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아웃 - 인터뷰 전에 내가 바라본 친구
그저 한없이 미안함이 느껴지는 친구가 있다. 내겐 지안무가가 그런 사람이다. 지안무가는 8년 전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왔다. 외국인으로서의 기나긴 생활을 끝내고 이제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지안무가와 나의 인연은 교환학생 시절부터 시작됐다. 나는 2015년 텍사스의 작은 도시에 있는 기독교 학교로 교환학생을 갔다. 지안무가는 그 학교 한국 문화 동아리에서 활발히 활동했고, 내가 다니던 한인 교회에도 열심히 참석했다. 지안무가는 미국인이었지만 한국에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전공이 달랐지만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었다.
지안무가는 그야말로 재기발랄한 매력둥이었다. 그는 신체 능력이 뛰어났다. 어렸을 적에는 체조 선수를 했고, 후에는 춤을 췄다. 그래서 한국 문화 동아리에서도 회원들에게 춤을 가르쳐주고 안무를 짜서 함께 대회에 나가곤 했다. 말재간도 좋았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재미난 표현을 구사하고 유머를 던지곤 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였다.
내가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이번엔 지안무가가 우리 학교로 교환학생을 왔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학교 앞 술집인 다모토리에 가기도 하고, 내 친구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당시 애인과 지안무가와 셋이 어울리는 시간도 꽤 많았다. 함께 에버랜드에도 가고, 한강에도 가고, 춘천에도 놀러갔다―춘천은 물론 그의 토픽(TOPIK) 시험을 위한 것이었지만―지안무가는 나의 공개 토론 세션에도 와서 응원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교환학생 시기를 마친 지안무가는 한국어 실력을 더욱 쌓더니 대학 졸업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취직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에 비하면 팍팍하고 기회가 부족한 한국에 그는 애정을 가지고 돌아왔다. 결연한 용기를 가진 20대 청년이었다.
그는 춤을 곧잘 추고 안무도 잘 짰기에 한국 케이팝 산업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유명 춤 수업을 듣고, 그쪽 사람들과 인맥을 쌓고, 춤 대회나 쇼케이스에도 나갔다. 그가 가고 싶은 길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낯선 한국 땅에 와서 한국인조차 진입하기 어려운 산업에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의 용기. 그 용기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멋지고 투지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외국인에게 그리 열려 있지 않았다. 그래서 줄곧 그에게는 여러 힘든 일이 닥쳤다. 그게 한국인으로서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친구로서도 미안했다. 그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볼 수는 없으나, 지안무가는 언젠가부터 나를 원망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를 보이곤 했다. 안락하게 사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그에게 나는 기득권과도 같았던 걸까. 공감하려 할수록 그는 내게 위선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가 언젠가 내게 한 한국 연예인의 흑인 문화 전유(appropriation)를 지적한 적이 있다.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라 그에게 반박했는데, 그때 그의 눈빛에는 원망이 서려 있었다.
그가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국 사회가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너무 힘들어. 그래서 다른 나라로 옮겨갈까 고민 중이야.” 나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한국 사회가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친구가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시간이 더 빨리 오기를 바랐던 나는 곧장 이렇게 대답했다. “맞아, 네가 다른 나라로 가는 선택이 너를 더 행복하게 해줄 것 같아.” 그런데 그는 또 한 번 상처를 입은 듯 보였다. 한국을 떠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머물고 싶은 애증을 품고 있었던 그에게, 나의 확답이 마치 한국을 떠나라고 내모는 폭언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지안무가가 한국 사회 안에서도 행복할 수 있도록 이 사회를 바꾸는 데 조금 더 힘을 쏟아야겠다고.
한국 사회가 더디게 바뀌는 동안 그는 계속 버텼다. 오뚝이처럼 늘 다시 일어섰다. 그러다 8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듯하다. 8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나 역시 지금 외국에서 겨우 1년을 살고 있을 뿐인데도 외로움과 힘듦을 크게 느끼니까. 그렇기에 그의 8년은 이미 하나의 훈장이며, 값진 성취라 말해주고 싶다. 한국을 떠나기 전,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다. 그리고 그 8년의 시간을 기록해두고 싶다. 설령 그것이 한국에 대한 깊은 원망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