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따라 떠나볼까나
오스트리아에서 맞는 어버이날. 이곳도 미국처럼 엄마의 날(Muttertag)과 아버지의 날(Vatertag)이 있다. 서양은 다들 엄마 아빠를 따로 챙긴다. 한 부모 가정이 많고 그들에 대한 평등과 존중을 위해서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어버이날처럼 두 분을 함께 기리는 날은 아니다. 오스트리아는 5월에 어머니의 날이 있고, 4주 뒤인 6월에 아버지의 날이 있다.
한국에서 매년 어버이날 선물은 현금으로 드렸다. 우스갯소리로 요즘 세대의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현금이라 하지만, 사실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고민하고 걱정하고 우려하는 그 모든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이게 해결해 주는 것이 현금이라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오스트리아에 와 있다는 특이성을 이용해서 작지만 자질구레한 선물을 사서 보내기로 했다. 주변에서 쉽게 보이는 양봉농가가 있는 만큼 꿀, 잠이 잘 오는 차/위에 좋은 차/과일차 등 한국보다 다양한 차 종류, 모차르트의 고향답게 모차르트 초콜릿, 그리고 오스트리아 과자 마너. 어버이날은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는 만큼 넉넉하게 구매해서 택배로 보냈다. 바다가 없는 오스트리아는 항공특송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렇게 보내는 택배 값은 물품 비용보다 더 많이 소비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랄까. 그래도 2년 동안 두 번의 어버이날, 두 번의 생신은 이렇게 해보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한국과는 다른 불편한 택배 신청 시스템에 남편분께서 화가 많이 나셨다. 내가 직접 우체국에 갈 수 시간이 없으니 남편밖에 없는데. 워워..
우여곡절 끝에 택배로 작은 선물을 보내고, 우리는 짧은 주말을 이용해서 독일 여행을 가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님께서 유럽 투어를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몇 달 전에 티켓을 예약했다. 이번 주가 바로 그 콘서트에 가는 주다. 콘서트가 열리는 곳은 20주년 우먼 인 재즈(Women in jazz) 페스티벌이 열리는 독일 동부의 할레다. 동독에서 통일 염원 시위가 이루어진 라이프치히, 그곳에서 멀지 않은 할레까지. 무려 577킬로미터나 떨어진 이곳을 짧은 주말을 이용해 간다. 첫 장거리 자동차 여행. 추울 발~!
두 장의 콘서트 티켓을 사고 둘째 딸을 꼬셔 함께 가자고 부탁했다. 한국에서는 혼자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일단 이곳은 만 8세 이상이라는 나이 제한도 없고 혼자 멀리 다녀오기에는 부담이 되어 엄마랑 여행 다니길 좋아하는 둘째를 꼬셨다. 멀리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큰 딸은 역시나 가지 않겠다 하여, 아빠와 집에 있기로 했다. 하지만 점차 콘서트 날짜가 다가오면서 남편이 나랑 작은 딸만 먼 곳에 보내는 것이 불안했는지, 협상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는 말들로 큰 딸을 설득했다. 화장실 불안증이 있는 큰 딸을 위해 간이 화장실도 챙기고, 달고 단 초콜릿으로 유혹하여 큰 딸의 동의를 얻어냈다. 큰 딸은 화장실 불안증이 있는데, 눈앞에 화장실이 보이지 않으면 엄청난 불안감을 느낀다.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위해 남편이 간이 화장실을 마련했다. 물론 사용하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휴게소 화장실을 이용하면 되었으니까. 이렇게 큰 아이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577km, 아우토반 시속 200km 달려가며 6시간이 지나 라이프치히에 도착했다. 사실 별다른 정보가 없이 가는 여행이라, 라이프치히에서 무얼 할지 열심히 찾아보다가 이곳에 성 토마스 성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이프치히 중심가에 위치한 성 토마스 성당은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마지막 여생의 보낸 곳이라 한다. 절망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는 토카타 푸가 라단조를 작곡한 바흐는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를 하며 종교를 위한 작곡을 많이 했다. 종교가 삶과 예술에 깊이 관여했던 중세 시대에 순응하듯, 바흐는 성실한 종교 음악가로 신을 위해 일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바흐의 무덤과 비석은 성 토마스 성당에 안치되어 있고 한 편의 스테인글라스에서는 바흐의 초상화도 찾아볼 수가 있다. 성당 한편에는 바흐의 흔적들을 전시해 놓은 작은 공간이 있다.
내가 방문한 토요일 오후 3시는 성당에서 바흐의 음악을 연주한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조금 늦어서인지 성당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아쉽지만 성당 앞 노천카페에서 바흐 커피를 마시며 누렸던 따뜻한 그날의 햇살을 기억하며 이렇게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도시를 즐긴다.
