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너, 실패하는 너, 그래도 모든 것을 이겨낼 너.
Bat Gastein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심취해서, 올해 목표는 스키를 배우는 것이 되었다. 사실 실행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올해 목표로 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취미를 내 삶에 끌어들였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하루에 스키를 알차게(?)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6시간 수업을 신청했다. 아이들까지 포함 4명의 인원이고 모두 다 초보이기 때문에 6시간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 자신의 체력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생긴 오거나이징 실패다. 한 시간 점심 먹는 시간을 제하고, 4시간 동안 스키를 탔는데 스키 부츠가 발목을 너무 아프게 했다. 스키를 타고 내려올 때는 괜찮았는데 오르막을 올라가려고 할 때면 어김없이 발목 윗 뼈가 너무 아팠다. 그래서 결국 나는 체력 저하로 더 이상 스키를 타지 못하고 포기했다. 아이들도 30분 더 타다가 힘들었는지 주저앉았다. 그날 스키 강사였던 세바스찬이 건네준 젤리를 먹고 쉬고 있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나는 무거운 스키부츠를 신고 리프트 카드 반납을 위해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남은 리프트 시간이 아까워 Stubnerkogel 정상에 올라가 볼까 생각했지만 이 또한 욕심이다. 포기했다.
스키 렌털샵까지 돌아오는 내내 아이들은 짜증 투성이었다. 힘이 드니 짜증이 폭발하는 거다. 나와 남편은 폴과 스키를 아이들 몫까지 나누어 들고 200m 되는 거리를 열심히 걸었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스키 부츠를 벗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과 남편을 놔두고 최대한 빨리 걸었다. 렌털샵에 맡겨두었던 아이들 신발을 들고 다시 왔던 길을 걸어오는데 강건너편까지 입이 튀어나온 아이들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쌩하니 내 옆을 지나간다. 비상사태다. 그런데 나도 힘들다 딸들아.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스키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루 스키 선생님이었던 세바스찬 마저 아이들이 스키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본인은 어렸을 때는 스키 배우기 싫어 한참을 힘들어했다고 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아이들이 스키를 좋아하고 관심 있어하는 것 같다고 좋은 징조라 했다. 나 역시 눈썰매도 무서워서 거부하던 큰 딸아이가, 다리에 힘이 부족해 넘어지기 일쑤인 둘째 아이가 스키 타는 것에 흥미가 있다고 느꼈다. 이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다음에 다시 배우면 된다. 장기전으로 가자!!
동료들은 크리스마스 휴가기간 동안 대부분 집에서 쉬었지만, 1월이 되고 2월이 되면 다들 스키를 타러 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 알프스 산맥 주변으로 모여간다. 내가 사는 Linz에도 한 시간 반거리에 Hinterdorf라는 스키리조트가 있다. Bad Gastein에서 스키를 배우면서 느낀 것은, 스키 리조트가 커봤자 초보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초보자 슬로프가 좀 긴 곳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스키 강습받기 좋다고 하는 Kirchschlag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린츠에서 버스 타고 30분 즈음 가면 조금 높은 고지대에 스키 강습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바쁜 1월을 후다닥 보내던 중, 이대로 가는 1월을 놓치기 싫어 주말에 2시간 개인 강습을 신청했다. 일단 아이들만 배우기로 했다.
동료들에게 아이들 스키 배우러 Kirchschlag에 간다고 하니, 대부분의 반응은
'거기는 굉장히 작은 곳이야, 나도 거기서 어렸을 때 그곳에서 스키를 배웠어.'
'거기 지금 눈이 있데? 린츠에 겨우내 눈이 많이 오지 않아 운영을 하려나?'
내가 아는 친구들, 혹은 그 친구들의 자식들은 모두 이곳을 거쳐가나 보다. 좀 더 넓혀보면 Linz에 스키 탈 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스키를 배우는 듯하다. 주로 2월 중순에 있는 일주일 겨울 방학이나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에 그룹레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듯하다. 우린 이미 그 기간에 다른 계획이 있었고 영어/독일어 둘 다 못 알아듣는 아이들에게 그룹 레슨을 효율적이지 못하다 판단했다. 그래서 배로 비싸지만 개인 강습을 신청했다.
