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박사에게 꿈이란 (2)

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양박사는 과학고 출신에 단과대 학생회장까지 지낸, 참 독특한 프로필을 가진 친구다. 물론 이런 특징들이 우리가 주고받는 헛소리 속 대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잘 몰랐던 그의 삶의 한 조각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너의 유년 시절은 어땠어? 어렸을 때부터 천재였니?

나는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진 않아. 겸손하려는 게 아니라 진심이야. 사회적으로 봤을 때, 내가 목표하던 것들을 이뤘으니 실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추구해왔으니까 스스로 자부심도 있어. 그렇지만 천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내가 나를 알잖아. 나는 나의 허점을 잘 아니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천재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

그 대신 나는 일이나 로직을 좋아했어. 이런 성향이 어릴 때부터 드러났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긴 했지만, 전교 1등은 딱 한 번 해봤어. 공부에 오기가 있어서 등수가 떨어지면 분해서 열심히 하던 타입이었어. 예를 들어 전교 1등에서 전교 10등으로 떨어지니까 치가 떨리는 거야. 그래서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집을 바꾸는 식으로 대응했던 기억이 있어.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중학교 때는 ‘나는 천재형이 아니라 내신형이구나’라는 걸 알았지. 내신이 좋으면 고등학교 진학에 유리하니까 과학고에 진학했어. 그런데 거긴 정말 ‘진짜 천재’들이 있더라고. 그 속에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어. 죽어라 공부해도 딱 절반 등수였지.

또 유년기를 돌아보면, 운동은 정말 못했어. 사회성은 그냥저냥이었고. 그리고 나는 모태신앙이거든?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있어.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하나를 꼽으라면 ‘사랑’이라고 생각해. 누군가에게 베풀고, 나누는 것들. 그게 내 기본값이었어. 그래서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편이었고, 불법 같은 건 싫어했지.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면이 있었는데, 학생회를 하면서 진보적인 가치관이 많이 유입되기도 했어.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나를 ‘회색분자’라고 하더라.


대학생 때는 어떻게 단과대 학생회장이 된 거야?

나는 행정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대학생이 되기 전에도 행정을 맡아볼 기회가 있었어. MT 가면 총무를 맡아서 돈을 정산한다든지. 대학에 들어가서도 1학년 때 나보고 총무를 하라는 거야. 그래서 “나 이런 일 좋아한다” 하고 맡았지.

그런데 행정을 좋아하다 보니 단순히 돈 관리만 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지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어. 예를 들어 연고전 예약 시스템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이런 식으로. 그러다 보니 일이 점점 커진 거야. 시스템이 바뀌면서 좋은 점들이 보이고, 나도 더 동기부여가 됐지. 그러면서 단위가 커졌어. 1학년 때는 1학년 총무였고, 이후 학과 총무를 거쳐 학과 부대표까지 맡았어.

그런데 왜 이과대 학생회를 하게 됐냐면, 당시 단과대에 공동체 의식이 많이 부족했어. 심지어 어느 해에는 이과대 학생회장 후보가 없어서 비상대책위원회로 운영되고 있었거든. 그러다 보니 ‘여기도 한 번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야. 그래서 선거에 출마했고, 당선됐지.

그 1년 동안 정말 일이 많았어. 단과대 내에서 안 좋은 일들이 터져서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기도 했어. 대자보가 붙을 만한 사건도 있었고. 단위가 커지니까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많았는데, 그게 엄청난 스트레스였어. 한쪽 편을 들면 다른 쪽에서 비판하고, 중간책을 선택하면 양쪽 모두에게 욕을 먹는 상황이었지.

돈 관리는 단순히 관리만 하면 됐는데, 여기선 어떤 결정을 해도 욕을 먹는 거야. 그래서 단과대 학생회장까지만 하고 접었던 것 같아. 그래도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 23살에 언제 2,000명이 넘는 조직을 관리해보겠어? 기자회견도 해보고. 당시엔 스트레스였지만, 의사소통이나 조직 운영 같은 부분에서 많은 걸 배웠고, 지금의 나에게도 큰 영향을 준 것 같아.


뭐를 배운 것 같아?

일단 단위가 커지면서 행정 처리하는 법을 배웠지. 20명이 가는 MT면 “몇 시에 어디로 모이세요” 하면 다 오잖아. 그런데 새내기배움터처럼 300명이 가는 행사면 기획팀만 30명 정도가 모여서 준비해야 해. 그에 따른 행정 프로세스가 있거든. 회사에 와서도 나는 그게 당연해서 그대로 했는데, 사람들이 “그건 어디서 배운 거냐”고 묻더라고.


너는 정말 행정을 좋아하는구나. 우리 약속 잡을 때도 카톡방에 ‘어디서 모이자’고 그래픽 공지문 같은 거 올리잖아.

