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박사에게 낭만이란 (1)

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양박사는 매년 자신이 만든 달력을 보낸다. 전해에 찍은 사진을 월별로 가득 담아서. 한국에 있을 때는 ‘서른즈음에’에서 술을 마시면서 받았다. 영국에 갔을 때는 영국으로, 볼리비아에 왔을 때는 볼리비아로 달력을 보내주었다. 물론 볼리비아로 보낸 달력은 안타깝게도 반송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친구들을 위해 부지런히 이벤트성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올해도 달력을 만들었지? 어떻게 매년 달력을 만들게 된 거야?

달력을 매년 만드는 이 사단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하면… 원래 처음에 대학에서 사진 동아리를 했고, 프리랜서 사진 기자로도 지냈지. 사진들이 쌓이다 보니까, 이걸 계속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더라고. 그래서 처음 사진전을 열었어. 사진전 3회차쯤 됐을 때 코로나19가 터지는 바람에 사진을 전부 못 쓰게 된 거야. 전시를 못 하고 끝내긴 너무 아쉽잖아.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다가 달력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근데 그때는 전문연구위원이라 유상 사업을 하면 안 되는 거야. 잡혀가니까. (웃음) 그래서 처음에는 친구들한테 달력을 만들어 보내줬는데, 반응이 좋았어. 그러고 나서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사진전을 하면서, 달력도 기념품처럼 오시는 분들께 드렸지. 회사 동료들한테도 달력을 주는데, 그러면 사진이나 여행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더 친해질 기회가 생겨. 이렇게 내 사진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게 좋아.


나는 사진을 잘 안 찍거든. 그래서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사람들의 동기가 궁금해. 왜 달력을 만들어서까지 사람들한테 나누고 싶어?

근원적인 질문이네. 그럼 내가 왜 사진을 찍는지부터 얘기해야겠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블로그 때문이었어.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블로그를 했거든. 나는 어릴 적부터 여행을 좋아했는데, 부모님이 여행을 자주 다니셔서 나도 영향을 받았어. 그래서 블로그에 여행 리뷰를 올리면서 사진도 같이 올렸지.

그게 조회수가 쌓이고 검색창에도 뜨기 시작한 거야. 하루에 몇 천 명씩 들어올 정도로 커졌고, 본격적으로 여행 정보도 제공하는 글을 썼어. “이 나라에서는 어떤 음식점이 맛있고, 뭘 먹어야 하고” 같은 것들 말이야. 블로그 글을 쓰는 게 나한테는 여행을 다니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정도였지.

그러다가 대학생 때 론리 플래닛 매거진 같은 데서 블로그로 연락이 와서, 사진을 잡지에 써도 되냐고 물어오기도 했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는 두산백과에 사진작가로 지원해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게 계기가 돼서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사진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게 원동력인 것 같아. 그리고 사진이 쌓이다 보니, 내가 어디를 여행했는지,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를 기록할 수 있잖아. 그런 게 사진을 찍고 나누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

그런데 사실 외장하드에 아카이브로 다 모아놨던 사진이 있었는데, 작년에 고장이 나서 5테라바이트가 날아갔어. 네 곳의 복구 업체를 다녔는데 돈만 날리고 복구는 못 했지. 그래서 살짝 사진 찍는 동력이 상실된 상태야. 내년도 달력을 만들어야 되는데 쓸 사진이 없으니 고민이야.


사진이 너와 그리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네. 초등학교부터라니.

오래 됐지. 한 20년 정도?


서른즈음에 사장님도 사진 많이 찍으시잖아. 그래서 사장님이랑 친해진 거야?

그렇지. 처음에는 사실 단순히 아르바이트생과 사장님의 관계였어. 그때 내가 아르바이트를 처음 한 거라 일을 잘 못했거든. 잔도 깨고… 그래서 사장님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하셨지.

그런데 서른즈음에의 특징이, 일이 끝나면 뒷풀이가 있잖아. 술을 마시면서 얘기하다 보니까, 사장님이 사진을 진심으로 좋아하시는 거야. 나도 사진에 애착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인연이 됐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가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때 사장님께 제안을 드렸어. “워킹홀리데이 가서 사진을 찍어오겠다”고. 서른즈음에에 사장님 사진이 많이 걸려 있잖아. 나도 한 번 전시해보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시면서 액자를 지원해주겠다고 하셨어. 그게 사진전의 시작이 됐지.


너는 어떻게 서른즈음에에서 알바를 시작했어?

처음에는 진짜 돈이 없어서 시작했어. 부모님이 대학생 때는 생활비를 일정 부분만 지원해주셨거든. 그때 한창 학생회장 끝나고 나서 술을 정말 많이 마셨는데, 돈이 모자란 거야. 그러다 학생회 사람이 아르바이트 공고를 올렸는데, ‘어? 나 여기 가본 술집인데?’ 하면서 지원했어. 낮에는 과외를 하고, 밤에는 알바를 했지.


