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작자에게 인류학이란 (2)

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나는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권한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내게 문화인류학과란, 학생 수가 적고 입학생을 많이 뽑지 않는 소규모 학과 정도의 인식에 불과했다. 그러던 가운데 문화인류학과생이었던 이창작자를 만난 것이다. 그를 통해 문화인류학이 얼마나 흥미로운 학문인지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학과의 친구들과도 많이 어울리게 되었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당연하게 여겨지는 질서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선, 삶을 해석하는 또 다른 언어들.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가 그들 주변에 펼쳐져 있었다. 이창작자는 열아홉 어린 나이에 어떻게 문화인류학과 진학을 꿈꾸게 되었고, 그 길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는 어떻게 진학하게 되었어? 학생들에게 잘 알려진 과는 아니잖아.

고등학교 이야기를 좀더 해볼게. 앞서 말했듯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신도시의 신생 학교였거든. 양아치 같은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는데, 대신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도 내가 느끼기엔 한 반에 사분의 일 정도밖에 안 됐어. 그래서 그때부터 학교 시스템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 내가 친했던 친구들 중에는 미용을 준비한다거나, 아예 대학 갈 생각이 없는 애들도 있었고. 그걸 보면서 너무 시간이 아까운 거야. 애들이 아침에 등교해서 밤까지 야자를 하면서 하루 열두 시간 이상을, 자기가 관심도 없고 의미도 못 느끼는 일에 쓰고 있다는 게 너무 기이했어. 그렇다고 애들이 대들거나 수업을 째는 것도 아니고, 그냥 수업 시간에 계속 자는 거지.

십대 때의 나는 이런 사회 현상 같은 것들을 탐구하고 고발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 중학교 때부터 이상하게 ‘그것이 알고 싶다’나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가슴이 뛰었어. 그게 그냥 내 기질의 일환이었던 것 같아. 누군가한테 예쁘고 착한 이미지로 사랑받는 것보다, 남들이 안 하고 도전하는 거, 못 알아낸 걸 알아내고 고발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 TV를 봐도, 남들이 못하는 걸 해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고.

우리 때 ‘도가니’ 같은 영화 있었잖아.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영화. 청소년 관람 불가였는데 그걸 너무 보고 싶어서 몰래 들어가서 봤던 기억이 나. 일종의 범법이긴 하지. 그렇지만 이상하게 그렇게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은 크지 않았어. 내 기준에서는 남한테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솔직히 말하면 엄마한테 보여달라고 하면 됐을 수도 있잖아. 근데 또 그건 싫은 거야. 그냥 ‘아, 이건 내 힘으로 어떻게든 봐야겠다’ 이런 마음이었어. 그 기억이 아직도 되게 선명해.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기자 관련된 책도 한 번씩 빌려서 읽고 그랬어. 그때 내 일상에서 ‘이런 걸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떠오르는 게 기자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자연스럽게 기자, 특히 사회부 기자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까 사회과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대입 준비하면서 논술을 준비했어. 부천 동네 학원을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이 되게 좋은 분이었어. 내가 “저는 사회에 대해 공부하고 싶고,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하니까, 언론영상학과 말고 사회학과를 가라고 말씀해주셨어.


결론적으로는 사회학과가 아니라 문화인류학과 갔네?

현실적인 이유가 작용했어. 나는 사회학과를 쓰고 싶었는데 경쟁률이 높아서 고민했지. 그러다가 문화인류학과 설명을 읽었는데 너무 멋있는 거야. 빈곤을 배우고, 질적 연구를 하고, 현장의 사람들 이야기를 직접 듣는 학문이라는 거야. ‘아, 이거면 쓸 수 있겠다’ 싶어서 썼어. 다른 학교들은 아빠가 사회학과나 철학과를 쓰라고 해서 그렇게 썼고.


아버지가 사회학이나 철학을 권하다니, 멋있으신걸.

우리 집은 “무조건 경영·경제 해야지”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어. 내가 사회학 공부하고 싶어 하는 건 부모님도 다 알고 있었거든.


대학 들어가선 어땠어? 너의 기질과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니 날아다녔을 것 같은데.

