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의적 미라클 모닝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나의 루틴은 아이에게 맞추어 왔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아이가 가지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 아침잠이 많은 내 인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다니 말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저녁은 있고, 밤이 없는 삶을 살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새벽형 인간을 선택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다시 일어나는 생활을 하기엔, 나는 너무 저질 체력의 엄마였고 언제나 아이들보다 먼저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도 인간으로서 내 삶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 수는 없어 아침형 인간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들이 뭐 거창한 건 아니다. 유튜브 보기, 책 읽기, 쓸데없이 인터넷 기사들 기웃되기 등 정말 별거 아니지만 나에게 행복을 주는 나만의 소소한 시간이다. 그 소소한 시간보다 잠이 더 중허면 나는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잠을 자는데 보냈다. 내가 그 길이 행복하다면 그 행복한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게 맞다.
오스트리아에 도착한 12월. 이곳은 4시면 해가 지고 아침 7시도 어두 컴컴한 긴 겨울이 지나는 곳이다. 하지만 집 앞에 위치한 시청은 6시가 되면 어김없이 불이 켜지곤 했다. 시청 민원 처리 시간은 아침 7시에 시작한다. 대부분의 마트는 7시면 문을 열고, 학교도 대부분 7시 30분 혹은 8시면 1교시 시작이다. 나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맞춰져 가나 보다. 나도 일찍 일어나 6시 50분 기차를 탄다. 그전에 6시 20분 기차를 타려고 하면 좀 더 부지런해야 한다. 아침에 씻고 뭐라도 챙겨 먹고 나오려니 아침이 바쁘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언제 아침을 먹는 걸까? 먹기는 하는 걸까?
그나마 자동차가 생기고 나서는 좀 더 자유로워졌다. 기차역에 도착해 기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나 운전을 해서 도착하는 시간은 매한가지지만, 정해진 시간표를 지켜 기차를 타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다. 그래도 시간이 자유로운 출퇴근을 하다 보니 마음도 더 여유롭다. 조금 더 지나 봄이 되고 여름이 되니, 5시면 뜨는 해가 아침을 좀 더 상쾌하게 만든다. 겨울의 어스름한 새벽의 물안개도, 여름의 밝은 햇살 아래 시작되는 아침도, 일찍 일어나는 그 새벽에 나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풍광이 나를 설레게 한다. 마치 일찍 일어난 일에 대한 보상, 선물 같다. 어스름한 새벽안개가 지나고 나면 노란 유채꽃 밭이 펼쳐진다. 그 유채꽃이 질 때 즈음이면 옥수수, 딸기, 밀밭에 새로운 생명들이 또 자라난다.
오스트리아와 한국의 시차는 현재 서머타임(Summer time) 기준으로 7시간이다. 7시에 출근을 하면, 한국은 오후 2시다. 업무특성상 한국과 교류가 많은 나에게는 딱 좋은 시간차다. 그전에 일했던 미국 고객사에 비하면 한참 최적의 조건이다. 미국은 회의가 한국 시간 이른 아침 혹은 주로 저녁 8시 이후에 시작된다. 회의 시작이 저녁 8시, 아무리 빨라도 퇴근은 9시, 보통 10시가 넘어야 퇴근이다.
한국과 소통할 게 많으면 6시 30분에 출근한다. 일찍 온만큼 할 일을 다하게 되면 일찍 퇴근하거나, 주로 금요일 퇴근을 일찍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녁은 가족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미라클 모닝을 해도 워낙 퇴근 시간이 늦어서 저녁을 함께 먹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의 저녁은 항상 제시간에 도우미 아주머니께서 챙겨주셨고, 나는 퇴근하고 저녁을 건너뛰고 바로 요가하러 가곤 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6시면 집에 도착한다. 보통 5시 이후에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38km를 달려 집에 오면 6시 즈음된다. 그러면 두 번째 육아휴직 중인 남편이 요리를 준비해 주고 내가 도착하면 다 같이 저녁을 즐긴다. 둘째랑은 꽁냥꽁냥 이야기꽃을 피우며 대화를 즐기지만, 첫째는 책만 보고 대답이 없다. 밥상머리 교육을 위해, 우리만의 가족 문화를 위해 밥 먹는 시간만큼은 대화를 하려 노력하지만, 큰 딸에게는 항상 거절당한다. 밥 먹을 때는 영상/책 보지 않는 규칙도 만들었지만 언제나 실랑이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큰 아이가 책 읽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밥 먹을 때 주로 책을 읽는다.
서먹서먹한 남편과도 밥 먹을 때 주로 대화한다. 대화라기보다는 서로 할 일에 대한 확인이랄까?
재산세 납부했어? 학교에 연락해 봤어? 어떻게 해야 한데?
이런 필수적인 의견 교류랄까. 대화라면 대화다.
이곳의 문화에 맞춰 타의적 미라클 모닝을 하며 살아가지만, 저녁이 있는 삶은 행복을 준다. 비록 요가하는 날들은 줄어들지만 저녁 먹고 긴 저녁시간에 아이들과 산책하는 날은 행복하기 그지없다. 이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다. 점점 짧아지는 낮시간이 아쉽지만, 새벽의 하늘은 여름보다 예쁘다. 기나긴 겨울도 행복해야지.
난 고요하고 맑은 그 아침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