260번 버스를 타고 30분 즈음 가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귀가 먹먹 해지는 것을 보니 고도가 높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산비탈은 너른 초원이다. 곳곳에 산양을 키우는 농가가 보인다. 초원은 모두 추위를 견디고 있는 녹색 식물들로 가득하다. 이곳은 한국처럼 극한으로 춥지 않고 어느 정도 공기 중에 수분을 유지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눈이 내려 새하얗게 변한 세상에서 눈을 걷어내고 나면 아직은 푸르른 식물들이 보인다. 올해 린츠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고 춥지가 않아서 다들 걱정이었다. 이상기온이라며, 이렇게 따뜻한 겨울이라니 큰일이라고 했다. 한국의 추위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겨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료들은, 어릴 때와 기후가 급격하게 달라진 것이 느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겨우내 눈이 내리고, 심할 때는 40일이 넘도록 눈이 온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1월에 잠깐 추워 얼었던 연못이 2월에는 모두 다 녹고, Kirchschlag는 질퍽한 눈들로 가득했다. 눈이 오지 않아 매번 인공눈을 뿌려대며 스키 학교를 유지하고 있었다. 2주 연속 우리 아이들을 가르쳐주던 네덜란드에서 온 선생님도 다시 알프스 자락인 Saalzbach로 넘어간다고 했다. 여긴 눈이 없다며.
어쨌든 나의 목표는 아이들의 스키 실력 향상이기에, 이곳이 최적의 장소라 생각했다. 처음 네덜란드 Fenne 선생님께 초보자 코스에서 스키를 배운 아이들은, 2시간이 짧다고 느낄 만큼 너무 재밌어했다. 그래서 나는 집에 와서 바로 다음 예약을 진행했다. 두 번째 시간에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리프트를 타고 긴 슬로프를 'S' 자형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번째 시간, 이제는 혼자서 내려감에 스스럼이 없다. 작은 아이가 혼자서 해내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꼭 안아주며 이렇게 성장하는 네가 정말 멋지다고 몇 번이고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종이인형처럼 픽 쓰러지기만 했던 아이가, 허리가 아파서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던 아이가 조금 더 타고 오겠다며 말하는 그 모습에서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이 자존감이 높아진 것 같았다. 작은 아이는 해낸 본인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표정으로 그 모습이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겁이 더 많은 큰 아이는, 조심스러운 성격답게 절대 넘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스키를 탔다. 큰 아이는 동생과 다르게 다리에 힘이 좋다. 아빠를 닮아 근육 형성이 더 잘 되는 것 같고 덩치도 더 커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속도를 내지 않고 아주 천천히 내려간다. 허리를 좀 더 펴고 타는데도 불구하고 더 안정적으로 스키를 탄다. 큰아이는 약 10시간 정도 스키를 타면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에게 시련이 왔다.
이곳의 리프트는 한국처럼 의자에 앉아서 올라가는 게 아니고, 'T'자 봉에 의지하여 스키를 타고 올라간다. 그래서 중간에 'T'자 봉을 놓치게 되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그곳으로부터 내려가야 한다. 큰 아이가 중간에 'T'자 봉을 놓치게 되면서 크게 넘어졌다. 그 실패가 공포로 다가온 것이다. 아프기도 하고 실패했다는 좌절이 견딜 수 없던 아이는, 다시 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옆에서 같이 있어주며, 고생한 아이를 위해 간식을 주고 같이 눈사람을 만들었다. 이번이 마지막 수업일테지만 다음 겨울이 오면 우리 다시 도전해 보자! 새로운 것을 도전해 보는 네가 자랑스럽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해보는 네 모습을 사랑한다!! 돌아오는 겨울에는 멋진 스키 리조트로 고고!!