시작은 되게 담백했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애착을 가지게 됐어? 사장님이랑 2호점 어디 낼지도 같이 알아보고, 뒷풀이도 끝까지 남고 그랬잖아.

이건 좀더 개인적인 이야기야. 내가 생각보다 되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더라고. 나는 중학교부터 기숙사에서 살았어. 그래서 부모님이랑 15년을 떨어져 살았어. 밤이 되면 많이 외롭더라고, 송도에 있을 때도 기숙사에 혼자 있으면 적적하고 그랬어. 서울 와서도 그랬고.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잖아. 술자리 끝나고 자취방에 혼자 있으면 공허했고. (그래서 내가 들인 노력이 하나 있었지. 집은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잖아. 그래서 뷰가 좋고 시설이 우울하지 않은 곳을 찾으려 노력했어. 그러다 보니 집에 계속 투자를 했지. 월세를 좀더 내거나 전세금을 좀더 붙이는 식으로. 그렇게 집을 옮겨 다녔어. 그러다보니 부동산 투자에도 눈을 뜨게 된 것 같아.) 아무튼 대학 다닐 때에는 외로움이 너무 싫었어. 밤에 일부러 운동하러 다니기도 했어. 그리고 서른즈음에에 갔지. 서른즈음에는 내게 아지트 같은 공간이 됐어. 외롭거나 혼자 있을 때 가서 레드락 한 잔을 마시면 됐거든. 노트북 가져가서 공부하거나 일을 한 적도 많고. 사진전도 하게 되면서 추억이 많이 쌓였어. 내 20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이 된 거지. 사장님이 낭만파인 것도 나랑 잘 맞았던 것 같아.


그렇구나. 너한테 낭만은 뭐야?

사실 나는 ‘낭만’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낭만이더라고. 예를 하나 들면, 예전에 서른즈음에에 있었는데, 다른 단골분이 오랜만에 들르셨어. 그때 나는 혼자 사진 편집을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분이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인지, 내 모습이 부러워 보였나 봐. 그분이 나에게 “낭만이시네요”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 그때 나는 대학원 졸업 후 취업하기 전에 한 달 쉬고 있던 시기였어.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유 없이, 그렇다고 범죄처럼 나쁜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내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따라가고 있었던 거지. 사람은 살다 보면 경제적이거나 이성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많잖아. 어쩔 수 없는 게, 우리는 모두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나는 순전히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욕구를 위해서, 거기에 감성을 한 스푼 얹으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한테 낭만은 ‘어딘가를 가보고 싶다’라는 마음이야. 어디 여행을 가보고 싶고, 사진을 찍고 싶은 것. 탐구욕이나 탐험욕에 가까운 것 같아. 이 낭만에 대한 욕구는 어디서 왔나? 아까 말했듯이 부모님이 여행을 정말 좋아하시거든. 그래서 나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여행을 좋아하게 됐고, 역마살이 생긴 거야. 그게 범죄는 아니잖아?


너가 여행 갔던 곳 중에 제일 좋았던 데가 어디야?

이것도 낭만과 관련이 있어. 내가 지브리 영화를 정말 좋아하거든. 그중에 『붉은돼지』라는 영화가 있어. 주인공이 아드리아해를 비행하는 장면이 너무 예쁘게 나와. 그래서 ‘야, 여기 살면서 한 번 가봐야겠다. 이거 어디지?’ 하고 찾아봤더니 크로아티아더라고. 그때가 대학원생이었지. 그래서 졸업 여행으로 한 번 가보자고 생각했어. 마침 N기업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였거든. 의도한 건 아니지만, 면접 떨어진 바로 다음 날 크로아티아로 출국했어.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여행을 갔는데, 다녀오면서 기분 전환이 됐어. 그때가 겨울 비수기라서 사람이 없었거든. 그래서 경치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지. 혼자 렌트카 빌려서 이곳저곳 다녔고.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재정비를 하고, 다른 기회를 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또 그 여행을 계기로 크로아티아 사진전을 준비했고, 달력도 만들었어.


근데 나이 들면 여행을 그렇게 자주 못 다니지 않아? 취업하고 나서 가치관이 변한 편이야?

아니, 여행에 대한 가치관은 그대로인 것 같아. 다만 아쉬운 건, 이제 취업을 했으니까 연차를 길게 붙여 쓰기 어렵다는 거지. 예전처럼 낭만을 좇아서 여행하긴 힘들어졌어. 또 우리 나이대가 커리어 성장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잖아. 그래서 요즘은 낭만보다는 이성을 챙기면서 사는 편이야. 하지만 앞으로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할지 모르니까, 지금 여행을 자주 못 간다고 해서 크게 아쉬워하진 않으려고 해.


