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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Jul 12. 2024

부조리에 반응하는 자들 -1-

《다크 나이트》(크리스토퍼 놀란, 2008)

 들어가며

 영화 《다크 나이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중 두 번째 작품으로,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 그 영향으로 탄생하는 투페이스의 이야기를 현실적이고 진지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는 히어로와 빌런이 싸우는 오락적이고 단순한 ‘히어로 장르’를 초월하여, 영웅의 고뇌와 선과 악의 경계, 부조리한 세상과 정의에 관한 고찰을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이 글에서는 배트맨, 조커, 그리고 투페이스를 중심으로 각각이 어떠한 상징으로 활용되었는지, 그들이 어떤 심리를 가지고 그러한 행동을 하였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만들었고 그들의 존재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중점으로 영화를 비평해 보고자 한다.

  

 배트맨, 고뇌하는 영웅

 배트맨의 심리를 다룰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브루스 웨인의 트라우마다. 그는 부모님의 비극적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배트맨을 선택한다. 그는 범죄자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해 ‘박쥐’를 상징으로 사용하여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범죄와의 전쟁을 이어간다.


 대부분은 ‘배트맨’이라는 가면 속에 브루스 웨인의 진정한 정체성, 내면의 트라우마를 숨겼다고 분석하고는 한다. 그러나 원작 코믹스 속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의 가면이 아닌 그의 진정한 자아다.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의 사회적 인격, 페르소나로만 사용될 뿐이다. 강도의 손에 부모가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순간, 브루스 웨인의 삶은 범죄에 대한 복수로만 향하기 시작했고, ‘브루스 웨인’이라는 자아 역시도 그의 부모와 함께 그 길바닥에서 죽었다. 그날 이후 그에게는 더 이상 브루스 웨인의 자아는 남아 있지 않으며, 오직 배트맨으로서의 자아만이 남아 있다.     


“나는 복수다. 나는 밤이다. 나는 배트맨이다.”     


 아쉽게도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전반적으로는 이러한 면모는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브루스 웨인이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자아이며, 배트맨을 극복해야 할 그림자로 규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작 코믹스의 팬이라면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전작 《배트맨 비긴즈》에서 트라우마에 대해 이미 충분히 다루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더 이상 그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 속 배트맨의 주된 심리 갈등은 무엇인가? 바로 고뇌다.


 배트맨은 자기의 모습을 따라 범죄자와 싸우는 ‘배트맨 민병대’를 보며 고민을 시작한다. 그는 배트맨 활동 통해 부패한 고담에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자경단의 등장은 배트맨의 존재가 악에 대한 폭력적 보복, 사적 제재를 부추기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실 전작에서 다루어진 배트맨의 등장은 규범과 공통의 가치관 등이 흔들린 ‘아노미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에밀 뒤르켐에 따르면 사회적 규제가 무너질 시 사회적 통제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개인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데, 이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고담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마피아 등 범죄자와 결탁한 경찰과 판검사들은 부패했고, 공적 제재의 공정함이 사라졌기에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배트맨은 막스 베버가 정의한 ‘합법적 권위’의 절차를 따르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도덕에 따라 행동한다. 하지만 동시에 ‘불살주의(不殺主義)’라는 선을 지키며 법을 존중하고, 궁극적으로 질서 있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그러한 이중성은 무너진 규범의 혼란 속 질서를 세우려는 시도이자, 아노미 상태를 더욱 부추기는 아이러니를 지닌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배트맨은 서로 자기를 향한 서로 다른 여론을 맞이한다.


 그렇기에 그는 고담시의 적법하고 정의로운 검사, 일명 ‘백기사’로 불리는 하비 덴트에게 주목한다. 그는 하비 덴트를 보며 그가 합법적 절차에 따라 진정으로 정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한다. 더 이상 배트맨의 존재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며 이윽고 이 일을 그만둘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한다. 또한 그가 배트맨을 그만둔다면 그는 레이첼 도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비록 지금은 하비 덴트의 연인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가 사랑했던 존재다. 그녀는 전작에서 ‘배트맨이 고담시에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겠다’라는 말을 브루스 웨인에게 전했다. 배트맨이 하비 덴트의 정의로운 사명감에 주목하고 언젠가 자기 정체성을 내려놓을 날을 기다리는 기반에는 이러한 심리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중 조커가 등장하고 배트맨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연쇄 살인을 시작한다. 조커는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데, 절대 악의 존재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정의를 추구하려는 배트맨을 더욱 고뇌에 빠지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두 존재 다 아노미 상태를 등에 업고 나타났으며 그 상태를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즉 배트맨과 조커 모두 개인의 의지로써 움직이기에 시민들의 사회적 불안을 가속시키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 그는 아직 고담의 영웅이 아닌 자경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배트맨의 그러한 존재론적 고민은 영화 내내 이어진다.


