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거 그려서 20년 살아남았습니다
이번책 작업하면서 나는 많이 위로를 받았습니다.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어 먹고살려고 하는 거라지만 작업을 하면서 위로받는 순간이 꽤 많아요.(적어도 나는)
힘들어서 그림을 그리고 복잡해서 글을 쓰고 속상해서 노래를 부릅니다
-
책이 온라인서점에 다 들어갔고 오프라인 서점에도 올라왔습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한번이라도 더 떠드는 것. 요즘 20년 전처럼 예전처럼 매일 글을 서너 개씩 씁니다. 한 사람에게만 닿아도 됩니다. 예전에도 그렇게 시작했으니까. 나는 낮게, 하지만 오래 날고 있습니다.
가끔(진짜 컨디션 좋았을 때)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가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이런 작업들이 꼭 전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하는 일이 특별한 사람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히 무료한 삶에 활력을 주기 위한 정도가 아니라 몇몇의 사람들은 인생이 바뀌는 수준의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좋아하면 직접 해보는 게 제일 좋고 그게 삶에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살아보니 진짜예요. 이걸 몸으로 체득하면 살아가는 거의 모든 일에 적용이 됩니다.
이 노래는 2003년에 집에서 녹음한 노래입니다. 딱 20년 전. 2002년에 첫 책이 출간되고 엄청 잘되어 나는 무얼 해서 먹고사나? 의 고민이 해결되었는데 정작 그 해부터 또 몸이 오락가락해서 몇 달씩 집밖으로 못 나갔곤 했습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일이었는데 또 그것만이었으면 못 버텼을 거예요.
https://www.youtube.com/watch?v=udyHzakP8Sw
그걸 조금 덜어준 게 노래 부르는 일이었습니다. 집에만 짱 박혀 있으니 안쓰러워 보였는지 음악 하는 친구가 녹음할 수 있는 세팅을 해주고 갔고 내 방은 이것저것 해서 최대한 소리 안나가게 하고 거의 매일 노래를 녹음했습니다. 잘하고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내가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할 수만 있으면 되었죠.
나는 그 작은방에서 매일 1센티씩 좋아졌습니다. 그림 그려서 좋아지고 글 써서 좋아지고 노래 불러서 좋아지고.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상처는 그렇게 아물어갑니다. 단번에 아무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크게 상처가 나고 그게 덧나고 나아지고 짓무르고 아주 천천히 새살이 돋습니다. 나는 몇십 년간 그 과정을 매번 봐왔는데
중간에 과정을 뛰어넘어 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상처의 치유 과정은 매번 똑같았습니다. 진물이 멎고, 피부아래 빨간 살이 보일 정도의 얇게 막이 생기고 그게 떨어질 때쯤 새살이 돋는 것. 그 외에 과정은 없습니다. 조금 더 빨리 나을 때도 있지만 과정을 건너뛰는 순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난 단번에 무언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제일 경계합니다. 과정을 건너뛰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99%의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아요. 그리고 나는 항상! 반드시 그 99% 안에 들어갑니다. 그러니 난 천천히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를 힘나게 하는 것들, 가슴을 뛰게 하는 일들 그런 것들만 잘 수집해서 담으면 됩니다. 그게 나에겐 ‘귀여운 그림’이었고 ‘귀여운 사람’이었고 ‘귀여운 생각‘들이었습니다. 나는 귀엽지 않지만, 나의 생은 귀엽지 않지만, 그림이라도 귀엽게, 생각이라도 귀엽게, 마음이라도 귀엽게.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든 하는 사람.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냥 무엇이든 하는 사람.‘쟤 아직도 하네?’이런 소리 듣는 그럼 사람.
우리의 마음속 이 골목에 불이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고 힘든 일이 닥쳤을 때 농담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상처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서 천천히 계속 갔으면 좋겠습니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