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같이 살고 있는 배우자의 관계를 정의해 본 적이 있는가? 난 요즘 우리 부부의 관계에 대한 정말 많은 생각을 한다. 그만큼 결혼 생활은, it's so complicated!!
고민이 많다는 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는 것이 아닐까. 괴리가 생기는 이유는 내가 변했거나 상대가 변했거나 서로가 다른 방향으로 변한 것이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결혼을 선택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변했다. 사랑이 변하니 사람이 변하지. 결국 이 관계의 문제는 나에게 있다는 것. 그렇기에 배우자를 탓할 수는 없다. 어리석은 젊은 날의 나를 탓해야지. 결혼생활 10년 차의 평범한 여성이 실패라고 판단한 현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언젠가 결혼을 할 예정이나 혹은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분들이 참고하시면 좋을 듯.
결혼을 선택했을 때의 나에게 배우자란,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영원히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와 같은 막연한 해피엔딩이었다. 나는 나의 의지가 강하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고 구체적인 기준은 없었다. 내가 당시 현 배우자를 선택했을 때의 기준이라 함은, 노담/술을 좋아하지 않을 것/가정적일 것/배울 점이 많은 상대 였다. 대부분의 기준은 어릴 적 부모님의 관계에서 보고 자라왔던 내용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다. 엄마가 불행했던 원인을 제거하면 나는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해서 선택한 사람이기에 나의 의지가 있다면 언제나 행복하라 것이라 착각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내가 변하기 시작한 시점은 나 자신에 대해 파악이 분명해지기 시작하면 서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정한 기준이나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휘둘리며 잡히지 않을 것을 쫓으며 불행하게 살아간다. 어렸을 적 나에게 행복과 성공 역시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 이름 있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 내 이름으로 낸 성공 사례를 책으로 내는 것 등등 MBC 성공 신화에 출연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하지만 현실은 나에게 '넌 그런 인재가 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듯했고 하루하루가 가시밭길 같았다. 진심으로 행복하지 않았다. 과연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지옥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고 나를 극한으로 몬다고 해서 성공과 행복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결국 성공에 골인한다고 하면 과연 그 행복은 영원할까? 아니면 한시적인 것일까. 난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또 지옥의 길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의 성공의 달콤함이 흔하지 않기에 시간적으로 보면 인생의 90%는 불행한 것이 아닐까. 10%의 짧은 시간을 위해 90%를 희생해야 하는가.
핑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네가 지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패한 것에 대한 핑계를 찾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진심으로 행복하지 않는다면 삶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나만의 행복 기준을 찾기 시작했다. 모든 시작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당신의 어릴 적 꿈, 현재의 꿈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하고 살고 싶나요?)
나는 어렸을 적 꿈이 없었다.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고 그런 나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꼈다. 인생 제일 처음 맞닥뜨렸던 고민은 어느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가 였다. 선생님과 부모님의 조언은, 좋아하는 것 혹은 잘하는 것으로 선택하라고 하셨다. 자존감이 낮고 아직 덜 익은 10대의 나는 잘하는 게 없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뭘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결과는 '모르겠다'였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흘러갔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그냥 20대가 지나갔다.
본격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은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인 것 같다. 처음에는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동일선상으로 타인의 이해심이 깊어졌고, 그러면서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되었다. 왜 사람들은 성격이 다 다를까? 이 상황에서 저 사람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왜 그럴까? 어떤 의미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육아 서적을 읽다가 보니 아이의 교육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죽어가는 아이들의 대해 알게 되고 그런 환경이 어떻게 형성되게 되었는지 역사를 찾아보게 되고 관련 영화를 보다가 역사적 배경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 보니 관심 있는 책과 없는 책이 구분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구분하게 되었고 나에 대해 본격적으로 파악이 가능했다. 여기서 내가 얻은 주요 깨달음은, 나는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할 수없고 사회가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꼭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아를 하다 보니,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이해심이 생기게 되었고 다양성을 존중하게 되었다. 그 다양성을 내 인생에 대입하다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타인이 아무리 해야 한다고 강조해도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과감히 포기하고 나만의 방식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알고 난 후, 내가 어떤 배우자와 사회가 정한 결혼제도 아래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내가 결혼생활에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기에 그 원인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행복하기 위한 배우자 기준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기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째, 대화가 잘 통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듣고 말하는 것에 대한 예의가 있어야 한다.