너 얘기를 들으니까 최근에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볼리비아에 세계일주 중인 분이 여행을 오셨거든. 그분한테 내가 이렇게 말했어. “저는 20대의 경험이나 생각, 가치관으로 30대에 닥친 문제들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해서 고민이에요.”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답하더라. “저는 10대 때의 가치관으로 의사 결정을 하고 있어요.” 너도 좀 그런 것 같아. 초등학교 때 시작한 사진 블로그가 지금의 너로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면.

맞아. 보통 인생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잖아. 근데 나는 운 좋게도 그런 기회가 많았던 것 같아. 부모님 성향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고. 우리 부모님은 크게 간섭하지 않으셨어. 풀은 만들어주되, 낭떠러지에는 떨어지지 않게 해주셨지. 먼저 학원 가라고 하신 적도 없고, 내가 수학이랑 과학을 좋아해서 가고 싶다고 하면 가라고 하셨고. 교과 외 프로그램도 많이 참여하게 해주시고, 여행도 자주 같이 다녔어. 그러다 보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빨리 알게 됐던 것 같아. 그게 나의 초·중학교 가치관이 됐지. 보통 사람들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가치관이 많이 형성되잖아. 나는 어렸을 적 기억이 10대 후반까지 이어지면서, 그 시기에 가치관이 확립된 것 같아. 그리고 운이 좋았던 게, 대학생 때 생계가 어려웠다면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했을 거야. 그런데 그렇지 않아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 수 있었던 거지. 또 공학계는 진로 방향이 넓어서 학문적인 영향을 받아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오늘 대화하면서 느낀 건데, 너 생각보다 말을 담백하고 이성적으로 하는 것 같다. 우리가 등산할 때는 헛소리도 많이 하고, 서른즈음에에서 만나면 감성적인 얘기도 하잖아. 그래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말투가 이성적이다.

나도 대학생 때는 대문자 F였어. 서른즈음에에 한창 다니던 시절에는 완전 낭만파였지. 그런데 대학원 생활을 6년 하면서 많이 바뀌었어. 대학원은 논문을 쓰면서 연구하는 일종의 라이선스를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하거든. 논문을 쓰다 보면 F로는 살아남기 힘들어. 로직이 부족하잖아.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하다보면, 결국 대문자 T의 관점으로 논문을 쓰게 되더라고.


맞아. 나도 사회생활하면서 T로 바뀐 것 같아. 그렇지만 내 안에 끌어오르는 게 있긴 하지.

그렇지. 낭만은 이런 부담을 다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래서 낭만을 좇는 것 같기도 해.


최근에 독서모임 친구들이랑 ‘낭만’에 대해 얘기했거든. 쓸데없는 짓을 굳이 내가 하고 있으면, 그게 낭만이래.

나도 동의해. 여기서 말하는 ‘쓸데없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해. 사실 이 얘기를 하려면 철학적인 주제로 넘어가야 하는데… ‘인간은 왜 사는가’ 같은 거지.


그게 왜 연결이 돼? 쓸데없이 왜 사냐고? (웃음)

그렇지. 인간과 로봇을 구분 짓는 부분이 그거라고 생각해. 사실 우리가 숨 쉬고 살아 있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없잖아.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서야. 태어난 건 내 결정이 아니었기에. 그게 나한테는 낭만이고, 나의 존재 이유인 것 같아.


너가 좋아하는 영화는 뭐야?

나는 영화를 꽤 많이 보는데, 내 가치관이랑 잘 맞는 영화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야. 내 인생 영화지. 어떤 직장인이 회사에서 겪는 일을 계기로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스케일이 커. 주인공 월터가 공상을 하면서 살다가, 그걸 현실로 만들어가는 영화야.


너가 좋아하는 노래는 뭐야?

김동률. 나는 뉴에이지 클래식을 좋아해. 이게 『붉은돼지』랑도 연결돼. 내가 지브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OST 때문이거든. 히사이시 조를 무척이나 좋아해. 김동률 노래도 되게 클래식컬해. 우리나라 발라드 중에서는 가장 클래식컬하다고 생각해. 김동률은 하나의 장르라고 봐. 그런데 문제는 김동률이 ‘올림픽 가수’라는 거야. 4년에 한 번씩 노래를 내거든. 그래서 요즘은 잔나비나 검정치마 노래를 듣는 편이야.


사실 나는 양박사와 나의 공통 분모가 ‘서른즈음에’ 아르바이트 경력뿐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생활적인 면에서는 너무나도 다른 속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닮은 점들이 보여서 신기했다. 외로움, 역마살, 지브리. 오랜 친구가 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나보다. 양박사가 낭만을 현실로 만드는 '월터'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양박사에 대하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