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조는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취미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 시작이 외국인인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탐조의 시작 역시 기원을 찾아보면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를 찾아 온 일본 생물학자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경쟁하듯 채집하고 논문을 썼다.
그것을 탐조의 시작이라고 부르기는 싫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조류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군에서도 비슷하다. 당시 일본인들은 정확한 연구 없이 일종의 호승심으로 연구를 했고 그 결과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논문이 여러 분야에서 만들어졌다. 논문은 국제 학계에 발표가 되었고 그 논문이 지금까지 외국의 조류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사례가 울릉도에서 관찰되는 새들 앞에 붙은 울도 무슨새와 제주도에서 관찰되는 제주 무슨새들이다. 과연 이들이 아종으로 분류되기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연구가 필요하지만, 아직 국내의 연구 수준이나 열의가 그것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하다. 아무튼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논문을 근거로 IOC나 코넬대학에서는 울릉도와 제주도에 있는 새들을 여전히 아종으로 등록하고 있다.
광복 후 우리나라 조류학계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열악한 상황이었고 몇몇 소수의 연구자들만이 새를 관찰했다. 일부 사진가나 환경단체에서 제한적으로 새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그 역시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다.
탐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부터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는 관찰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이전에 새를 관찰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필드스코프라는 망원경에 의존하여 새를 봤다. 소수의 사람들이 새를 촬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필름카메라와 고가의 대구경 렌즈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적이지 못했다.
2000년대 이전의 탐조를 대표하는 유명한 책이 있다. 미국의 데이비드 앨런 시블리(David Allen Sibley)가 쓴 Sibley's Birding Basics이란 책이다. 이 책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출판되지 않았지만 외국의 새 보는 사람들에겐 가장 대표적인 필독서 중 하나다.
이 책의 핵심은 새를 관찰하는 방법과 구별하는 요령 및 오류를 바로잡는 방법 등 탐조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오직 필드스코프를 사용하여 관찰에 의존하는 방법을 기준으로 써졌다는 한계가 있다. 사람의 눈이나 기억에 의존한 관찰은 한계가 있을 수 있으며 현재의 탐조 상황과 많은 차이가 있다.
Sibley's Birding Basics에서 주장하는 탐조는 어쩌면 나라별 혹은 인종별 특징과 연결된다.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서구의 문화에서 탐조 역시 비슷한 문화적 특징을 보인다.
예를 들면, 서구인들은 비교적 여러 사람과 함께 탐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탐조 여행도 여럿이 함께 가지 않는다. 또 자신이 본 새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서로 공유하지 않는다. 이는 외국의 열악한 IT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컴퓨터나 디지털카메라 같은 복잡한 전자 기기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사진을 찍으면 큰 부담 없이 편집해서 다양한 사이트에 올리고 공유라는 이름으로 자랑을 한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IT 환경이 열악하여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기가 편하지 않다. 그래도 최근 들어 외국의 IT환경이 매우 느리게 호전되면서 사진이 올라오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준은 못된다.
이런 복잡한 문제로 외국 사람들은 필드스코프로 새를 관찰하는 것에 익숙해 있고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만들어진 책이 Sibley's Birding Basics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 사람들의 모든 행동에 경외심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외국의 이런 탐조 문화가 선진국의 탐조 문화라고 평가하고 우리도 이렇게 새를 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새뿐만 아니라 사람도 잘 모르는 평가이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많은 외국인들 중에 자신의 탐조 습관이 더 좋고 선진 탐조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오히려 내게 사진을 잘 찍어서 좋겠다는 부러움 섞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외국 선호 사상이나 탐조의 사대주의가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탐조 특징 중 하나는 궁금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자기가 본 새가 어떤 새인지 궁금하면 서슴없이 질문과 토론의 장을 만든다. 오직 관찰만으로 새를 본 경우 궁금한 점이 생겼을 때 이를 해소하는 방법은 기억이 전부다.
그러나 사진은 그 새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더구나 요즘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비도 좋아졌고 가격도 많이 내려갔으며 무게도 가벼워졌다. 필드스코프만으로 새를 관찰하는 사람이 새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현장에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다.
본인의 기억을 근거로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그런 질문을 받지 않는다. 장님이 코끼리 더듬는 것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필드스코프로 새를 본 사람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그만큼 새를 보는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고 불확실한 기억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0년도 초기에는 디지스코핑이라고 해서 필드스코프에 휴대용카메라를 장착하여 사진을 찍는 기술이 생겨났다. 이 기술은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고 기능도 많이 발전했다. 필드스코프로 새를 보는 사람 중에 새가 궁금하면 디지스코핑이라도 할 수 있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열의 이전에 질문을 받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 노력도 하지 않고 질문을 하는 것은 새를 몰라도 너무 모른 처사다.
시간이 지나면서 렌즈를 바꿀 수 있는 DSLR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과거 필름으로 사진을 찍을 때 보다는 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갔지만, 문제는 대구경 렌즈의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에 대중화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새를 전문적으로 보려는 사람들은 거금을 주고 대구경 렌즈를 샀다.
이 시기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새사진이 모이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구경렌즈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4Kg 이상의 엄청난 무게도 큰 문제였다. 여기에 삼각대까지 포함되면 전체 무게는 10Kg을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무게는 도저히 여자는 다룰 수 없는 무게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여자 중에 이런 장비를 가지고 새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학 기술은 급격히 발전하였고 2015년에는 3Kg 초반의 150-600mm렌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 무게라면 삼각대 없이도 촬영이 가능했기 때문에 장비의 전체 무게는 5Kg을 넘지 않았고 가격 또한 저렴했다. 대구경 단렌즈의 가격이 1,000만원이 넘는 상황에서 2~300만 원대 150-600mm 렌즈는 탐조 생활의 혁명이었다.
그리고 무게도 가벼워져 여자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많은 여자들이 탐조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일명 똑딱이라고 부르는 렌즈 일체형 디지털카메라 중에도 600mm 렌즈가 탑재되면서 더 가벼워진 무게와 가격으로 누구나 새를 볼 수 있는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
새는 생물 중에 가장 촬영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그리고 가장 복잡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새를 찍고 안 찍는 것은 자유지만 단순히 즐기는 차원을 넘어 새가 궁금하다면 반드시 새를 찍어야 한다. 또한 새를 어떻게 찍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새를 알기 위해선 찍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