우리 부부의 대화는 거의 통보 수준이다. 의견을 물어보면, 상대는 대답이 없다. 왜 대답이 없냐고 하자 생각하는 중이란다. 이렇게 되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대답이 없는 상대를 보면 나는 나를 무시받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어떤 정보에 대한 통보로 끝나버린다. '대화가 없으면 어때?' 하고 말할 수 있다. 이건 개인의 판단이다. 나는 대화에서 얻는 기쁨이 굉장히 크고, 연애 때는 이 기쁨을 친구들과 누렸다. 결혼하고 육아를 하면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고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이 배우자다. 배우자와 대화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면 내 결혼생활을 조금 성공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처럼 대화를 통해 얻는 기쁨이 크지 않더라도, 대화는 중요하다. 나는 상대방과 완전히 같지 않기 때문에 모든 차이는 대화로 맞춰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에게나 중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둘째,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10가지 행복에 있어서 그중 5개 이상은 상대와 공통 관심사여야 한다.
나는 대화를 통해 얻는 기쁨이 큰 사람이다. 그럼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관심사가 비슷해야 한다. 모든 성향이 100% 같을 수는 없고, 좋아하는 관심사가 50% 이상 비슷하다면 대화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심사가 너무 다르면 대화의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부부 관계가 언제나 좋을 수 없다. 그렇기에 좋지 못한 관계에서 다시 좋은 관계를 돌아서기 위한 매개체가 필요하다. 그런 요소가 공통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하는 것이 같다면 다시 눈을 반짝이며 대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대화 주제뿐 아니라 취미나 취향이 비슷한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같이 술 한잔 하는 것을 좋아한다던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비슷하다던가, 듣는 음악 취향이 비슷하던가, 취미가 같다던가. 한마디로 코드가 비슷한 게 있어야 한다.
3. 상대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한다. 존중과 신뢰는 구속에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나는 구속하는 것이 싫다. 내가 구속하지 않으면 상대도 나와 같이 구속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자 친구 때문에 내 친구관계의 정리가 필요하다거나 내가 눈치 보게 만든다 하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다.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시기에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결혼 생활은 길고 이 열정은 언젠가는 사그라든다. 그때 내가 남편 때문에 친구관계가 정리되거나 틀어져버리면 너무 속상하다. 나에 대한 존중이나 신뢰가 있다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줬으면 좋겠다. 이 부분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중요한 기준으로 잡았다.
나와 같이 실패하지 않고는 그 기준을 정하기 까지가 좀 막막하다. 정확하고 분명한 방법은 다양한 연애를 통해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연애 경험을 하다 보면 내가 못 견디게 화가 나는 부분이나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 부분이 분명해질 것이다. 성향이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부분이 명확하게 비교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짧은 연애를 지속적으로 많이 하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 짧은 연애 기간은 콩깍지가 씔 가능성이 높기에 실제적인 나의 행복 포인트를 찾기가 어렵다. 남자 친구가 뭘 해도 좋은 그 시기에는 이성적인 나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결혼생활은 길고 현실이다. 콩깍지가 씐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란 것이다. 그 현실에서 내가 행복하려면 좀 더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모든 판단을 실제적인 경험으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영화/드라마를 통한 간접 경험도 적극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연애경험도 별로 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정말 우습고 신뢰성이 떨어지지만 결혼 이후 수도 없는 나날을 고민한 사람으로서 하는 이야기니 참고해주시길.
'내가 선택한 결정을 후회하는가?'라고 물어본다면. 2022년 현재의 대답은 'Yes'이다. 후회한다. 너무 성급하게 결혼을 결정한 것 아닐까. 나에 대한 확신 없이 막연한 의지로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 아니었을까. 피를 나눈 가족과도 함께 사는 것이 힘이 드는데, 남과 함께 사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러니 정말 신중히, 자기 자신의 행복 포인트를 잘 알고 그 기준에 맞는 배우자를 선택하시길 바란다. 모든 사람이 다르기에 정답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잊지 마시길 바란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어떻게 할 거냐고? 지금 나와 배우자의 관계는 아이들의 부모라는 끈이 있다. 그 끈으로 함께 살아갈 예정이다. 지금 다른 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나에게 너무 감성적인 판단이고, 다른 사랑을 찾는다고 해도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만큼 나는 이기적이고 혼자의 삶을 원한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범위 내에서 나는 나의 혼자의 삶을 즐기려 한다. 나에게 배우자는 '룸메이트'이다. 집을 공유하면서 아이들의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게 2022년 현재 우리 부부 관계에 대한 나의 정의다.
주의 : 부부 관계의 정의는 영원하지 않으며 두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