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

낯부끄러워 하지 못한 말들

"다른 사람의 인생에 끼여드는 삶을 선택하셨네요."


한국에 갔을 적에 전 직장 선배가 하는 바를 갔다. 옆자리에 앉은 한 중년 남성이 내 직업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정말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요즘 나는 사회 운동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진행하는 일이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람들의 인생에 끼여들 만큼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사람을 너무 모른다. 나만 안다.


유안진 시인의 시 「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부끄럽게도 여태껏 나는 자신만을 위하여 울어 왔습니다. 아직도 가장 아픈 속울음은 언제나 나 자신을 위하여 터져 나오니, 얼마나 더 나이 먹어야 마음은 자라고, 마음의 키가 얼마나 자라야 남의 몫도 울게 될까요.


조지 해리슨의 노래 ‘I, Me, Mine’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다.


All I can hear, I me mine, I me mine, I me mine. Even those tears, I me mine, I me mine, I me mine.


예전에 영국에서 들었던 한 교회의 설교도 떠오른다.

자기 자신을 향한 편애(favoritism)를 버려라. 너는 손끝에 베인 상처에는 그렇게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오늘 입을 옷과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그렇게도 고민하면서, 어째서 다른 사람의 상처와 관심사에는 그토록 무심한가.


이런 구절들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는 건, 아마도 내가 찔려서일 것이다.


꼭 거창한 방법론이 필요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을 알고 싶다면, 우선 내 주변 사람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가장 가까운 이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면서, 어찌 저 멀리 이국땅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 최근 이런 카톡을 보내왔다.
“고등학생들이 사회 문제를 통해 관계 변화를 겪는 청춘 영화를 봤어. 거기 되게 멋진 여자애가 나오는데 너가 생각났어. 등교할 때 교감이 머리 규정 가지고 뭐라하니까 너가 반박한 적이 있거든. 그 모습이 생각났음"


그 말이 참 좋았다. 그 친구가 나를 기억해주는 방식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도 종종 싫어하던 모습, 마음속에서 늘 고민하던 나의 일면을 그 친구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말은 생각보다 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내가 이 친구에게서 느끼는 본질을, 이 친구의 마음에 닿을 만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대신 나는 이렇게 답해버리고 말았다.
“오, 그걸 멋지다고 생각해주다니... 넌 정말 멋진 친구야. 너에게도 멋진 부분이 많은데, 낯 부끄러우니까 지금은 다 말하진 않을게. 그래도 글을 쓰고 사유하는 모습이 참 멋져.”


참 빈곤한 표현력이다. 나는 여러 방면에서 이 친구를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화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진심으로 칭찬하며 그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어떤가? 정반대로 행한다. 사람들은 어떤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쥐 잡듯이 잡고, 마음에 들면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반박과 비판에만 열정을 쏟았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에서는 주변 사람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내가 생각하는 그들의 특색을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글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이 시리즈는 사실 그 고등학교 절친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