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작자에게 교육이란 (3)

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한 이창작자. 그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이해하고, 개개인의 주체성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오래 고민해왔다. 그리고 그 고민을 교육이라는 방식으로 풀어왔다. 그 여정은 어땠을까.


지금 일하고 있는 교육 섹터에서 일하겠다고 다짐한 계기는 뭐야?

지금 사귀고 있는 애인이 그때는 친구였는데, 나한테 디자인 씽킹을 기반으로 문제 해결을 하는 프로젝트 학회를 알려줬어. 디자인 엔지니어링·경영 매니지먼트·인류학 관점을 섞어서 혁신을 만들어보자는 거였지.


너가 좋아하는 요소가 다 들어있네.

(웃음) 응. 여기서 유저 경험(UX), 디자인 씽킹, 유저 리서치 같은 개념들을 처음 제대로 접했어. “아, 나는 현장에서 이런 리서치를 하면서 혁신을 도모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정도의 결론을 그때 처음 내렸던 것 같아. 그러던 중에 학회 선배의 소개로 UX 에이전시에 들어갔어. 에이전시니까 돈이 안 되는 영역은 잘 안 하거든. 그런데도 탑티어 에이전시라 사회공헌적이면서 실용적인 어린이 프로젝트를 시도한 거야. 그렇지만 결국엔 수익이 안 나서 팀이 없어졌어. 그때 UX를 직업으로 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지속할 수 없겠다고 느꼈어.

그러다가 4학년 때 하자센터를 찾게 됐어. 아이들의 경험을 고민해서 그걸 프로젝트나 교육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어. 마침 소셜벤처들도 교육·청소년 키워드로 꽤 있었고, 후원 구조도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교육 쪽으로 가보자”로 귀결됐어. UX라는 현장 감각을 가져가되, 대안적인 사회 흐름을 만들고, 현장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싶었어. 누군가가 자기 삶을 스스로 기획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지.


너가 어린이나 청소년들과 일을 많이 했잖아. 이유가 있어? 다양한 타깃군이 있잖아.

돌아보면 나는 교육 섹터에서 다양한 측면을 경험했어. 비영리 사단법인, 기업 CSR 성격의 재단, 주식회사까지 다양한 조직 형태도 겪어봤고, 대학생·청소년·교육자까지 다양한 대상을 만나봤어. 진로 탐색을 돕는 교육, 자기 탐구를 돕는 프로그램, 기초학습이나 특수교육 영역까지 경험해보고 있지.

내가 이중에서도 어린이·청소년에 더욱 애정을 쏟는 이유를 고민하게 되었어. 내가 중고등학교 때 되게 다양한 친구들이랑 교류했잖아. 내 친한 친구는 미용을 전공했고, 고등학교 때 사귀던 애인도 대학을 안 갔거든. 이외에도 공부 안 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학교에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애들도 봤고. 그런 걸 보면서 계속 들었던 질문이 있었던 것 같아.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 그리고 그 시기에 자기 확신을 어떻게 갖느냐에 대한 질문.

하자센터를 다니면서 ‘내가 어릴 적에 대안교육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됐어. 사소하지만 논술쌤이 “그럼 사회학과 가라”라고 했던 그 한마디가 나한테는 삶의 지평을 열어줬잖아. 대학교만 가도 학회든 동아리든 선배든 검색이든, 기회를 탐색할 수 있는 자원이 확 늘어나는데 중고등학교 때는 그게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더라. 그때 이미 자기 잠재력을 의심하고 시간을 낭비하면, 그 이후에 무기력해지거나 자기애가 진짜 많이 줄어드는 것 같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중고등학생들한테 마음이 갔던 것 같아.

물론 대학생도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 요즘은 청소년의 범위를 스물네 살까지 보기도 하고, 뇌과학적으로도 도덕이나 윤리감, 사고의 유연성 같은 건 20대 후반까지 계속 형성된다고 하잖아. 나도 대학교 1, 2학년 때 많이 변했고. 그렇지만 내가 잠깐 있던 교육 스타트업에서 중고등학생들을 만났을 때 느꼈던 그 에너지랑 비교하면 좀 아쉬움이 남았던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청소년들을 타깃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던 것 같아.

