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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마 Jan 24. 2022

관계의 기폭제가 된 남편의 아빠 교육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여러 종류의 무료 교육을 발견할 수 있다. 몇몇 지자체 사이트를 손품 팔다 보면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고 신청 안내가 나와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부모교육이 많이 눈에 띄었다. 돌봄을 하는 양육자가 조부모인 경우를 위한 조부모 교육도 있었다. 올해는 유난히 아빠 교육이 많이 눈에 띈다. 엄마인 내가 받는 교육이 아니라 아빠가 받아야 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남편에게 문자를 전달해 주었다. 전화해서 신청하면 된다는 멘트와 함께.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다.


남편은 낯선 곳에 전화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다. 내가 너무 바빠서 전화 부탁을 하면 항상 나에게 상대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묻곤 한다. 그러면 남편은 그냥 내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전화에 반복하여 말하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남편이 낯선 곳에 전화하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것 느꼈다. 홈페이지 신청이 아닌 전화 신청이었기에 당연히 남편이 신청 안 할 줄 알고 있었다.


'아빠가 육아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항상 이것이 불만이었다. 뱃속에 아이가 있을 때부터 주말부부였지만 유독 남편은 아이에 관심이 없었다. 2세 계획을 하며 아이를 갖고 싶냐는 질문에 남편은 항상 모르겠다는 대답을 돌려주고는 했다. 그에 대한 불만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를 가진 것이 내 욕심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이는 내가 갖고 싶어 했으니 육아의 힘듦도 나 혼자 감내를 하자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아이를 갖고자 계획한 내가 잘못인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포기가 됐다. 남편에게 육아에 대한 관심을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면 바라는 게 생기고 바라는 데로 되지 않으면 화가 생긴다.


아빠 교육 안내 문자를 보내면서도 기대하지 않았다. 신청했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다. 이것 또한 잔소리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아이 친구의 엄마로부터 문자를 하나 받았다.

'혹시 아빠 교육 신청하셨어요? 남편이 A아빠도 교육 듣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편의상 남편을 A아빠라고 했다.)


코로나라 교육은 ZUM으로 진행됐고 화면을 통해 남편을 본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다용도실에 못 보면 짐꾸러미가 있었던 것 같다. 아빠 교육에 대한 책, 각종 놀이 재료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남편은 정해진 일정에 맞추어 교육도 참여하고 아이와 놀이도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요리도 하고 석고상도 만들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석고를 이용해 손 모양을 만드는 활동에 푹 빠지다 보니 아빠는 추가로 석고가루를 더 사와 계속 주먹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모든 결과가 완벽하지는 않았다. 주먹 모양을 만들다 석고상의 손가락이 부러져 큰아이가 울고 불고 난리가 나기도 하고, 송편을 만들다 반죽 물 조절을 실패해 송편이 정말 떡처럼 늘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린 완벽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지금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빠와 아이와의 교감을 위해 이런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아빠와의 온전한 놀이 활동을 즐겼고 너무나 좋아했다. 아빠 역시 아이들이 좋아하니 더 신이 나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속상해하니 부러진 손가락 조각을 순간접착제를 사다가 붙여 주기도 했다. 내가 순간접착제를 사다 달라했다면 아마 주말이 올 때까지도 순간접착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고 결국 내가 사러 나가야 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만족감이 아빠를 재빠르게 움직이게 했다.


어느 날은 아빠가 감정카드를 통해 아이의 감정을 물어봤다. 몇 번 설명도 해주고 감정카드를 이용해 관계를 개선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시간이 지난 지금 감정카드는 서랍 구석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시도를 해보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별 기대하지 않던 아빠 교육이 조금씩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내가 꿈꿔온 가족에 다가가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변화였다. 어쩌면 아빠의 육아휴직이 가장 큰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빠 교육을 쉽게 접하는 것을 보면 세상은 변하고 있다. 그에 따라 느리지만 아주 천천히 내 삶도 변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 희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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