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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배운다는 것

by 윤마마

오스트리아로 오기 전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아이들 학교였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어권 국가로, 교육 과정도 독일과 유사하다. 현지 학교 vs. 국제학교 중 어떤 곳이 나을지 고민이 되었다. 독일 교육 과정은 다큐멘터리 단골 소재다. 그래서 나는 독일 교육 과정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검증된 방식이라 신뢰하고 있었다. 독일어라는 높은 벽이 있지만, “애들이 어려서 금방 적응할 거야.”라는 주변의 충고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또 영어가 아닌 다른 문화권의 다양성도 있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선배 주재원들의 의견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1. 2년은 언어를 마스터하기 짧은 시간이다. 즉 2년 독일어를 배운다고 기억이 날 만큼 각인되지 않을 것이다.

2. 오스트리아 학생이 대부분인 현지학교보다 이방인들끼리 모인 국제 학교가 적응하기 더 수월하다.

3. 독일어 보다 영어가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활용도가 높다.


다시 생각해보니 독일 교육 과정은 현지에서 직장을 구하고 삶을 살아가야 가치가 높다. 어릴 때 부터 다양한 직업 선택의 길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장점이다.

나는 선배들의 조언대로 국제 학교를 선택했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딱 하나의 국제학교가 있다. 주재원에 관한 글이나 주변 지인을 통해 국제학교 입학은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어 실력을 갖추어야 하고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만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밖에 없다는 국제학교는 학교의 장단점을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로움을 덜어 주었지만 입학을 거절당할 경우 답이 없는 불안함을 심어주었다.

주재원이 결정되고 출국하기 전까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5개월. 초등학교 정규 수업 이외 어떤 영어도 접하지 않았던 아이들을 부랴부랴 파닉스 학원으로 보냈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학습했지만 아이들은 파닉스를 다 마치지 못한 채 출국을 해야했다. 때는 11월 말, 나는 다급했다. 입학 허가증을 받아야만 했고 크리스마스 연휴가 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학교 적응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첫 날 학교 투어를 하고 바로 간단한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다행인 건 이 국제학교가 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따른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교육 과정이다. 정답을 배우는 것이 아닌 철학과 인문학적 생각을 키우는 교육 과정으로, 한국에도 일부 학교에서 IB를 채택하고 있다. International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세계 다양한 대학교에 지원이 가능하다.


다행히 영어 실력과는 무관하게 입학 허가가 이루어졌다. 본격적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정규 수업과 정규 수업 중에 이루어지는 영어 수업(ESOL)에 참여했다. 영어 수업이 학교 방과 후가 아닌 정규 수업 중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어릴수록 언어를 빠르게 습득한다고, 아이들이 금방 적응할 거라고 했던 지인들의 조언과는 다르게, 아이의 성향에 따라 적응하는 면이 달랐다.


우선 첫째는, 생각보다 대담했다. 본인이 영어를 못 알아 들어도 당당했고 선생님의 전달 사항을 이해하지 못해 숙제를 제출하지 못하는 것도 당당해 보였다. (사실 큰 아이는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성향이라 그런 척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어쨌든 모르면 당당하게 구글번역기를 켜고 물어봤다. 물론 그렇다고 친구들이랑 교류가 잦다거나 단짝친구가 있던 것은 아니다. 한국 학교에서도 큰 아이에게 친구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 4학년이다. 성향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을 좋아한다. 즉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게 언어 때문이 아니라 그냥 성향인듯하다.

그렇게 6개월 정도 학교 생활을 보내고 두 달의 학년 말 방학이 다가왔을 때, 어느 날 큰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방학이 너무 싫다. 나는 학교 가는 게 너무 좋아.”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야? 이게 뭐지?

한국에서는 한 번도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거나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충동성이 강한 우리 아이가, 한국의 정형적인 교육 과정에 절대 잘 어우르지 못할 거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 생활을 잘하기보다 일단 학교에 매일 가는 것에 감사했다. 그런데 그런 아이의 입에서 학교 가는 게 좋단다. 이유가 뭘까, 몇 번의 학교 공개 행사를 방문하면서 그 이유를 찾아보았다.


첫째, 학교 생활의 대부분은 선생님 영향이 크다. 선생님이 얼마나 지지하고 믿어주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장점 혹은 단점이 부각된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수업에 참여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먼저 상담을 요청하셨다. 학교 수업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시고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하셨으며 언어를 못 알아들어도 아이가 수업에 얼마나 참여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셨다. 아이는 PYP(Primary year programme)에서 고학년에 속하기 때문에, 언어가 안되면 수업 참여(토론, 에세이, 그룹활동) 등이 어려워서 많은 걱정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못한 선생님의 긍정적인 피드백은 우리에게 엄청난 안정효과를 주었다. 당시 남편은 아이와 지난 학기의 수업 내용을 따라가느라 집에서 매일 다툼이 이뤄지고 있던 중이었다. 아이는 하기 싫은 수학을 영어로 했어야 했고 남편은 진도를 맞추기 위해 아이를 재촉했다. 이 부분에 대해 상담을 하니, 선생님은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하셨다. 아이가 압박을 받을 경우 공부에 흥미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흥미를 잃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본인이 할 수 있을 때 충분히 빠르게 따라갈 수 있으니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 하셨다. 현명한 선생님의 태도가 우리들의 불안감을 떨치게 해 주었다.


