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민물 습지에서 관찰
흰꼬리좀도요 Temminck's Stint / Calidris temminckii (Leisler, 1812) 3등급
3등급이라는게 그렇게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새라는 뜻이다. 간간히 드문드문 보인다.
번식깃은 주로 봄에 보인다. 그러나 새를 본 횟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녀석들이 들어오는 시기와 섬 탐조가 시작되는 시기가 맞물린다. 결국 새를 봐야하는 사람이 섬에 들어가버리니 바닷가에 있는 녀석을 볼 기회가 적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번식깃 사진이 별로 많지는 않다. 겨우 고른 사진이 2008년 사진이라니... 그것도 비번식깃에서 번식깃으로 바뀌는... 번식깃이 살짝 들어간 녀석이다.
어깨깃에 검은 반점과 그 사이에 보이는 적갈색 반점이 번식깃이라는 증거다. 물론 완전한 번식깃의 모습은 아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더 검고 붉은 색이 많아질 것이다. 그래도 봄 도요는 구별이 쉽다. 어린새가 없으니까. 나중에 좀 더 잘 익은 번식깃을 찍어야겠다.
가을 도요는 만만치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린새 때문이다. 보통 우리나라 가을에 들어오는 도요는 어린새, 어린새에서 1회 겨울깃으로 바뀌는 새, 어른새 번식깃, 어른새 비번식깃, 어른새 번식깃에서 비번식깃으로 바뀌는 새가 들어온다. 시기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생물이 하는 일이라 구체적인 일관성은 없다. 특히 7월 말이나 8월 초에는 어린새가 드물지만 8월 중순이나 말이 되면 모든 새들이 다 섞여서 관찰된다. 더 웃긴 것은 도요의 이동 경로가 다른 경우다. 봄에 우리나라를 거쳐 북으로 올라갈 때는 우리나라를 거쳐 올라가는데 가을에 남쪽으로 내려갈 때는 우리나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중국쪽으로 내려가는 녀석들이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이렇게 되면 보일 것 같은 새가 매우 귀해진다. 아무튼 새는 만만한 동물이 아니다.
이 녀석은 흰꼬리좀도요 어린새다. 그나마 흰꼬리좀도요는 연령을 구별하기 쉬운 새 중에 하나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어른새 번식깃과 어린새가 매우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흰꼬리좀도요는 어린새의 특징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아주 착한 새다. 흰꼬리좀도요 어린새의 특징은 어깨깃에 있는 검은색 비늘무늬다. 이 무늬가 보이면 무조건 어린새이거나 1회 겨울깃으로 봐도 무방하다. 또한 대부분의 어린 도요에서 나타나는 날개덮깃의 흰색 비늘 무늬도 예외없이 나타난다.
좀 더 가까이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앞의 사진 보다 더 어린새로 추정된다. 예의 검은 비늘 무늬와 흰 비늘 무늬가 명확하게 보이고 있다. 새의 연령을 확인하려면 새를 가까이 찍는 것이 좋다. 너무 작게 찍으면 깃털의 색이나 무늬 혹은 마모 정도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날 찍힌 비번식깃이다. 어린새에서 나타나는 검은색, 흰색 비늘 무늬가 보이지 않는다. 좀 더 가까이 찍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사진이다. 찾아 보니 좀 더 가까이 찍은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은 발도 보인다.
발의 색은 흰꼬리좀도요라는 종을 구별하는데 중요한 동정키는 맞지만 흰꼬리좀도요의 연령을 구별하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발색이 모두 똑 같기 때문이다.
위에 두마리는 비번식깃이고 아래 한마리는 어린새를 지나 1회 겨울깃으로 바뀌는 새로 보인다. 이렇게 연령이 다른 녀석들이 함께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보통은 어른새 먼저 어린새는 나중에 오는데 말이다. 어미가 어린새 손 잡고 같이 내려오는 경우는 가족 단위로 찾아오는 기러기나 두루미에서나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도요는 번식지에서 새끼가 이소를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미는 남쪽으로 내려온다. 당연히 새끼는 놔두고 내려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7월 말이나 8월 초에 보이는 대부분의 도요는 어른새들이다. 어린새는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나 볼 수 있다.
대단히 감성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어미가 새끼를 놔두고 올 수 있느냐고... 과학적인 입장에서 이런 주장은 새를 의인화 하는 전형적인 '베이컨의 종족의 우상'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비슷한 감수성으로 답을 하자면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어미는 눈물을 머금고 새끼를 놔두고 내려오는 것이다. 번식지에 새끼 말고 어미까지 있으면 먹이가 부족할 테니까. 새끼에게 먹이를 양보하고 새끼를 키우느라 힘들었을 어미는 새끼를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물론 이런 식의 주장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 그렇게 말을 하니 이렇게 대답할 뿐이다. 감성은 절대 일방적이지 않다. 보통 상대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글을 보고 정말 이런 식으로 교육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과학적으로는 알 수 없다.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이 사진에는 연령이 없다. 모르기 때문이다. 이 사진만 봐서는 이 녀석의 연령을 알 수가 없다. 그냥 날개를 들고 날아오르는 멋진(?) 사진일 뿐이다.
새의 연령을 알기 위한 촬영이라면 다른 일반적인 새사진과 많이 다르다. 연령을 알 수 있는 부위를 찍어야 한다. 그 부위의 사진이 없으면 연령을 알 수 없다. 아무튼 뭐 하나 쉬운 일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