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떻게 팔 거예요?

by 페리테일


"작가님, 책 어떻게 팔 거예요?"


그 말은 예의 없는 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2002년 초, 저는 친구의 도움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출판사에 보냈던 원고를 고치고 그림을 그려 홈페이지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부터 2년 동안 계속 퇴짜를 맞았던 그 원고.)

물론 처음 원고와는 달라졌지만 그래도 시작은 거절당한 원고들이었습니다.

마침 인터넷 붐으로 개인홈페이지 붐이 시작되었고

소위 ‘퍼가요’가 유행하면서 여기저기 그림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소문이 나고 홈페이지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매일 제 홈페이지에 그림과 글을 서너 개씩 올렸습니다.


그해 여름 즈음, 처음으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첫 번째 연락이었습니다. 그것도 꽤 큰 출판사에서!!

2년 동안 거절만 당하다 처음으로 거절이 아닌 제안을 받은 것이라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었고 출판사에서 만났습니다.

담당자분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바로 책을 내지 말고 잡지에 연재하는 형식으로 먼저 알려나가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저는 원고가 충분히 쌓였으니(2년을 써왔으니) 바로 책을 냈으면 한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했습니다.

담당자분은 제 얘기를 듣고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작가님, 책 어떻게 파실 건데요? 아무도 작가님 몰라요.”


저는 그 얘기에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렇긴 하죠…”


그렇게 얘기를 마무리하며 더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차창으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뭐로 책을 팔지?’


그 말을 들었을 때 묘한 감정이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전에 이미 어마어마한 감정의 파도를 탔던 터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얘기를 나누던 담당자님의 태도가 나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했습니다.

글의 뉘앙스만 보면 기분 나쁘게 던진 말처럼 쓰였지만

(딱 저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없으니)

미팅의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거든요.

첫 만남에서 조금은 예의가 없는 말이라 생각은 들었지만

그게 또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요.


이것은 ‘좋은 선택을 했다 혹은 아니다’에 관한 글이 아닙니다.

첫 미팅 때 들었던 저 말은 지금까지 제게 남아 있습니다.

그 말이 상처가 되어서가 아니라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가장 좋은 타이밍에 가장 적합한 말을 들었던 것 같아요.

만약 에두른 말을 들었더라면 오히려 금방 잊혔을지도 모릅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저의 가장 큰 목표는 오래도록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래도록 그리려면 결국 제 그림을, 글을 팔아야 하거든요.

처음으로 제안받은 곳에서 들었던 저 말은 두고두고 제게 좋은 말이 되었습니다.

팔리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계속할 수가 없으니까요.

새해 첫날이 되면 저는 새로운 작업 폴더를 만듭니다.

그러면 언제나 첫 미팅 때 들었던 저 말이 떠오릅니다.

프리랜서 작가는 매년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잘되는 해와 잘되지 못하는 해가 나뉩니다.

제가 20년간 이 일을 해오고 있어서 이제 조금 그 출렁임을 아는 것 같습니다.

내가 잘된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고 지금 잘 안 된다고 끝없이 나를 추락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다정한 말을 좋아합니다.

저는 다정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말이 있어요.

그 말은 다정하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다정해도 될 일과 다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하고

오로지 기분에 따라서만 움직이지 않으면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날 제 얼굴에 닿았던 오후의 햇살은

참 따뜻했습니다.






교보문고

https://url.kr/r87mxe

알라딘

https://url.kr/fe3y7d


예스24

https://url.kr/cekhw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