두 번째 이유는, 잘하는 것을 인정해 주고 기회를 주는 학교 문화인 것 같다. 우리 아이의 그림 실력은 한국에서는 조금 잘하는 정도였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독보적인 그림 실력이었다. 이곳은 보통 취미도 일주일에 한 번, 학원의 개념도 많지 않고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도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우리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이 잘한다고 엄청 칭찬을 해주는 모양이다. 학교 모임에 가면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듣는 첫마디가 아이의 그림 실력에 대한 이야기다.


“Did you see that Her drawing is amazing?”

“보셨어요? 아이의 그림실력이 놀라워요~~!”


그러다 학기말 행사에 아이들이 준비한 연극이 있었는데, 우리 아이가 무대 미술을 리딩했다는 것이다. 프로 세계로 치면 미술 감독인 거다. 어떻게 할지 계획하고 아이들에게 업무 분담하고, 그림 그리고 색칠하고 등등. 한국 학교에서는 주로 반장,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리딩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그런 부류의 아이들과 거리가 멀었다. 아이가 리더를 경험하고 나서 엄청난 유능감을 느낀 것 같다. 그 경험이 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거 아닐까.


일 년 정도 학교생활을 하니 이제 단짝 친구도 생기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외부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어 한다. 사실 큰 아이의 적응을 가장 걱정했는데, 오히려 큰아이는 내 걱정과는 반대로 잘 적응하고 있다.


첫째 아이와는 또 다른 둘째, 둘째는 한국의 정형화된 사회문화에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손도 야무지고, 언제나 숙제는 깔끔하게, 모든 게 완벽하도록 노력하는 아이였다. 어린아이가 야무지니 모든 선생님들의 예쁨을 독차지했었다. 어린이집에서도 항상 예쁨 받는 아이였고, 학교에서도 언제나 선생님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나이도 더 어리고 한글도 가나다라만 뗀 수준이니 어쩌면 듣고 말하기는 더 빠를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난관은 우리 둘째였다.


12월은 2주간의 크리스마스 휴가로 인해 어영부영 넘어갔다. 1월의 어느 날, 아이가 잠이 들기 전에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소원이어서 오스트리아 오긴 했는데 나 한국에 가고 싶어. 너무 힘들어….”


처음에는 울음을 참으려는 듯, 꾸역꾸역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더니, 내가 꼭 안아주자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울고 밤이 되면 내일이 걱정되어 스트레스 받으며 울었다. 작은 아이는 학교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숙제가 뭔지 몰라서 초조하고, 선생님 안내사항을 이해 못 해서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냈다. 우리 둘째는 완벽주의였던 것이다. 즉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거다.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거였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조금 부정적인 표정이나 행동을 보이면 본인이 영어를 못해서 애들이 다 날 싫어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 사이를 휘저으며 인싸로 날아다니던 아이가, 오스트리아 와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다. 한국에서는 모두의 칭찬으로 내가 잘한다는 유능감이 있었는데, 오스트리아에 오자 영어 하나로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아이가 되는 느낌을 받았던 거 같다.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에게 주말마다 한국어가 가능한 친구들과 만나게 해 주었고, 아이는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매일같이 영어 공부를 했다. 그리고 내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해보고, 둘만 있을 때는 영어로만 말하는 게임을 먼저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아이한테는 내가 유일한 안식처였던 것이다. 영어 못하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나는 매일매일 칭찬과 너의 노력이 얼마나 멋지고 자랑스러운지 속삭여 주었다. 애쓰고 고생하는 너에게 고마워라는 말도 추가해 주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자존감 충전 프로젝트였다.


친구들과는 언어가 아닌 다른 것으로도 놀 수 있다 생각해서, 생일파티에 초대되면 무조건 참석했다. 내가 옆에서 통역해 주면서 아이들과 어울려보려 했지만, 작은 아이는 왕따를 자처한 듯 혼자 있었다. 그렇게 식탁에서 과자만 먹던 아이가 이런 말을 툭 던졌다.


“참.. 말이 안 통하니 앉아서 과자만 먹게 되네.”


우리 작은 아이는 사실 먹는 거에 크게 관심이 없는 아이다. 아이가 그 말을 내뱉는 데 한참을 웃었다. 아이도 친구들과 놀고 싶지만 언어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다. 뜻하지 않게 인생에 찾아온 고통이 나로 인한 것이라 미안했다. 하지만 이 또한 너를 성장시켜 줄 조금 일찍 찾아온 고통일 뿐, 더 단단해질 너의 모습이 기대가 된다고 말해주었다.


영어권 나라가 아니기에, 아이들은 일주일에 3~4시간 독일어를 배운다. 기본적인 독일어 인사와 짧은 단어는 배워서 안다. 큰 아이가 어느 날 식탁에서 밥을 건네주는 아빠를 향해 말했다.


“Danke very much!”


두 개를 언어를 동시에 배우면서 생기는 폐허다. 나랑 남편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정작 본인은 왜 웃는지 모르겠다는 듯 황당한 표정이다.


언어를 배우는 건 나이가 많건 어리건 어려운 일이다. 나와 남편도 독일어를 배우고 있지만, 아직도 듣기와 말하기가 형편없다. 그래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것과 같아서 남은 시간을 즐거운 배움의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언어 때문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내 작은 천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애써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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