맞아. 그것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그리고 학생회 하면서 배운 게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정치적인 부분이야. 사실 학생회장을 하면서 나는 정치가 나랑 잘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 정치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사람들의 반발을 듣게 되거든. 그게 너무 힘들었어.

우리 과에서 문제가 된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쪽은 A를 관철하고, 또 다른 쪽은 B 정도의 대응으로 마무리하자고 했어. 그래서 내가 결정을 내렸더니 한쪽에서 난리가 났고, 외부 시민단체까지 문제를 제기했지. 결국 양쪽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였어. 그때 느꼈어. ‘정치에는 타협이 없구나. 이해관계가 얽히면 진통이 끝이 없구나’ 하고.


너는 사회나 인간관계가 타협, 혹은 정반합을 이루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

응.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잖아. 그 안에서 타협과 협치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극단화로 가면 끝장이라고 봐.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점점 그쪽으로 가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2024년부터 ‘중용’을 나의 모토로 삼았어. 앞으로 중요한 가치가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 예전에는 내가 회색분자인 게 단점이라고 생각했어. 현실을 회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시대에는 중용이 정말 중요한 덕목이더라고. 그 원칙을 겸비하고 더 발전시키기로 했어.


그런데 네가 진짜 그런 가치관을 중시하고 사는 것 같아. 그래서 어떤 사람은 너를 회색분자라고 하고, 또 그 덕분에 여러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고 술도 마시고… 모두와 친한 편이잖아.

맞아,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아. 기억에 남는 말이 있어. 『위대한 개츠비』에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하거든. 자기 단점 중 하나가 남을 되게 늦게 평가하는 거라고. 좋은 면을 보려고 한다고. 나랑 꽤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했어.


그렇구나. 너는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당연히 있지. 나는 싫어하는 사람은 정말 싫어해. 모든 일에 배타적이고 초치는 사람들 말이야. “나 저 사람 싫어. 이 일을 왜 해야 돼?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저 사람을 왜 도와줘야 돼?” 이런 식으로 수동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 물론 그 사람이 그렇게 된 데는 사회적, 개인적인 배경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런 태도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오히려 모든 일에 과격하거나 극단적인 사람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모든 일에 냉소적인 사람은 진짜 아무런 득이 없는 것 같아.


그간 몰랐는데, 너랑 나랑 사고방식이 비슷하다는 걸 느꼈어. 나도 냉소적인 사람들을 경계해. 그리고 나 자신을 회색분자라고 생각하거든. 각자 입장이 있다고 보고, 그 입장이 모두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모두의 의견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 하다 보니, 결국 양쪽에서 다 욕먹는 경우가 많아.

맞아. 사실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생각보다 서로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도 많아. 경제적 이권이 걸린 게 아니라면 정치적 방향에 대해서는 타협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너는 이런 경험을 다 겪고도 여전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랑 부대끼면서 사는 게 지치진 않아? 사람들 집에 초대하고, 술을 마시고, 청소 같은 것도 다 네가 하잖아.

나는 가족이 옆에 있지 않잖아. 계속 혼자 살아왔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나의 원동력이야. 그리고 나는 행정을 좋아하잖아. 사람들을 부르고, 치우고, 설거지하는 것도 나한테는 행정이야. 사람들에게 부담 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내가 좋아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준다면 더 좋은 거고.


그런데 그걸 당연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해? 나는 쪼잔한 구석이 있어서 기브 앤 테이크를 중시하거든. 내가 애정을 준 만큼 돌려주지 않는 관계라면 끊어내는 편이야. 그런데 너는 어떻게 계속 줄 수가 있지?

나도 인간관계에서 ‘을’이 되는 상황이라면 멀리해. 그런데 어떤 사람과 있을 때 을이라는 감정이 안 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 내가 친해진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을로 느끼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서, 그들에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도움을 주는 것 같아.


너의 앞으로의 계획은 뭐야?

나는 항상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 『세계는 지금』 프로그램을 매주 보거든. 빅테크들이 미국에 있으니까 실리콘밸리 쪽에 가보고 싶어. 그쪽이 메이저니까, 큰 물에서 놀아야 더 많은 게 보일 테니까.


어, 너는 갈 것 같아.

나도 그럴 것 같아. 한 5년 안에 갈 거 같아.


그러면 너의 인생의 꿈은 뭐야?

