업을 들어야 했다.


(앞서 언급한, 동 대학원 출신이 아닌 박사 과정생 D는, 일반대학원 심리학 수업을 들을 수 있음에도, 과제와 시험, 수업 내용이 어렵다는 핑계로 바로 같은 대학의 교육 대학원에서 열리는 수업을 더 자주 듣곤 했다. 교육 대학원의 수업은 실제로 일반대학원 수업에 비하면 연구적으로 거리가 멀고, 요구하는 과제의 양은 적고 시험의 난이도는 낮았다.)


그래서 동기가 낮은 것은 물론,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했던 것일까?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참여했던 것일까? 이후엔 도대체 동 대학원 출신(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졸업한) 박사생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대학원에 들어온 건가? 하는 의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위 규정은 옛날부터 있었기에 그들은 모를 수 없고, 십 년 넘게 같은 수업만 복사 붙여 넣기 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말 배우고 싶어서 들어온 사람들일까? 그들은 그저 졸업장이라는 종잇장 하나 얻는 것이 목표일까? 뭘 보고 이 대학원에 들어온 것일까?


연구에도 관심이 없고, 수업에도 관심이 없고, 학습에도 관심이 없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머리는 어지럽고, 속에서 역한 기분까지 들었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심리학 전공 중에 (그러한) 박사과정 학생이 가장 많은 전공은 바로, '상담심리학'이었다.


다른 심리학 전공은 박사 재학생 및 수료생이 많아야 3~5명 이내라고 한다면, 상담전공은 재학생은 7~8명에, 수료생은 20명이 진작 넘어 셀 수 없고, 졸업생은 극소수였다.







지금도 여전히 돌아보면, 의문 투성이다. 어떤 것도 제대로 된 답을 듣지도 찾지도 못했다.


도대체 이 뒤틀린 교육과 문드러진 학습 태도는, 누구의 탓일까?

교수일까? 학생일까?



누가 시작이고 누가 끝인지 뭐가 중요하겠는가. 확실한 사실은 대학원도, 교수도, 학생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먼저였겠는가. 지금은 그 모두가 이 끔찍한 흐름에 기여하고 있다.


대학원은 진정한 학습과 성장에 필요한 새롭고 필수적인 교육을 여는데 회의적이고 거부적이며, 교수는 실적 채우기와 체면 지키기에 혈안 되어 학생보다 자신을 위해 안전 지향으로 가라앉은 지 이미 오래이고, 학생은 입을 다물고 그저 누가 먹여주길 바라며 눈과 귀를 가리고 누구보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누구의 몫이 더 크다 적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미 섞이고 섞여, 썩히고 썩어, 뒤틀리고 고약한 악취는 가득해졌다. 그리고 어떤 이도 이러한 환경을 바꾸고자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그 안에 스며들어 안주하기에 바쁘다. 평가, 실적, 졸업장 등을 쫓기에 바쁘다.


상황 탓만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주체적인 존재이다.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에서 시작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지금도 수많은 대학원, 교수들, 학생들 모두 저마다의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건 그들의 책임이다. 그들의 선택은 그들이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보여준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무엇을 탓할 수 없다. 누구를 탓할 수 없다.



정작 정말 중요하고, 잊지 말아야 하는, 어느 것보다 추구되어야 하는 본질의 가치는 도대체 누가, 어디서, 어떻게 추구할 수 있단 말인가?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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