내가 청소년들한테 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주변 어른들이 말하는 답 말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경험이야. 내가 뭘 궁금해하는지, 어디에 호기심이 생기는지 탐구하고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청소년기에 조금이라도 가져봤으면 좋겠어. 이전 회사에서는 그런 고민을 정말 많이 했고 실제로 청소년들이랑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어. 그래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방학 때 매주 프로그램에 나오던 한 청소년이 어느 날 부모님한테 “나 이제 학원 안 다닐래”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야. 공부 안 하고 놀겠다는 게 아니라, “나는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거잖아. 그게 너무 좋았어. 처음으로 자기 삶에 의문을 가져본 거고, 그런 말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게 너무 기특했고 멋있었지.

나는 그런 순간들이 한국 사회에 너무 적다고 느껴. 물론 20대에도 심어줄 수 있지만, 10대 때부터 그런 경험을 하면 내 안에 작은 증거들이 쌓이잖아. “아, 나는 이렇게 생각해봤던 적이 있어”, “나는 이런 선택도 해봤어” 같은 것들. 그게 있으면 20대 때 훨씬 과감해질 수 있고 남들 눈치도 덜 보게 될 것 같은데,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 시작하면 뭔가 조금 늦은 감이 들 때가 있어. 나는 인류학과라는 특수한 환경에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래서 아주 작은 차원이라도, 아주 이른 시기부터 그런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 그게 요즘 내가 느끼는 문제의식이랑도 맞닿아 있고, 나한테는 여전히 너무 중요한 일처럼 느껴져.

최근에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 〈귀를 기울이면〉을 봤어. 어떤 남자아이가 이미 자신이 열정을 다할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아. 바이올린을 만드는 일이었거든. 그걸 본 여자아이가 영향을 받아서 “나도 스스로 뭔가를 한번 해보겠다”는 결심을 해. 그래서 중간고사 하나를 통째로 버리고 그 시간 동안 소설을 써서 완성해. 그걸 보면서 느꼈어. 청소년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깨닫고, 한 가지를 끝까지 해보는 경험이 중요하구나. 결과가 어떻든 그 선택을 스스로 해봤다는 경험 자체가 남는다는 게. 그래서 언젠가 내 딸이나 아들이 생기면 꼭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맞아, 아이들을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일을 하고 싶어. 나는 조금 헤매고 있거나, 지지와 의지가 필요한 청소년들, 삶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어.

사이드 프로젝트라도 작게 시작해볼까, 이런 고민들이 피어나는 시기인 것 같아. 예를 들면 정말 소규모로, 청소년 다섯 명에서 많아야 열 명 정도를 모아서 매주 한 번, 네 시간 정도씩 시간을 보내는 거야. 어떤 주에는 ㅇㅇㅇ 교수님 같은 분을 모셔서 성교육이나 페미니즘 관점의 질문을 던지고 깊게 이야기해보고, 또 다른 주에는 직장 다니다 플랜트숍을 연 친구를 데려와서 식물을 만지고 관계 맺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고. 사회학자 친구를 불러 집단주의 같은 주제로 또래 집단에 대해 같이 고민해볼 수도 있고, 예술가들과 사진을 찍거나 조형 작업을 하거나, 자기만의 공간을 구상해보는 워크숍도 해보고 싶어. 코딩을 아주 가볍게 체험해보거나, 요리 수업을 해보는 것도 좋고.

너도 나중에 한 번 와서 같이 진행해주면 좋겠다. 꼭 강의 같은 형식이 아니어도 국제개발 쪽에서 일해본 얘기라든지, 전 세계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알려주는 거야. 한국에서 획일적으로만 보이는 삶 말고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그런 이야기 자체가 아이들한테는 엄청난 자극이 될 테니까.

그런 삶의 형태를 직접 마주하는 것 자체가 청소년들에게는 굉장히 큰 자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아, 어른들이 다 똑같이 사는 게 아니구나”라는 감각을 몸으로 알게 되는 거니까. 다양한 어른들과의 만남과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거야.


청소년 ‘문토’인 거네. 그런 플랫폼을 만들면 좋겠다.

응, 다만 문토와 달리 고려할 사항이 있어. 전에 비슷한 일을 하면서 확실히 느낀 것이, 청소년들은 성인처럼 자유롭게 돈을 쓰거나 이동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는 거야. 뭔가에 참여하려면 결국 부모의 허락과 동의가 가장 큰 관문이 되더라고. 자연스럽게 “이걸 어떤 방식으로 풀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따라왔지. 그래서 개인 참여비에 의존하는 구조보다는, 펀딩이나 후원 같은 모델을 고민하게 돼. 그리고 처음에는 일단 사고가 좀 열려 있는 부모들, 이미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는 거지.


