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아웃 - 인터뷰 전에 내가 바라본 친구
2024년, 막 봄기운이 생동하기 시작하던 어느 날. 금발 머리의 차쌤이 우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탄자니아, 케냐, 수단, 예멘, 아프가니스탄… 이름만 들어도 숨이 가빠지는 험지에서, 난민 문제에 평생을 바친 국제개발 전문가였다. 그가 오기 전부터 우리 사무실 사람들은 차쌤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가 걸어온 발자취만으로도 배울 점이 산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회의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면접 내용을 사무실에서 엿들으면서 그의 묵직한 카리스마를 음성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가 우리 곁에 합류했을 때는 카리스마 섞인 고압감보다는 친근한 존중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나이로나 경력으로 보나, 꼬꼬마인 우리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귀 기울여 들어주고 진심으로 소통해주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대외협력을 해온 베테랑이었지만, 내가 설기설기 만들어둔 우리 사무실 가이드라인을 기꺼이 따라주었다. 그건 그가 이 업계의 생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인종과 나이, 경험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조직의 규율도 지키고 현지의 다이나믹스도 존중해야 하는 복잡한 환경 속에서, 그는 위계 없이 진짜 사람과 사람으로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차쌤이 온 뒤, 조직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20대 중반~30대 초반의 미드-주니어들 사이에서 친목 모임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가 만든 단톡방이 생기고, 퇴근 후엔 뒷풀이를 하거나 주말엔 산에 오르기도 했다. 딱딱했던 사무실 공기는 적어도 우리 또래 사이에서만큼은 웃음이 흐르는 관계로 변했다. 힘들면 서로 속 얘기를 털어놓았고, 일을 부탁할 땐 장난스럽게 애교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는 원래 이렇게 친목 활동을 주도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당시 꽤 쑥스러웠다는데, 내 눈에는 그의 발랄함이 그 모든 쑥스러움을 완벽히 가려주고 있었다.
다만 나는 처음엔 차쌤과 그리 가깝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고슴도치처럼 조직 생활을 했다. 당시 만나던 애인은 내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나도 그 마음을 존중해서 연애에 마음을 다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가을이 오기 전까지는 회사 친목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차쌤이 진두지휘하는 모임을 보며, 그들이 참 싱그러운 청춘을 보내고 있겠구나, 정도만 짐작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차쌤은 윗사람에게 ‘들이박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불의를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물론 연차가 쌓이며 더 현명하게 싸우는 법을 익혔겠지만, 그 안엔 여전히 직선적인 결이 있었다. 그는 정치술로 상대를 이기는 대신, 진심이 담긴 논리로 정면 승부를 걸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의 최애 영화는 ‘럼블피쉬’였고, 그 속 ‘투어(鬪魚·싸울 투, 물고기 어)’라는 물고기에 이입한다고 한다. 싸울 것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끝까지 싸우는 물고기. 나 역시 인생에서 몇 번 그런 경험을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를 보며 내 미래를 그려봤다. 이렇게 들이받으며 살아도, 완전히 매장당하진 않겠구나. 차쌤처럼 멋지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 묘한 희망과 안정감을 얻었다.
그렇게 먼발치서 바라보던 차쌤과 본격적으로 친해진 것은 연애 상담을 하면서다. 거대한 국제개발 담론을 함께 논하더라도, 진짜 친밀함은 이런 내밀한 이야기에서 피어난다. 마침 우리 둘 다 애인과 위기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우연히도 내 당시 애인과 차쌤이 같은 MBTI였고, 차쌤의 애인과 내가 같은 MBTI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를, 각자의 입장에서 번역해주듯 설명하면서 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아마 임진각에 갔을 때였던 것 같다. 그 뒤로 차쌤은 나와 성격이 닮은 애인과 재결합해 잘 지내고 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니, 참 기쁜 일이다.
지금 차쌤은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숨가쁘게 다녀온 험지 생활들을 마무리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다. 최근 그는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여는 ‘인생 2막’을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 중인 국가의 채용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역시나, 험지를 향한 애정과 신념, 그리고 투어처럼 파닥이는 열정은 쉽게 꺼지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 업계 특성상 입사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는 분명 그 에너지를 이어가며 살아갈 것이다.
이곳의 어른들이 흔히 그렇듯, 그는 후배들에게는 이런 길을 권하지 않는다. 너무 힘든 길이라면서. 안정적인 길을 택하라고 진심으로 말해준다. 그러다가도 결국은 응원해준다. 내가 볼리비아로 떠날 때 그가 써준 편지를, 나는 아직도 힘들 때마다 꺼내 읽는다.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쌤의 삶을 힘껏 응원합니다.” 그 문구에 감동해, 나는 최근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라는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
내게는 한없이 따스하기만 한, 싸움 물고기 차쌤. 그의 인생 이야기는 누군가 꼭 기록해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선, 내가 그 시작을 열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