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대학 시절 학내 방송국에서 2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함께했던 이창작자.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이미지는 오랜 시간 동안 ‘말괄량이 삐삐’였다. 그의 첫인상은 실제 삐삐를 많이 닮아 있었다. 주황빛 머리와 자유분방한 태도, 권위자의 말을 쉽게 따를 것 같지 않은 재기발랄함까지. 분명한 ‘자기 색깔’을 가진 사람이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의 자유함이 혼란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어떤 사안이든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정면에 내세웠다. 그의 줏대 있는 자유로움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이창작자가 ‘삐삐’의 삶의 자세를 유지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청소년기를 보냈는지 물었다.
너를 처음 봤을 때 분명한 너만의 색깔이 있다고 생각했어. 청소년기 언어로 표현하자면 ‘놀아본’ 친구 같았거든. 주황색 머리와 너의 자유분방한 행동이 눈에 띄었지. 그래서 어떤 청소년기를 보냈는지 궁금했어.
우리집은 교육자 집안이어서 공부를 하는 것은 당연했어. 다만 엄마가 항상 나에게 ‘별종’ 같다고 얘기했었어. 아빠는 내게 ‘쟤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야 돼서 걱정이다’라는 얘기를 했지. 우리 집에서 나처럼 모험적인, 소위 ‘모범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어. 십대 때의 나는 어떤 연유인지 무모한 것이 멋있다고 느끼던 사람이었어. 남들과 너무 똑같은 것은 멋있다고 느끼지 않았던 거지. 남다른 것들, 새로운 것들이 있으면 그걸 추앙했어.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공부는 하되 피어싱을 하거나 염색을 하거나 교복을 줄이는 것 같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모험을 했어.
학창시절 이야기를 좀더 해줄래?
나는 친구들을 되게 다양하게 사귀었어. 부천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공부를 안 하는 친구들의 비율이 예컨대 특수목적고등학교보다 높았어. 그런 친구들이랑도 되게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냈고. 사실 내가 있던 지역이 신도시라서, 소위 공부를 안 한다고 해도 일탈 수준이 엄청 높지는 않았어. 그래서 노는 친구들이 크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고, 내가 그들을 무서워하지도 않았어.
선생님들은 나를 이렇게 평가하곤 했어.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같이 노는 친구들이 걱정된다는 식이었어. 이런 이야기를 우리 엄마한테도 말했고. 그래서 엄마랑 나랑 한 일주일 동안 집에서 대화 안 한 적도 있거든.
부모님은 걱정하셨으려나?
그랬을 거야. 그런데 나는 집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려고 안달이 난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엄마가 일주일 동안 나랑 대화를 안 하면, “뭐 어쩌라고. 나도 이런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 싫어.”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어.
부모님한테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엄청 컸으면 그렇게 못 했을 거잖아. 그렇지만 나는 신경을 좀 덜 썼던 것 같아. 어떻게 보면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 아무리 그 순간에 화가 나도, 어쨌든 나를 사랑한다는 그 안정감.
부모님이 어렸을 때 오빠에 비해 나에게 엄격하지 않았거든. 가부장제의 일환으로 여자라서였긴 하지만. 어쨌든 기대치가 달랐고 아빠가 나에겐 좀 관대한 편이었어. 오빠랑은 다른 종류의 사랑을 받았던 것 같아. 장남한테 주는 사랑이 아닌 다른 결의 사랑.
그래서 그런지 막 일탈하고 걸려서 혼나도 그렇게 쫄지 않았던 것 같아.
반골 기질이 있었구나. 관련해서 기억하는 것들이 있어?
