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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마 Sep 03. 2021

요가를 시작하고 얼음틀과 이별하다

요가와의 만남


여성이 몸이 늙기 시작하는 시점은, 나이와 관계없이 출산 후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이렇다. 임신 기간과 출산 후 얼마간의 기간 동안은 근력 운동을 할 수가 없다. 물론 평상시에 꾸준히 근력 운동을 해오신 분들은 괜찮다고 하나, 평상시와 다르게 운동하다가 배에 힘이 들어가 아기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뒷감당을 어찌할 수 있을까. 그 위험을 무릅쓰고 운동할 용기는 없다. 자연스럽게 1~2년 동안 몸속에서 근력과 탄력은 빠져나간다. 몸이 노화가 급작스럽다.

또, 임신은 입맛과 체질을 변화시킨다. 입덧으로 고생하신 분들은 특정 음식을 기피하게 되고 원래 먹어도 살 안 찌던 사람들도 임신으로 인해 부기인지 살인지 모를 무엇들과 함께하게 된다. (출산 후, 날씬이 체질이 되신 분들은 아직 못 봤다.) 거울 속 모습이 처절해지고 이는 곧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폭삭 늙었구나." 하는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 해결된다. 노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기 엄마가 자기 자신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은,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현실적으로 남편이 퇴근 후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나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거나,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도우미를 고용하여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 수 있거나.


어쨌든 아이 둘 엄마인 나 역시,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두고 외부로 운동을 다닐 수 없었다. 아이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먹이고, 씻기고, 잠깐 놀아주다, 얼른 재워야 하루가 끝난다. 그래도 운동을 안 하면 정말 안될 것 같아 시작한 몇 가지 운동방법이 있다.


첫째, 유튜브 홈트. 소요시간 20분~30분.

생각보다 정신력이 강해야 한다. 강한 정신력으로 유튜브에서 다른 유혹들을 뿌리치고 홈트를 켜는 순간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같이 운동을 한다며 달라붙는다. 상대적으로 30분이 굉장히 길다.

둘째, 새벽에 나가 호수공원 한 바퀴 걷기. 소요시간 60분.

이것 역시 정신력이 강해야 한다. 일단 일찍 일어나야 하고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지친 몸으로 긴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또한 아침의 피로함이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셋째, 아파트 계단 오르내리기. 소요시간 30분.

최고 추천 운동. 30분의 짧은 시간에 최상의 효과를 얻었다 자부한다. 30층 아파트 2번 반을 오르면 30분 정도 시간이 든다. 약 75층 정도 오르는 것이다. 심장이 방망이질치고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린다. 장점은 따로 나갈 준비라는 게 필요 없고(홈웨어에 슬리퍼면 준비 끝), 이어폰만 있으면 지루하지도 않다. 그리고 30분은 아이들 스케줄에 타격이 없다. 조심해야 할 것은 무릎 관절. 너무 무리하면 무릎이 아프다. 내려올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은 필수다.


올해는 남편 육아휴직의 해이기에 남편이 육아를 도맡아 나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나는 전생에 어느 정도 나라를 구하는데 일조를 했나 보다. 올해가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근력을 위한 필라테스와 PT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가격도 부담스럽고 집 근처에는 마땅한 곳이 없어 고민만 하고 있다가, 집 근처 요가원이 새로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하기 전 새벽 요가를 했었던 적이 있었다. 요가를 하면서 혈액순환도 원활하고 몸 선도 예뻐지는 경험을 했다.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 체험 수업을 신청했다. 무료인데 한번 해보지 뭐, 하는 심정으로 하타 체험 수업을 신청했다. 하타 요가는 일정 동작을 조금 오랜 시간 유지하는 요가이다. 각자 사람마다 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요가 선생님께서 할 수 있는 만큼 추가적인 옵션 동작을 알려주신다. 그런데 내 몸뚱이가 마지막 옵션까지 되는 것이다. 30대 중반이 되어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았나 하는 착각에 빠졌다. 잘한다고 생각하니 재미가 생겼다. 그 후 정식 등록을 했다. 퇴근 후 일주일에 세 번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오롯이 나의 몸과 대화를 하는 시간을. 생각보다 요가는 내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건강해지는 느낌에, 어려운 동작이 점차 잘 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성취감에, 근력이 생기는 느낌에, 저녁에 요가를 하고 나면 식욕까지 떨어지는 느낌까지. 그렇게 나는 요가를 시작하였다.


얼음틀과의 이별


여름이 되면 얼음 소비가 늘어난다. 아이스커피를 자주 먹기도 하고, 콜라나 사이다에도 얼음을 넣으면 좀 더 청량감이 높아진다. 아무튼 여름이 되면 얼음에 대한 소비가 무지막지하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기 전 주방일의 대부분은 내 몫이었고, 당연히 얼음 생산 담당도 나였다. 항상 불만인 것은, 내가 얼음 생산자인데 내가 먹고 싶을 때는 얼음이 없다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살림 및 육아의 불평등에 대한 화가 베이스로 깔려있는데, 먹고 싶을 때 얼음이 없으면 기초적인 화에 갑자기 점화가 되면서 폭발하게 된다. 이상하게 빈 얼음통에서 폭발이 온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음틀도 사고, 편의점에서 얼음을 사다 놓기도 하고, 제빙기까지 고민했을 때도 있었다. 물론 항상 남편에게 얼음을 얼려놓으라 말했지만 그건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올여름 남편은 조금씩 주방에 지분을 넓혀가고 있었고, 얼음 생산담당은 남편이 되었다. 나는 남편의 주방 지분율을 더 높이기 위해 동그란 얼음이 만들어지는 얼음틀에 삼천원을 투자했다. 올여름 얼음통에는 얼음이 항상 가득 차 있었다. 그 동그랗고 귀여운 얼음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 깊은 곳에서 행복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그렇다. 남편의 육아휴직으로 나는 얼음틀과 이별했다. 삼천 원의 투자로 원하는 목표를 완벽하게 이룬 것이다. 이로써 우리 집 얼음 최고 소비자는 항상 얼음을 구비해놓는 준비성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나는 행복을 찾았다. 고마워 남편. 조금 더 주방 지분율을 내어줄게.


올해는 내가 엄마가 된 이후 누리는 가장 멋지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인 것 같다. 살림과 육아의 지분 상속으로 인해 마음속의 화가 줄고 더 화목한 가정이 되었다고 할까. 내가 홀로 겪었던 어렵고 힘들었던 것들을, 남편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고 내가 위로하면서 나는 전우애 같은 것을 느꼈다. 남편이 느꼈던 고달픔을 나 역시 먼저 느꼈었고 그에 공감하며 서로가 위로가 되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화살을 쏘는 대신 조금씩 상처를 보듬어 주기 시작했다. 앞으로 가는 길이 꽃길일지 흙길 일지 모르지만 함께 하면 이겨낼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노력하는 내 남편에게 감사의 인사와 박수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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