바흐는 첼로 무반주 연주곡이 최고지! (사실 거의 유일하게 아는 바흐 곡)
라이프치히를 지나 할레로 넘어왔다.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라이프치히 보다 작은 할레의 도시에 도착한다. 재즈 콘서트는 할레에서 당일 8시 공연이었고, 내가 예약한 숙소는 공연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기에, 잠시 시간을 내어 마트에 들러 먹을 것을 샀다. 어딜 나가 주차가 적응이 안 된다. 일단 슈퍼마켓 바로 앞 공용 주차공간에 주차를 하고 주차표를 끊어 차장에 놓았다. 그런데 마트 바로 앞에 무료주차장이 떡하니 있으니 화가 난다. 다섯 개 정도의 좁은 주차장이지만 자리가 두세 개 남아있으니 더 화가 난다. 아직은 유럽의 주차가 너무 어렵다. (사실 돈 쓰면 된다. 돈을 아끼려니 어렵다. 한국이 건물마다 주차장이 있어 굉장히 편리했다는 사실을 유럽에 와서 깨닫는다.)
독일은 확실히 오스트리아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다. 일단 건물 하나가 조금 더 크고 잘 정돈된 느낌이랄까. 우리가 예약한 아파트는 방하나에 넓은 거실을 가진, 아주 오래된 아파트였다. 혼자 살기에 딱 적당한 크기에 아름다운 동네가 펼쳐 보이는 낭만적인 곳이었다. 새들이 지저귀고 조용한 동네가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나 : 엄마는 나중에 이런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어. 아늑하고 적당하게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딸 : 그럼 우리는? 우리랑 같이 안 살 거야?
나 : 당연히 같이 살지~ 만약에 너희들이 집을 떠나서 엄마가 혼자가 되면, 그때 말이야. 그때 이런 곳에 살아보고 싶어. 너희들도 나중에 홀로 살게 되면 이런 곳에서 예쁘게 지내면 좋겠다. 여기에 옷장을 두고, 소파와 작은 화분? 이렇게 두면.....
윗집에서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 나무 소리가 울리고 아주 작은 주방과 욕실이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사랑스러운 공간이었다. 오래되었지만 잘 가꾸어져 아직 낡아 보이지 않는, 유럽의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하다. 만약 내가 혼자서 사는 직장인이었다면, 나는 어쩌면 이 작은 아파트 공간을 너무 사랑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유럽의 집은 일괄적이지 않아서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케아 같은 특이한 구조의 인테리어들이 생성되는 것이겠지. 한국의 동일한 아파트 인테리어보다 일손도 많이 들고 시간이 더 들겠지만,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 뭔가 흥분된다. 신기한 것은 이 아파트를 빌리면서 만난 호스트 또한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할레에 와서 한국 가수의 공연을 보고, 한국 호스트의 아파트에 묶는다. 타국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어느 때보다 반갑다.
작은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듯 걸어 공연장으로 향했다. 한적한 도로, 작은 냇가에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 물장난을 치고 있는 한 중년 커플. 8시를 향해 가지만 아직 어둠의 시작은 찾아볼 수 없는 유럽의 여름. 우리는 "Georg Friedrich Händel" 공연장을 찾았다. 우리가 두 번째로 찾은 도시는 음악의 어머니 헨델이 태어난 도시다. 여기저기서 "Händel"이라는 이름을 쉽게 볼 수 있는 곳 할레. 웅장한 체격에 힘 있게 말아진 긴 머리카락을 자랑하는 헨델 동상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할레에서 태어난 헨델은 나중에 영국으로 귀화하여, 헨델의 묘는 웨스트 민스턴 사원에 있다고 한다. 화려한 도시 생활을 꿈꿨던 헨델,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와는 다르게 귀족을 위한 노래를 많이 만들었고 결국 사교계가 화려한 영국으로 귀화하여 음악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독일어로는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이지만, 영어로는 조지 프레드릭 헨델이다.
음악의 어머니의 도시에서 듣는 재즈는, 또 다른 묘미를 가져다준다. 피아노를 드럼을 치시는 Bojan Z도 함께여서 너무 행복했다! 작년에 롯데콘서트홀에서 들었던 곡을 그대로 할레에서 듣게 되었다. 음악의 어머니인 헨델의 이름을 딴 공연장이지만, 사실 공연 시설은 한국이 훨씬 좋다. 하지만 좀 더 저렴한 티켓 가격에 동일한 음악을 들을 수 있음에 만족한다.
어쩌다 보니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사실 바흐나 헨델의 노래를 자주 듣는 편은 아니지만, 교양처럼 알고 있던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이기에 어버이날을 맞아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이번참에 클래식에 한번 빠져봐야겠다.
보태기 1 :
엄마, 헨델은 여자야?…………
작은 아이의 질문은 우리가 어릴 적 했던 질문과 동일하다. 참 신기하지.
보태기 2 :
헨델과 바흐는 동갑이다. 그래서 음악의 어머니와 아버지일까. 하지만 완연하게 다른 삶을 산 것과 같다. 종교를 위해 한 몸을 바친 바흐와 화려한 생활을 즐긴 것 같은 헨델. 둘의 끝은 너무 다른 방향이다.
보태기 3 :
한때 플라워 밴드를 엄청 좋아했다. 플라워의 Endless 노래 앞에 울려 퍼지는 아리아가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 등장하는 곡, '울게 하소서'이다. 남성 카스트라토들이 고음을 내며 부르는 그 노래. 헨델과 바흐는 나도 모르게 내 주변에 스며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