일단 나는 창업을 해보고 싶어. 물론 현실과의 타협도 필요하겠지. 30~40대에 창업하면 보통 가정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내가 내리는 결정이 나한테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식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지. 창업은 리스크가 크잖아. 그래서 내가 박사 과정을 선택한 이유도 그거야. 기술 창업을 하면 실패 확률이 줄고, 혹시 창업에 실패해도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내가 지금 대기업에 들어온 것도 같은 맥락이야. 여기서 커리어를 시작하면, 나중에 타이틀을 가지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창업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어. 살면서 창업을 못 한다면 죽는 순간에 후회할 것 같거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크게 한 번 벌려보고 싶어. 기술로 구현하는 ‘홍익인간’의 정신 같은 거지.

다만 학생회를 하면서 느낀 건, 내가 CEO 스타일은 아니라는 거야. 나는 정치적인 결정을 정말 싫어하거든. 그래서 나는 CTO를 하고 싶어. 주변에 창업한 분들이 있어서, 나도 머지않아 그 길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다만 그 전에 N회사에는 꼭 가보고 싶어.


응, 너는 갈 것 같아.

고마워. 그리고 이제 두 번째 꿈인데, 이건 커리어와는 관계없는 개인적인 꿈이야. 나는 사회가 점점 양극화되고 있다고 생각해. 많은 원인들이 있겠지만 인터넷도 그 원인중 하나라고 생각해. 전 세계가 연결되면서 사람들이 점점 자극적인 것에 끌리게 되는 것 같거든. 도파민에 의해서.

그런 현상이 의견의 양극화 같은 사회 문제로만 나타나면 모르겠는데, 경제적으로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어. 사회적으로 중산층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하잖아. 그런데 지금은 그 중산층이 줄고 있으니까, 사람들의 생계와 직결된 피해가 많아지는 거야.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고 싶어.

그 수단으로 나중에 재단을 만들고 싶어. 사실 이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하는 방법은 정치인이 되는 것 같긴 해. 그런데 그건 내 적성이 아니야. 나는 내가 행복해야 집중이 잘 되는 사람이거든. 정치는 나한테 동기부여가 안 돼. 그래서 정치적인 부담 없이 재단을 운영하고 싶어. 예를 들어 교육 재단 같은 거. 개개인의 스토리에 집중하면서 점차 판을 키워나갈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게 꿈이야. 재단을 만들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겠지? 그래서 그게 창업에 대한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


개인에 집중하는 게 어떻게 양극화를 해결한다고 보는 거야?

자본주의는 어쨌든 개인의 열망을 실현시키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해주는 구조야. 그런데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그 매커니즘이 무너지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도 끊어지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 그래서 우선 한 명씩이라도 교육을 통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지지 않게 지원하고 싶어.

물론 한 명씩 바꾼다고 해서 시스템이 바뀌진 않겠지. 그건 나도 동의해. 하지만 개인을 지원하다 보면, 더 큰 사회의 틀을 보는 시각도 열리지 않을까 싶어.


나도 교육에 관심이 많아. 나는 개개인이 자기가 좋아하는 걸 명확히 알고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그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사람은 자기 적성을 알아야 자아 실현을 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나도 그게 연결된 문제라고 봐. 사실 공부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 여행 다니면서 유튜브 할 사람, 작가할 사람, 운동할 사람, 사업할 사람… 다 따로 있잖아. 그런데 우리는 공부시키는 데만 투자를 하니까, 사람들이 자기 주도적인 해결 능력이나 자기 인생을 사는 법을 못 배우는 것 같아.

사회가 정의한 성공을 위해서 쉬운 길을 찾으려 하고, 공부도 쉬운 길을 택해. 예를 들어 내가 물리학을 전공하고 싶은데, 수능에서 물리Ⅱ가 어렵다고 하니까 Ⅰ만 하는 거야. 그게 뭐야? 이런 것들이 다 연결돼 있는 것 같아. 그래서 한 번은 이 사슬을 끊어줘야 한다고 생각해. 그게 누나가 말한 해법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일단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붙여놓는 게 방법일 수도 있고.


그래, 그러면 너의 재단에 나를 고용해줘.

C레벨로 모시겠습니다. 재단에도 C레벨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러면 재단 이사장 시켜줘. 그건 너인가?

어 모르겠네. 나는 이사장 하고 싶지 않아. 재단을 운영만 하고 싶지 권력을 잡고 싶진 않아.


그래, 그러면 내가 권력을 잡을 테니까 너가 돈을 내줘. 아니다, 나는 그냥 이사 할래.

네, 알겠습니다.

양 박사는 리더 기질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에는 진저리를 친다. 대신 행정을 무척 좋아한다. 그의 행정에 대한 애정은 그를 부지런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부지런함이 언젠가는 그를 N회사로, 실리콘밸리로, 창업으로 이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여정의 끝에는, 그가 늘 고민해온 양극화 문제와 계층 이동의 사다리, 그리고 중용 같은 가치를 실천하는 재단 설립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를 재단에 이사로 초빙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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