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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pr 23. 2024

어쩔 수 없이 당연했던 것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소설이란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이다. 소설은 묘사의 실재성을 위해 서사 구성과 진행에 구체적인 시공간을 만들어 실제처럼 꾸며내는데, 이것을 형상화라고 한다. 형상화된 소설 속 인물의 행위는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독자는 그 인물의 감정을 따라 세계에 더욱 빠져든다. 대부분의 현대 소설의 경우 등장인물은 평범한 개인인 동시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은 형상화를 통해 세계 속 인물의 실재성을 높임과 동시에, 인물의 모습을 통해 형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 글에서는 서사의 배경 세계와 등장인물, ‘나’와 ‘안’, 그리고 ‘사내’를 중심으로 소설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화려하지만 험난한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다시피 1964년 겨울의 서울을 배경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이 소설의 시공간은 실제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꾸며져 있다. 그렇기에 독자는 스스럼없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다음은 소설의 도입부다.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파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이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軍用)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 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당대 현실을 반영한 소설의 배경 묘사는 김승옥 특유의 건조한 문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산업화가 시작되는 시기의 쓸쓸한 느낌을 보여준 것이다. 무관심한 사회의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했던 소설의 의도를 볼 때, 이러한 구체적인 형상화를 활용하여 배경을 묘사한 것은 탁월하다. 한편, 군용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를 선술집 주인으로 설정함으로써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당시 정부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도 데모와 통금시간 등의 직접적인 묘사를 통해 억압적이고 갑갑한 현실을 드러낸다.


 이렇게 구성된 세계는 등장인물의 대화에서도 얼핏 얼핏 나타난다. 인물 간의 상호작용 사이에서 드러나는 형상화는 간접적이지만, 직접적 제시 이상으로 이야기의 실제성을 더해준다. ‘나’와 ‘안’의 대화에서 그들이 사는 세계, 즉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이 구체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컨대, ‘평화 시장 앞에서 줄지어 선 가로등 중에서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켜져 있지 않습니다….’라는 대사나, ‘서대문 근처에서 서울역 쪽으로 가는 전차의 트롤리가 내 시야 곳에서 꼭 다섯 번 파란 불꽃을 튀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건 오늘 밤 일곱 시 십오 분에 거길 지나가는 전차였습니다.’라는 대사에서 말이다. 이 장면은 각자만 아는 서울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것을 통해 그들은 그 세계 속에서 실제로 살아 숨 쉬는 듯한 리얼리티를 얻는다. 그렇듯, 인물의 상호작용에서 드러난 세계에 몰입한 독자들은 소설 중반부 또다시 등장하는 묘사에 1964년 서울의 겨울을 더욱 실감할 수 있게 된다. 다음은 소설에 드러난 묘사다.     


 전봇대에 붙은 약 광고판 속에서는 예쁜 여자가 춥지만 할 수 있느냐는 듯한 쓸쓸한 미소를 띠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어떤 빌딩의 옥상에서는 소주 광고의 네온사인이 열심히 명멸하고 있었고, 소주 광고 곁에서는 약 광고의 네온사인이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이 황급히 꺼졌다간 다시 켜져서 오랫동안 빛나고 있었고, 이젠 완전히 얼어붙은 길 위에는 거지가 돌덩이처럼 여기저기 엎드려 있었고, 그 돌덩이 앞을 사람들이 힘껏 웅크리고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위의 묘사에는 화려함과 험난함이 대조되어 나타난다. 돌덩이처럼 웅크린 거지와 너무도 다르게 번쩍이는 네온사인의 모습은 인간 소외를 더욱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앞서 ‘안’이 언급한 서울에 대한 설명—‘서울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과 더불어 이 소설의 배경과 주제 의식을 강하게 부각한다. 이렇듯, 소설 속 배경을 실재성 있게 묘사한 형상화를 통해 독자들은 제목에서 드러났던, 1964년 서울이 맞이해야 했던 겨울의 시대적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그러한 분위기는 ‘사내’의 등장 및 그 인물의 배경 서사 묘사를 통해 더욱 진해진다.     



 우연한 만남

 소설은 세 사람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나’와 ‘안’, 그리고 ‘사내’다. 인물들은 모두 익명화되었는데, 인물들의 존재를 추상화함으로써 효과를 거두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즉, 당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임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또한 이름을 감춤으로써 인간의 존재를 타자화시키고 소외시키는 사회적 분위기도 보여준다.


