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아웃 - 인터뷰 전에 내가 바라본 친구
이창작자와 나는 대학교 1학년, 학내 방송국 보도부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는 학교 소식을 취재하고 보도하겠다고 나선 앳된 새내기 기자들이었다. 2013년 여름 방송국에서 내내 시간을 보냈던 수습 평가 시절이 떠오른다. 종합관 6층 자그마한 보도실 안에서, 거의 열 명에 가까운 선배들의 밀착 피드백을 받으며 스트레이트 기사 문장을 촘촘히 써내려가던 시절이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이창작자와 나의 인연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다른 성질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무살의 우리는 19년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낸 날 것의 성격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이미 짜인 제도권의 질서를 신뢰했다. 반면 이창작자는 어디로든 튈 것 같은 사람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꽤나 자유롭게 놀았던 듯한 인상을 풍겼고, 말투나 행동이 구속되지 않았다.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문장들에 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대학 시절 그와의 기억은 나에게 늘 ‘도전받는 순간’으로 남아 있다. 1학년 때 보도실에서 시위에 대해 대화를 나눴던 날이 특히 기억난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보여주는 보수 매체의 뉴스와 기사를 접하며 자라, 신고되지 않은 시위에 대해 ‘무질서’와 ‘불법’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렸다. 그때 나는 “시민의 안녕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의 이해관계를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을 부끄럽게도 자신 있게 말하던 사람이었다. 이창작자는 놀란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시위는 그만큼 절박한 사람들의 마지막 수단이기도 하잖아.” 그의 피드백들은 언제나 내 사고를 흔들고 자극해주었다.
이듬해 나는 보도부장이 되었다. 우리 방송국은 단체 생활을 중시했고 규율이 철저했다. 일종의 ‘1984’식 시스템 속에서 노력과 충성심이 곧 미덕이었다. 모범생 기질이 있는 나는 그런 조직 속에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창작자는 그때도, 그리고 졸업 후에도 내 방송국 생활과 리더십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곤 했다. 지각한 부원에게 소리를 지르며 기강을 잡는다든가, 사람보다 업무를 앞세운다든가 하는 점들을 꼬집었다. 그의 쓴소리는 늘 불편했지만, 동시에 나를 성장하게 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나를 멈춰 세우는, 필요했던 채찍질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그가 했던 말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2~3학년을 거치며 여러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나는 제도 너머의 구조와 맥락, 그리고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창작자는 그보다 훨씬 이전, 1학년 때 이미 그런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길러왔을 것이다. 나는 늘 그의 사고방식을 늦깎이로 뒤따르는 사람이었다.
희한하게도 우리의 인연은 졸업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매년 만나 사회적인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제는 그와의 대화에서 주파수가 맞는다는 걸 느낀다. 그와의 만남은 언제나 느슨하지만 깊은 연대처럼 느껴졌다.
이창작자는 대학 시절부터 청소년 교육에 큰 관심이 있었다. 졸업 이전엔 청소년 대안 교육과 관련된 활동을 했으며, 졸업 후에는 혁신적인 비영리 사단법인에서 사회를 바꾸고 싶어 하는 청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후 대기업 CSR 부문으로 옮겨, 교육적 요소와 예술 창작의 관점을 결합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을 했다. 지금은 에듀테크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옮겨 그 길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그를 ‘이창작자’라고 부르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단순한 교육가가 아니라, 교육의 방식을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창작자’에 가깝다.
그가 교육에 열정을 쏟는 이유는 처음부터 일관되어 보였다. 청소년의 잠재력 극대화와 개인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믿음 — 아마 이런 것들이 그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기억을 더듬어 짐작한 해석일 뿐이다.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의 언어로 직접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내가 어떤 개념을 추상적으로 요약해 설명하면 “그게 아니야”라며 정확히 짚어주곤 했다. 오해받기를 싫어하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짐작컨대 그가 교육에 마음을 두는 이유는 그의 유년 시절에서 비롯된 효능감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보여주던 또랑또랑한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가 자라온 방식은 다른 이들에게도 나눌 만한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도 경험으로써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요즘도 우리는 온라인 독서모임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느슨하면서도 깊게 만난다. 다섯 명이 함께하는 모임이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우리 둘이 닮아 있다는 걸 자주 느낀다. 예전에는 그와 내가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닮은 부분이 더 많이 보인다. 하나의 주제가 나오면 우리는 생각에 질문을 덧붙이고, 그 질문에서 또 다른 호기심 섞인 이야기 거리들이 튀어나온다. 대화는 늘 그렇게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우리 둘의 대화 방식은 마치 밀려나오는 생각을 주체하지 못하고 쏟아내는, 그런 흐름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생각을 주고받는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워, 독서모임이 조금 길어지는 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겐 건설적인 불편함을 안겨주는 존재인 이창작자. 표현에 적확성을 담으려고 애쓰는 그. 그는 매순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정확한 언어로 치환되어 나온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런 그가 어떤 유년 시절을 지나 지금의 목표와 고민에 이르렀는지를 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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