 한편, 결국 고담시의 정의로운 경찰 제임스 고든이 저격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지자,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하비 덴트의 돌발 행동으로 그것이 저지되는데, 그가 자신을 배트맨이라고 밝히며 진짜 배트맨을 보호한 것이다. 이는 배트맨의 존재가 아노미 상태의 고담을 정화하는 것에 어느 정도 필요함을 그가 시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내부 정의가 무너진 상황에서 그것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것은 외부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 중 배트맨은 조커를 죽일 기회를 얻는다. 그때 그의 존재론적 고민은 극대화된다. 만약 그가 조커를 죽인다면 더 이상 조커의 범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법규를 무시하고 개인의 의지에 따라 타인의 목숨을 해한 행동은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를 조커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결국 그는 조커를 죽이지 않음으로 그가 여전히 선을 지킨 채 정의를 추구한다는 것을 알리며, 조커와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한다.


덕분에 조커는 체포했으나 이번에는 하비 덴트와 레이첼 도스가 납치당하고, 배트맨은 자기 신념(하비 덴트)과 사적 감정(레이첼 도스)의 고민 끝에 레이첼 도스를 살리기로 택한다. 그러나 조커는 두 사람의 위치를 사실과 반대로 알려준 상태였고 결국 레이첼 도스는 사망한다. 게다가 살아남은 하비 덴트도 얼굴 절반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고, 그것도 모자라 조커는 탈옥한다. 그 모습을 본 배트맨은 절망하고 고뇌에 빠진 모습을 보인다.     


 “나 때문에 죽은 건가요? 나는 선한 마음을 고양하고 싶었어요. 광기나 죽음을 불러오는 게 아니라요.”

 “레이첼은 도련님의 대의를 믿었습니다. 우리의 대의를요. 고담에는 도련님이 필요해요.”

 “아뇨, 고담에 필요한 건 진짜 영웅이죠. 그 진짜 영웅의 반쪽이 나 때문에 날아갔어요.”

 “그러니 당분간은 도련님이 나서야죠.”     


 집사 알프레드와의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은 배트맨은 다시 조커를 추격하고 그 끝에 그를 막아내는 것에 성공한다. 그때도 배트맨은 조커를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배트맨은 그를 붙잡으며, 자신은 그와 다름을 공표한다. 자기의 죽음을 예상하고 미친 듯이 웃던 조커는 이번에도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자, 정색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록 고담의 백기사는 조커에 의해 타락했지만, 배트맨만은 여전히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정의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것을 통해 관객은 조커와는 차별되는 배트맨의 목적성을 실감할 수 있다.


 조커를 상대한 후, 배트맨은 투페이스로 타락한 하비 덴트를 제압한다. 그는 자기의 불살 신념을 깨뜨리면서까지 그를 막아낸다. 그것은 애써 선을 지켰던 배트맨의 추락이며, 하비 덴트의 추락이다. 그러나 배트맨은, 고담의 희망이었던 정의로운 검사 하비 덴트의 추락을 시민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배트맨의 존재에 대한 고뇌 끝에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 ‘흑기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로 결정 내린다. 인즉, 투페이스가 저지른 모든 살인을 자기가 뒤집어쓰겠다는 말이며, 투페이스가 아닌 ‘백기사’ 하비 덴트로서의 모습을 고담 시민들에게 기억시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것들을 감당하려 한다. 흑기사적인 배트맨의 면모는 배트 포드를 타고 도망치는 그를 보며 제임스 고든과 그의 아들이 대화를 나눌 때 더 강조된다.     


 “그가 왜 도망가는 거죠, 아빠?”

 “우리가 쫓아야 하니까.”

 “하지만 잘못한 게 없는걸요.”

 “그는 고담에 걸맞은 영웅이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아니란다. 그러니 쫓는 거야. 그는 감내할 수 있으니까. 그는 우리의 영웅이 아니니까. 그는 침묵의 수호자이자, 우릴 지켜보는 보호자… 어둠의 기사란다.”  

   

 이후 화면이 암전 되고 등장하는 영화 타이틀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는 관객에게 흑기사로서의 상징을 가진 배트맨을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그렇게 배트맨은 아노미 상태를 부추기는 자경단에서 고담시를 위한 진정한 영웅으로 각성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사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는 조커의 존재감이 큰 탓인지 상대적으로 배트맨은 묻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지만 그의 존재론적 고뇌가 영화를 전체적으로 견인했음은 틀림없다. 영화의 엔딩 장면이 관객에게 충격과 여운을 줄 수 있던 까닭이 그것이다. 배트맨과 함께 영화 내내 함께 고뇌했던 관객들은 결국 그 영웅의 숭고미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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