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아웃 - 인터뷰하기 전에 내가 바라본 친구
"포로리야" "어이, 포로리"
대학 시절 박사업가가 나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낼 때에 저렇게 부르곤 했다. 친오빠가 동생을 챙겨주듯 언제나 편안함을 제공해주는 박사업가였다.
박사업가와 나는 9년 전 토론 학회에서 처음 만났다. 박사업가는 나보다 한 기수 위의 학회장이었다. 박사업가의 리더십은 어딘가 조용했다. 편안함으로 사람들에게 거리낌을 없애주는, 그런 성격에 가까웠다. 만인이 쉽게 다가가서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는. 그래서 나도 자꾸 치댄 것 같다. 그렇게 박사업가와 친해졌다.
박사업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우리 학회는 기가 세고 정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강한 주장이 등장했고, 패가 나뉘었고, 말로써 다투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했다. 그러한 문제가 공론화된 적도 많았다. 박사업가는 이를 조용한 리더십으로 중재하곤 했는데, 이마저도 비판의 대상이 되어, 학회 정식 회의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 힘들어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탓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본인의 스타일을 바꾸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박사업가가 떠오른다.
박사업가에게는 고마운 감정이 많다. 나는 토론을 망치고 오는 날이면 회식 뒷풀이에서 박사업가를 앞에 앉혀놓고 하소연을 하곤 했다. 박사업가는 냉철한 피드백을 주면서도 나를 달래주곤 했다. 술 번개도 정말 많이 했다. 박사업가와 내가 신촌에서 자취를 했기에 나는 틈만 나면 박사업가를 불렀다. 서문의 맥주집에 가서 먹태를 시켜놓고 조잘대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혼자서 눈물을 글썽이는 날들도 있었는데-그땐 정말 왜 그렇게 감성적이었는지 모르겠다-박사업가는 그 모든 과정을 오빠가 동생을 '우쭈쭈'해주듯 받아줬던 것 같다.
박사업가는 그정도의 친밀감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말 박사업가를 친오빠처럼 가깝게 생각했던 것 같다. 박사업가가 나를 포로리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박사업가에게 언제나 살짝 어딘가 돌아버린 장난을 치고 "나 때릴꼬야?"라는 포로리 대사를 치곤 했다. 그러면 박사업가가 어이없어 하면서 너털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한동안 대학생 때는 박사업가는 보노보노, 나는 포로리로 지냈던 것 같다.
박사업가와 내가 싸웠던 기억도 난다. 우리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페미니즘은 커다란 화제였고, 술자리에서도 이것이 주제가 되는 날이 많았다. 한번은 박사업가와 학회 친구, 내가 성폭력과 남성의 역할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하게 되었다. 박사업가가 무심코 뱉은 악의 없는 말에, 나는 '실망했다'는 말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이후로 반년 정도 보지 않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러한 사회적인 주제들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더 크다. 결국 사회정치적 이론들은 주변 사람들과 잘 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 소중한 주변 사람들과 결국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큰 인생의 목표가 되고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박사업가와 같은 인연을 오래오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박사업가와 나는 학교 앞의 라멘집에 가곤 했다. 그곳의 사장님은 일본에서 라멘 기술을 배워온 사람이었다. 좀처럼 자기 얘기는 하지 않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던 박사업가가 그날은 눈빛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나도 사장님처럼 무언가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 마음이 어엿뻐서 나는 이후로 박사업가를 만나는 약속을 잡을 때면, 꼭 그 라멘집에서 만나곤 했다.
그러더니 졸업 이후 박사업가는 안정적인 대기업은 고사하고, 자그마한 스타트업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종종 연락해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해달라거나, 후기를 써달라고 했다. 나는 언제나 소비를 하며 뽐내는 사람보다 생산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을 어딘가 멋지다고 생각해왔다. 예컨대 영화 비평을 하는 것보다 창작을 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처럼. 그래서 생산 능력을 키워가는 박사업가의 모습을 바라보며 기특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던 박사업가가 1년 동안 잠수 아닌 잠수 기간을 타더니 처음으로 자기 브랜드를 런칭했다.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상품인데, 상품 설명만 봐도 얼마나 고생했는지 눈에 훤히 보인다. 런칭한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실적은 아직까지 순조로운 듯 하다. 손익분기점도 넘었다.
항상 나를 달래주고 응원해줬던 박사업가였기에, 이제는 내가 그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업은 아마 여타 직장인의 월급쟁이 삶보다 훨씬 복잡한 고난의 과정을 수반할 것이다. 그래서 박사업가가 사업을 이어가도록, 의지를 불태워줄 수 있도록, 그의 삶을 돌아보는 인터뷰를 해보고자 한다.
박사업가의 상품은 여기서 살 수 있다: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385164?srsltid=AfmBOooew0PHKCGg3Js7sdAS4c4V9CCfmjtOGz0f_xCOFlVjvKQbcq3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