선을 넘는 일탈은 안 하겠다는 기준은 분명히 있었어. 예를 들면 중학교 때 담배 피는 친구들이 건너 건너 주변에 생겼는데, 하교길 골목에서 그걸 처음 봤을 때 꽤 충격을 받았어. 그때 처음으로 이 양아치의 세계가 단순히 멋있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느꼈던 것 같아. 친구들 개개인으로 대화할 때는 그렇게까지는 아닌데, 그게 모여서 집단이 되었을 때 생기는 분위기 있잖아. 목적의식 없이 센 척하는 느낌, 그런 건 별로 멋있지 않았던 것 같아. 그리고 혹시라도 허세를 부리도록 강요하거나, 진짜 어디 가서 누구 때릴 정도로 과격한 애들이 있다면, 그런 애들이랑은 애초에 교류를 안 했어. 그런 식으로 나만의 기준들이 있었던 것 같아.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탈의 범위나 기준 같은 것들도 조금씩 더 세워졌던 것 같아. ‘난 저런 건 아닌 것 같다’ 정도의 감각. 그렇다고 해서 내 목표가 소위 ‘일진’이 되고 싶다거나, 센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건 아니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무리 안에서 내가 좀 독특한 캐릭터였던 것 같아. 정당한 이유 없이 ‘은따(은근히 따돌림)’를 당하는 친구가 생기면 그냥 그 친구랑 다녔어. 그 친구와는 지금도 친하게 지내. 그애가 말하길 중학교 때 내가 자길 보호해줬다고 느꼈대.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소외된 사람을 보면 마음이 좀 갔던 것 같아. 내가 보기엔 그 친구는 잘못한 게 없는데 따돌림을 당하는 거잖아. 보통은 그렇게 하면 그 무리에서 뒤처지는 거라서 다들 피하는데, 나는 그게 두렵지 않았던 것 같아. 애초에 내 목표가 무리에 껴서 더 멋진 오빠들 만나고, 더 무서운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를 학창시절에 보호해줬던 동그라미 캐릭터가 생각난다. 십대 시절에 너처럼 행동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데. 또래 압박(피어 프레셔)이 심하잖아. 또 그렇게 행동했던 경험이 있어?
학생들이 성관계를 하기도 하잖아.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피임 방법을 안다면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현실에서는 남자애들은 그걸 허세처럼, 일종의 권력처럼 과시하고, 여자애들은 알려지는 순간 바로 창녀 프레임에 갇히는 구조가 생기는 거야. 대부분 남자애들이 “한 번만 해보자”, “좋아하니까 하는 거다”, “나쁜 거 아니다” 같은 말로 가스라이팅을 하고, 결국 그렇게 성관계에 응한 여자애들은 피해자가 되는 구조였어. 실제로 고등학교 때 그런 일이 있었고, 남자애가 그걸 떠벌리면서 한 여자애가 무리에서 배척당했어. 내가 보기엔 명백히 가스라이팅이었고 나중에 생각하면 성폭력이나 성희롱에 가까운 일이었어. 주변에서는 여자애를 향해 “걸레” 같은 말이 돌았고. 나는 그게 너무 부당하다고 느껴서 그 친구를 챙겼던 것 같아. 그때는 ‘여성혐오’라는 말을 정확히 몰랐지만, 속으로는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어. ‘저 남자애는 자기가 관계를 하자고 설득해놓고 왜 그걸 자랑하고, 저 여자애는 그걸 응했다는 죄로 왜 이런 상황에 처해야 하지?’ 다들 수근거릴 때도 “쟤 잘못 아니잖아”라는 문제의식이 분명히 내 안에 있었던 것 같아.
타인을 돕기 위해서는 자기 확신이 중요한데, 너는 그게 있었네.
그런 것 같아.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야. 활동가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진짜 자기 확신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잖아. 그걸 누가 나한테 따로 교육해준 건 아니었어. 엄마를 닮은 건가 싶기도 해. 엄마가 선생님인데 학교에서 사정이 어렵거나, 가정에 문제가 있거나,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친구들을 많이 챙겨주셨거든. 그런 친구들이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했고, 좋은 사제 관계가 되는 걸 어릴 때부터 봤어. 그래서 이게 내가 의식적으로 배운 건지, 아니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쨌든 그런 환경이 나한테 영향을 준 건 분명해.
이창작자와 같은 친구가 청소년기에 단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갔다면, 그것만으로도 같은 교실과 같은 무리 안에 있던 이들에게는 충분히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잘 보여야 살아남는다는 계급 의식이나 다수가 휩쓸려가는 집단적 시선에서 벗어나도 괜찮다는 감각. 이창작자처럼 지내도 여전히 위축되지 않고, 존중받으며, 자기 기준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 그런 대안적인 모델의 존재만으로도 집단의 규범은 조금씩 흔들리고, 때로는 방향을 바꾼다. 내가 청소년기에 이창작자를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