 ‘나’는 극 중 화자로, ‘스물다섯 살짜리 시골 출신, 고등학교는 나오고 육군 사관학교를 지원했다가 실패’한 뒤, 현재 ‘구청 병사계(兵事係)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 ‘나’와 선술집에서 만난 ‘안’은 ‘나’와 동갑인 스물다섯 살 청년이며, ‘나’는 구경도 해보지 못한 ‘전공(專攻)을 가진 대학원생, 부잣집 장남’이다. 소설에서 정확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김 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어떤 꿈틀거림이 아닙니다. 그냥 꿈틀거리는 거죠. 그냥 말입니다. 예를 들면…… 데모도…….’라고 말한 것을 볼 때, 기득권층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의 시민으로서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가 말장난처럼 언급한 ‘꿈틀거림’은 그 뜻 그대로 소극적인 항변이다. 이미 4.19 혁명을 경험한 그들에게 다시 찾아온 갑갑한 현실은 그들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가 할 수 있는 한 깨끗한 목소리로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 모습에서 그 항변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라는 ‘안’의 말에서 그러한 현실은 더더욱 명확해진다.


 그런 그들에게 갑자기 대화를 걸어온 ‘사내’는 ‘어디선지는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서른대여섯 살짜리’의 남자다. 1964년의 서울을 살아가는 이 세 사람은, 대부분의 현대 소설이 그렇듯 각자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그저 평범한 인물들이다. 그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사내’인데, ‘나’와 ‘안’이 ‘사내’를 만나며 본격적으로 서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내’는 ‘나’와 ‘안’을 따라다니며 술과 통닭을 사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아내가 오늘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서적 외판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사천 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울타리 곁에 앉아서 병원의 큰 굴뚝에서 나오는 희끄무레한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째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돈벌이를 위해 자기 아내의 시신을 병원에 판매할 수밖에 없었던 남자의 사정은 초기 자본주의가 팽배하던 당시 서울의 분위기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에 굴복해 버린 사람의 불행과 고통을 강조한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의 부조리함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들은 ‘나’와 ‘안’이 ‘사내’를 위로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도록 독자의 심리를 자연스레 유도한다. 소설은 독자의 기대를 마치 충족해 주는 것처럼 ‘사내’가 아내의 시체 판 돈을 다 쓸 때까지 ‘나’와 ‘안’이 함께 있어 주는 전개로 이어진다. 그러나 곧 세 사람이 함께 불구경하는 장면을 통해 서사의 흐름은 독자의 바람과 다른 방향임을 암시한다. ‘나’와 ‘안’은 철저한 제3 자의 시선에서 미용 학원의 화재를 구경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동감한 ‘안’의 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그들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화재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일 아침 신문에서 볼 것을 오늘 밤에 미리 봤다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저 화재는 김 형의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고, 이 아저씨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 화재엔 흥미가 없습니다. 김 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반면 ‘사내’는 불길 속에서 죽은 아내의 환상을 보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 화염 속으로 아내를 판 돈을 내던진다. 이윽고 ‘나’는 돈 다 쓴 셈이 된 ‘사내’와 헤어지려고 한다. 하지만 ‘사내’는 홀로 있기를 두려워했고, 결국 세 사람은 여관에 들어간다. ‘나’는 ‘사내’를 위해 모두 같은 방 쓰기를 제안하지만 ‘안’은 무심하게 각방 사용이 낫겠다고 말한 뒤 가장 먼저 세 사람이 모인 자리를 떠난다. 서사 내내 개인주의가 얼핏 보였던 ‘안’의 성향은 이 대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서로 다른 방을 사용하는 물리적인 공간 단절을 통한 심리적 끊어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안’을 따라 각방을 사용한 ‘나’ 역시도 이 장면에서 단절된 사회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자연스레 여긴다. 그렇기에 거짓으로 숙박계를 작성한 것이다. 물론 그 거짓 숙박계 작성에는 ‘사내’에 대한 책임 회피의 여지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안’과 달리 ‘나’는 ‘사내’의 죽음을 짐작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의 죽음 소식을 들은 뒤에 내뱉은 ‘역시…….’에는 ‘나’ 역시도 어느 정도 ‘사내’의 끝을 예상했다고 추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국 두 사람 다 ‘사내’의 자살을 짐작했음에도 그의 불행에 엮이고 싶지 않은 탓에 그저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다. 그러한 회피의 심리는 ‘사내’가 죽은 뒤 ‘나’의 발 쪽으로 기어 오는 개미가 마치 자신을 붙잡을 것처럼 느꼈다는 표현과 그렇기에 얼른 발을 옮겨 디뎠던 행동을 볼 때 더욱 느낄 수 있다.


 결국 ‘안’과 ‘나’는 죽은 ‘사내’를 그대로 둔 채 도망치고, 서로도 헤어짐으로써 이 소설은 맺어진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라는 헤어지기 직전의 ‘안’의 체념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겨울의 추위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그 시대 속 인물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세 인물의 우연한 만남은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화합을 추구하지도 못한 채 마무리되어 독자들에게 더 깊은 여운과 성찰을 남긴다. 서로를 소외시킬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행동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겠지만,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라는 ‘나’의 말처럼, 그 시대 속 인물들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회 전체적인 문제였음도 명백하다. ‘안’과 ‘나’의 무관심함과 책임 회피는, 돈을 위해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아야 했던 ‘사내’처럼 1964년 서울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당연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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