맞아, 나는 진짜 너무 좋았어. 똑똑한 선배들이 진짜 많았거든. 인류학을 이미 알고 있고, 고등학교 때부터 관련 책을 탐독하고, ㅇㅇㅇㅇ 교수님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는 그런 선배들. 그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이 학문을 사랑하긴 하지만 이걸 끝까지 파고들 만큼의 깊이나 집요함, 지적 영향력까지는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1학년 때부터 많이 했던 것 같아. 그렇지만 그 학문을 배우는 과정 자체는 너무 좋았어. 마이너리티에 대한 관점이라든가, 아나키즘에 가까운 시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 같은 것들.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 자체, 그리고 그 ‘속함’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는 걸 배우는 게 되게 재밌었어. ㅇㅇㅇㅇ 교수님도 진보이긴 하지만 주류 진보는 아니잖아. 그런 지점들이 좋았고, 마냥 진보가 좋은 것도 아니고 마냥 보수가 나쁜 것도 아닐 수 있다는 걸 배우는 게 너무 흥미로웠어.

근데 그때는 또 내가 혼자 멋있게 공부하는 사람처럼 굴었던 것도 맞아. 주변 선배들을 보고 멋있다고 느끼면서, 그 분위기에 취해 있었지. 인류학이나 페미니즘 등을 배우면서, 내가 다 아는 것 같고, 그걸 모르는 애들은 좀 무식해 보이고, 괜히 선민의식 생기고 답답하고. ‘저런 걸 모르면서 어떻게 성숙한 인간으로 사회에서 살지?’ 이런 생각까지 했던 것 같아. 그래서 너같이 관심 있어 보이고 받아줄 것 같은 친구들이 있으면 더 들이대고, 반대로 누가 봐도 그런 얘기를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친구들한테는 굳이 말하지 않고.

그러다 지금 애인을 만나고, 나이도 좀 들고, 현실적인 감각이 생기면서 균형을 찾은 것 같아. 인류학도 극단적일 때가 있다고 느끼고, 시대는 변했는데 여전히 올드하게 느껴지는 페미니즘 관점들도 있잖아. 고학년이 되면서는 나 스스로도 균형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 그런 것들을 이제는 나도 감안하면서 사고하려고 하고.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류학을 진짜 사랑했어.


인류학 수업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

너무 많아. 예를 들면 페미니즘 수업이 있었는데, 소위 ‘센’ 언니들이 많이 듣는 수업이었어. 토론도 많았고, 연애나 섹슈얼리티 얘기도 되게 거침없이 나왔어. 어떤 언니는 여자가 섹스에서 자기가 원하는 걸 알고 요구해야 한다는 얘기를 너무 당당하게 했어. 남자친구와 동의 하에 애인의 유무를 밝히지 않는 자유주의 연애를 하는 언니도 있었고. 그런 이야기들이 나한테는 너무 새로웠어.

그리고 소수민족, 퀴어, 귀농, 예술가의 삶을 배우면서 현지 조사를 나가잖아. 그때 진짜 느꼈어. 삶의 정답은 하나가 아니구나. 자기가 만들어나가는 삶에 자부심을 느끼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내 삶을 내가 기획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나의 삶에, 혹은 세상에 계속 반문을 제기했어.

예컨대 내가 다른 사람들이 주류로 생각하는 대기업에 가거나 전문직이 되고 싶은 건지 계속 반문하고. 그런 질문을 던지는 분위기가 학과 안에 늘 있었거든. 내가 다니던 학번까지는 ㅇㅇㅇㅇ 교수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였어. ㅇㅇㅇㅇ 교수님은 애들한테 진짜 많이, 그리고 되게 세게 질문했어. 예를 들면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하다가 누가 화가 나 있으면, “왜 그렇게 화가 나?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나는 거야? 뭐가 너를 그렇게 건드렸어?” 이런 식으로 묻는 거지. 단순히 주장만 하게 두는 게 아니라, 내가 왜 이런 관점을 갖게 됐는지, 왜 이렇게까지 흥분하는지를 스스로 들여다보게 만들었어. 페미니스트이면서도 페미니스트를 공격하고. 누가 “저는 애 낳으면 무조건 국제학교 보낼 거예요” 같은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하면, “왜 보내야 되는데? 그게 왜 좋은 건데?”라고 다시 묻고. 주류적인 시선 자체를 그냥 두지 않고 계속 질문했어. 나는 그 태도가 아직도 되게 흥미롭게 느껴지고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런 교수님들의 질문을 접하면서 나도 많은 감명을 받았어. 결국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가 되게 중요한 거잖아. 그 사람들의 생각 방식, 질문하는 태도를 보고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나도 누군가를 만났을 때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묻게 되는 거지. 나도 집에 가는 길에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지?” 하고 다시 생각하면서 입체적으로 변하고.

