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아웃 - 인터뷰 전에 내가 바라본 친구
6년 전 여름, 어느날 고등학교 절친이었던 김감독이 우리집 앞에 찾아왔다.
집앞 김밥 천국 같은 곳에서 1~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가더니, 나에 대한 인터뷰를 네이버 블로그에 적어주었다. 서두가 "나와 너무 닮은 사람이라 생각했다"였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김감독과 내가 무척 다르다고 느꼈다. 김감독은 유머러스하고 처세술에 능해 늘 친구들이 곁에 있었고, 누구의 장난에도 재치 있게 반응했다. 때로는 짖궂게 받아쳐도 표정과 말투에는 호감이 묻어났다. 사람들은 김감독과 대화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니까 김감독은, 언제 어떤 말이든 던져도 편안하면서도 재밌게 받아주는 재능이 있기에 계속 말을 걸고 싶은 상대였다. 반면 나는 누군가 장난을 걸면 뚝딱거리는 탓에 날카로운 말부터 내뱉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김감독의 그런 모습을 본받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다만 김감독과 내가 친해졌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김감독과 내가 닮았던 점은, 누구가를 절대적으로 미워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3년 동안 같은 반을 지낸 우리 반은, 다같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 같으면서도 언제든지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 있었다. 열명 남짓 친하게 지냈던 그룹에서, 시기별로 한 명의 친구가 타깃이 되어 단체적인 뒷담의 대상이 되었다. 나와 김감독은 그 소외되는 친구가 신경쓰인다는 얘기를 자주 나눴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친구들의 뒷담에 동조하다가도, 소외된 친구의 편을 들기도 했던, 이리저리 줏대가 없는, 아주 비겁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김감독은 쉽게 다른 사람의 뒷담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대학교에 처음 들어가던 시절, 지하철로 동작대교 위를 지나던 중 김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수에 성공한 김감독은 어느대 연극과 영상 관련 학과에 지원할까 고민 중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붙어다녔는데, 나는 그 안에 감춰져 있던 김감독의 창작 욕구를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결국 원하는 학과에 합격한 김감독. 그가 출연한 연극을 처음 본 날이 기억난다. 붉은 조명 아래서 김감독은 또렷한 발성으로 무대를 압도했고,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김감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연극 기획자가 되어 배우들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김감독의 유머러스한 처세술이 리더십 기술의 일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감독이 직설적으로 말해도 특유의 웃음기로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다. 그런 리더에게 지시를 받는다면 나도 즐거워서 연극을 재미있게 즐겁게 준비할 것 같다.
졸업 후에도 김감독은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촬영팀에서 일하며 바쁘게 현장을 누볐고, 어느 날엔 문득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소설 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는 말에, 나는 김감독의 창작 세계가 궁금해졌다.
지난해가 막 시작하는 겨울, 김감독이 또 감사히도 우리집 앞으로 찾아와주었다.
66세까지 진행하기로 했던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우리는 27살부터 3년마다 한 번씩 그때 느끼는 생각들을 담은 영상을 찍고 있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죽으면(!) 장례식장에 그 영상을 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김감독은 그때 '사랑'이라는 주제에 몰입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했고, 나와도 사랑의 정의에 대한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렇지만 마음과 생각의 깊이가 너무나도 얕아져버린 나는 감감독의 성찰을 온전히 받아주지 못했다. 김감독이 실망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갔다.
그렇게 보냈던 김감독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찍어둔 영상을 다시 돌려보았다. 영상 속의 김감독이 아기자기하게 자신의 옛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마음이 너무나도 귀하고 예뻤다. 김감독은 당시 크로키와 춤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3년 뒤에도 아직 크로키와 춤을 좋아하고 있을지 궁금하다고 한다. 코로나19로 후각을 잃기도 했다. 김감독의 후각은 돌아왔겠지..?
김감독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 역시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한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 그 사람을 도와주려 하지만, 때때로 실망을 겪기도 한다고 했다. 김감독이 평생에 걸쳐 이루고 싶은 목표는 “글을 잘 쓰는 것” 그리고 “글로 돈을 벌 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이란 그런 건가 보다.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끊임없는 자기성찰. 김감독의 말투와 웃음 속에는 언제나 그런 마음이 스며 있다.
이번주 토요일에 김감독과 통화하기로 했다. 3년 주기의 영상을 촬영하려면 시간이 좀더 지나야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김감독과 통화를 해보고 김감독에 대해 더 자세히 써보고 싶다! 김감독은 지난해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