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을 타고 내 유튜브 계정에 올라오기 시작한 오은영 리포트 결혼 지옥 중, '음소거 부부' 편을 보고 공감하는 마음에 몇 자 적어본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특히 육아를 시작하면서 지독하게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때의 시간을 버텨냈는지 당사자인 나 조차도 신기할 지경이다. 그동안 느꼈던 나의 감정들이, 나의 고민들을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서 듣고 나 보니 엄청 반가웠다. 공감과 동질감에 대한 반가움이었다.
"남편의 존재 가치를 모르겠어요."
"육아를 안 할 거면 살림을 맡아서 하던가, 살림을 안 할 거면 육아를 맡아서 하던가."
"나를 철저하게 무시해요, 벽에다 대고 말하는 느낌이에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나도 한번 즈음 아니면 아직도 종종 생각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그분의 인터뷰 내용이나 관찰 영상을 보면서 그분의 마음속이 너무 훤히 들여다 보인다는 착각이 들었다. 지금 짓고 있는 그 표정, 생각, 화, 지침, 웃고는 있지만 갑자기 또르르 흐르는 눈물, 혼자서 견뎌냈을 그 시간 모든 것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너무 심각하게 감정이입이 돼버렸다.
그 분과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자.
첫째, 집안일에 대해서 한쪽이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집안에 빨랫감이 쌓여있다. 나는 세탁기를 돌린다.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아이들에게 어떤 음식을 해줘야 할까? 일단 밥을 안친다. 아이가 종이 오리는 것을 도와달라 한다. 이건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하며 같이 시간을 보낸다. 머리 한편으로는 어떤 재료를 꺼내 어떤 음식을 할지 계획을 세운다.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이고 싶고 집안일도 마냥 놓고 있을 수 없다.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행동한다. 이는 책임감이 너무 강한 성향이 문제일 수도 있다. 해야 할 일은 책임감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몸이 힘들어도 지쳐도 할 수밖에 없다. 그 정도가 상대보다 강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일은 내가 하고 있고, 힘들어지고, 그에 대한 불만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서 상대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은가에 대해 화가 나고, 행복했던 사랑했던 그 감정들이 말라버린다. 상대에게 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느냐 따지면 서로에 대한 싸움으로 이어진다. (이건 세계 공통인 것 같다.) 싸우기 싫으니, 싸워도 변하지 않으니 그냥 묵묵히 나 혼자 그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존재의 가치에 대한 의문이 생겨 든다. 이미 사랑했던 마음이 식어버려 나 혼자 사는 것과 뭐가 다르냐 생각이 든다. 어떤 계기로 인해 빠르게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이건 정말 켜켜이 쌓아져 올라버린 두꺼운 화석과도 같은 감정이다.
사람이 참 신기하게도 누군가 해주면 그 해주는 대로 게을러진다. 집안일에 대해 분담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고 고민을 하고, 그래서 그 방법론에 대한 책도 많이 나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만큼 집안일 분담은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로 다가왔다는 것이겠지. 참 사는 게 힘들다. 나와 그분은 그 편향된 정도가 심하기에 상대의 존재의 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존재의 가치가 없는 사람과 왜 같이 살아야 하는가.
둘째, 불편한 상황에 대한 회피다.
문제가 생기면 회피를 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회피를 한다. 상대의 잘못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상대의 회피로 인해 남은 사람은 속이 타들어가고 남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해서 다 감당해야 하는가. (책임감이 강한 게 잘못이지.)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미워지고 대화하기 싫어지고 업무와 같은 비즈니스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입사동기와 한 팀이 되었다. 동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나는 책임감이 강하고 상대는 불편한 것을 피하는 회피형이다. 게다가 프로젝트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동기보다 내가 더 강하다. 결론적으로 프로젝트의 대부분의 일은 내가 한다. 나는 매일 야근에 스트레스에 몸이 축나간다. 이 부분을 인정해주고 보상을 해줄 사람이 없다. 결국 프로젝트는 두 사람의 이름으로 공표되고 나는 상대적으로 억울하다. 이런 입사동기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셋째, 서로에게 위안이 돼주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
왜 관계가 변하게 된 건지에 대해 나도 명확하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조선시대처럼 정략결혼도 아니고 내가 선택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했는데 왜 나는 그에게 위안을 얻지 못하고 위안을 주고 싶지 않은 걸까. 만약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육체적으로 정말 너무 힘들지만 상대가 내 옆에서 나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였다면 조금 다른 관계로 발전될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사랑받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충만하다면 어느 정도의 불만은 수용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관계에서 느끼는 것은 나 혼자 진흙 구덩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고, 남편은 꽃길까지는 아니더라도 흙길 정도는 걷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사랑받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나에게 사랑은 같이 진흙 구덩이에서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난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음소거 부부처럼 상담을 받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이건 나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니까. 그런데 선뜻 상담을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현재 생활이 문제라고 느끼지 않을수도 있고, 어렴풋이 남편이 상담을 싫어할 것 같다는 혼자만의 설레발일 수도 있다. 나의 목표는 남편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미워하지 않고 내가 원래 사랑했던 그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의 장점을 보며 칭찬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그게 현재까지의 나의 답안지다.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오은영 박사님이 마지막에 내주었던 솔루션이 부부 상담이었다. 그분이 상담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찾으시길, 그 분의 앞에 놓여진 삶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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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소거 부부'의 그분께,
이름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반갑습니다.
저 역시 당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당신의 수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방송에 나오는 것이 엄청나게 큰 용기였을 텐데, 아이들을 위해 다시 한번 용기 내신 것도 존경합니다.
많이 힘들었겠어요. 마음이 힘들겠어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이리와요 안아줄게요. 수고했어요. 맘껏 울어도 됩니다. 토닥토닥.
이런 위로를 꼭 해드리고 싶었어요. 어쩌면 저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기회가 된다면 밥 한번 대접하고 싶네요.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멋있게 답을 찾으시길 바래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