물론 지금 돌아보면, 나도 잘 알지 못하면서 나댄 것도 있고 좀 부끄럽기도 해. 그런데 그게 또 이십대의 특징이잖아. 다 아는 것처럼 느껴지고, 치기랑 열정이 넘치고, 그게 어떤 사회운동으로 발현되기도 하고. 예전에 민주화 운동 같은 것도 그런 시기에만 가능한 에너지였을 거고. 올곧은 자세로 정의를 추구하고, 다른 것들에 흔들리지 않는 상태. 그래서 누군가한테 괜히 더 말을 걸고, 더 질문을 던지는 행동들을 했던 거지. 아마 그 과정 속에 너와의 교류도 있었던 거야.


항상 ‘왜’를 질문하는 집단에 있었던 거잖아. 이렇게 자유분방한 사고체계를 독려하는 과에서 지내면서 어떻게 학내 방송국을 지원했어? 우리는 ‘왜’를 질문하지 못하게 하는 집단이었잖아. 어떻게 버텼어?

방송국에 간 이유는 단순했어. 기자가 되고 싶었거든. 고등학교 때부터 희망 진로에 항상 기자라고 썼어. 대학교 면접을 볼 때도 “저는 기자가 꿈입니다.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어요” 이런 말을 했을 정도로 기자가 하고 싶었어. 학내 신문사를 갈지 학내 방송국을 갈지 고민하긴 했어. 그런데 내가 좋아하던 게 PD수첩 같은 시사 방송 프로그램이었으니까 방송국에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지.

1학년 때는 나도 별생각 없었어. 선배들이 혼내면 문제를 나에게 귀인하면서 주눅 들었지. 그런데 그 학기 지나고 인류학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 집단주의·전체주의·국가주의 같은 걸 배우다 보니까 어느 순간 “어? 이거 이상한데? 이거 완전 우리 방송국이랑 똑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조금씩 주관이 생기고 비판의식이 생겼던 것 같아. 그래서 너한테도 괜히 문제를 제기하고 그랬던 거고. 사실 나도 처음엔 똑같았어. 새로 들어온 애들한테 초반에 소리 지르고.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뒤늦게 안 하게 된 거지.


너가 중간에 방송국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도 기억나.

맞아, 그래서 방학 때 방송국 활동에 안 나가고 인도 여행을 갔어. 그런데 선배들이 나를 붙잡으고 숲속의 향연 방송제 시사팀장을 권했어. 내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바라오던 꿈을 실현할 기회였던 거야. 시사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고 직접 제작해보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방송국에 남았고 시사 방송을 만들었던 경험은 아직도 재밌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어.

그렇지만 2학년 때 진짜 고민이 많았어.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건 인류학 글쓰기였어. ㅇㅇㅇ 교수님이 면담에서 내 글에 대해 “너는 너무 결론을 지으려고 한다. 인류학적으로 좋은 글은 아니다”라고 하셨어. 그 말이 나한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어. 그때 처음으로, 방송국에서 배운 글쓰기랑 내가 지향하는 삶의 글쓰기가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래서 2학년 때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이런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 단정하고 결론 내리는 글보다는, 서술하고 질문을 던지고, 읽는 사람이 생각하게 만드는 글. 맥락을 이야기하고, 좀 난해하더라도 다층적으로 말하는 글.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는 공격을 받더라도, 그걸 굳이 하나로 정리하지 않는 글을 더 쓰고 싶은 게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

인류학 수업을 들으면 현장에 많이 가잖아. 그러다 보니까 데스크에 앉아서 이렇다 저렇다 규정짓는 것보단 이런 고민을 더 많이 해. ‘현장에서 함께 어떻게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여기 있는 사람들의 잠재력을 내가 어떻게 직접 끌어올릴 수 있을까, 이 사람들이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건 뭘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론사에 대한 꿈을 접게 됐어. 그리고 3학년 때부터는 다른 탐색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그렇지만 아쉬움이 없었던 건 아니야. 나중에 졸업할 때쯤 보니까 대안 언론사들이 생기면서 다양한 시도들이 나오기 시작했잖아. 그걸 보면서 ‘아, 내가 너무 빨리 속단했나?’ 이런 생각도 들었어. 여전히 언론인은 멋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지금도.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사람이 되는 길에서 그는 어느 순간 방향을 틀었다. 정답을 빠르게 제시하는 대신, 사람들의 삶을 더 오래 들여다보고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택했다.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기에. 이창작자는 사람과 사물, 그리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었다. 다층적인 고민과 느린 사고를 감수하겠다는 결심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답을 말하기보다 질문을 남기며, 더 많은 것을 끌어안고 이해하려는 쪽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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