그렇게 프로토타입을 시작해서 입소문이 나고, 다른 부모들도 신청하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다. 나는 대학생 시절에 진주시에서 하는 멘토링 캠프에 네 번 정도 선생님 역할로 아르바이트를 했었거든.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발견해주는 프로그램이었어. 아이들의 적성과 특기를 찾고, 그게 나중에 어떤 활동이나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마지막에는 “그래서 나는 이걸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스스로 말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었거든. 거기 가면 진짜 애들 특성이 너무 잘 보여. 꾸미는 데 탁월한 애, 리더십 있는 애, 글 잘 쓰는 애들…

맞아, 그게 나의 관심 주제야. 청소년 시기에, 아주 작게라도 자기 삶에 질문을 던져보고, “나는 이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증거를 하나라도 갖게 해주는 일. 그 경험이 있으면, 이후의 선택이 훨씬 덜 두렵고 덜 남의 눈치를 보게 된다고 믿어.

그래서 이런 개입이 가능한 연령대의 친구들에 좀더 집중하는 것 같아. 어린 청소년들, 특히 중학생 정도, 빠르면 초등 고학년 친구들. 기본적인 공부는 할 줄 알고, 새로운 경험에 열려 있고 호기심이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결국 자기 힘이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거지. 대화가 되고,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애들.

이런 식으로 청소년 모임을 만들고 싶어. 실제 어떤 글방이 있는데, 거기서 ㅇㅇㅇㅇ, ㅇㅇㅇ 같은 사람들이 나왔거든. 그런 공동체에서 삶을 기획해보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고, 새로운 레퍼런스가 되는 거야. 우리가 만드는 공동체에서도 언젠가 ‘제2의 ㅇㅇㅇㅇ’가 나와도 좋을 것 같아.

이런 고민들을 거치니 내가 하고 싶은 교육은 ‘시민 교육’의 일환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어. 각자가 주체가 되게 만드는 교육. 이 과정에서 불편한 자각도 생겨. 내가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 결국은 어느 정도 자본이 뒷받침되고 돌봄를 받은 아이들 아닐까, 이런 고민. 호기심이나 의욕 자체가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느껴.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사회적 의미가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다만 내가 지향하는 건 격차를 ‘보정’하는 교육이라기보다는, 이미 안에 있는 힘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쪽에 더 가깝다는 걸 인정하게 된 거지.

그렇지만 참가자 모집이 제일 어려운 시기도 입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중학교 2~3학년부터인 것 같아. 부모가 쉽게 허락을 안 하니까. 예전에 바로 직전 회사에서 워크숍을 매주 열었을 때도 초등학생은 모집이 너무 잘 되는데, 중고등학생은 진짜 안 모였어. 초등 고학년만 돼도 학원 스케줄 때문에 점점 빠지고. 다들 사회 주류가 가는 길에서 밀려나는 게 너무 불안한 거지. 나도 애가 없으니까 이렇게 쉽게 말하는 거겠지 싶기도 하고. 솔직히 꿈이 명확한 사람이 얼마나 소수야. 그러면 대부분은 “그러면 공부라도 해라” 이렇게 말하게 될 것 같거든. 나도 막상 부모가 되면 그럴까 봐 솔직히 고민돼.


나중에 우리가 애를 낳으면 아까 말한 교육 방식을 실현해보자. 진짜 엄마의 마음으로 임해보고 싶어. 내 애가 잘 되려면 학원만 다녀서는 안 된다고는 확실히 생각하거든.

나도 그래. 애가 원하면 대안학교도 1~2년쯤은 경험해봐도 좋고, 안 맞으면 다시 공교육으로 돌아와도 되고. 반대로 공교육이 너무 답답하면 토론 많이 하는 학교 가도 되고. 나는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은데, 불안에 떠는 부모들을 보면 이게 내 일이 아니라서 쉽게 말하는 건가 싶기도 해. 그건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


우리는 먼 미래에 어떤 엄마가 될까. 현명하고 지혜로울 수 있을까. 다수가 임하는 교육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좇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고유성을 지켜주고 키워줄 수 있을까. 그런 질문들 앞에서, 이창작자가 오래 다져온 기준점이 지근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문득 든든하게 느껴진다. 그와 교류하다보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함께 실천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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